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답답할 땐 거울을 보라

장백산-1 2012. 8. 12. 02:16

 

 

 

답답할 땐 거울을 보라/숭산스

 

 

 

답답할 땐 거울을 보라/ 숭스님

 

 

우리는 이미 眞理의 世界에 살고 있다.

萬物은 空하므로 모든 것이 이미 完璧한 길이다.

이것을 知的으로 혹은 學文的으로 理解하려면 안 된다.
그리하려 하면 안 된다.

修行을 通한 어떤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實際로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絶對이고 境界가 없으며,

나의 모든 行動이 瞬間 瞬間 衆生을 向한 큰 사랑과 慈悲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事實, 本來 '나'라는 것은 없으므로

다른 衆生을 위한다는 말조차 틀린 말이다.

'나'와  '남'의 警界가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 길에는 生覺도 없고 苦痛도 없다.

아무 것도 防害하는 것은 없다.
이렇게 되면 瞬間 瞬間의 할 일이 明確해 진다.

瞬間 瞬間의 모든 行動은 眞理이며 完璧하게 다른 衆生의 苦痛과 닿아 있다.

 


"어떻게 내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그를 도와줄 수 있을까?"
이것이 眞情한 人間의 길이며 完璧한 길이며 眞理이다.
이런 慈悲 어린 行動은 어떤 觀念이나 特別한 行動이 아니다.

本質 그 自體이며, 이것이 보살의 길이다.

'나'라는 것은 本來 없기 때문에 衆生과 나는 둘이 아니다.
그들의 苦痛은 나의 苦痛이며 그들의 幸福이 나의 幸福이다.

나는 단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大慈大悲心', 偉大한 사랑과 慈悲를 가진 마음,  

卽,  絶對의 길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똑같이 宇宙의 實體이며

基本的으로 空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 다음 이 宇宙 萬物의 數 많은 이름과 모양이 空하므로

'나'라는 것이 本來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中道이며 眞理의 길, 바른 길이다.
여기서부터는 어떤 法則, 어떤 이름, 어떤 모양이든지 모두 眞理여서

우리를 防害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런 무애(無碍)의 마음을 얻으면

우리의 모든 行動은 있는 그대로 眞理이며 부처의 行動이다.
瞬間 瞬間의 行動이 모든 存在와 事物과 함께 나누는 宇宙的 本質에 닿아 있다.

더 이상 '너'와 分離된 '나'는 없다.
이미 우리의 行動은 大慈大悲이다.


 

어느 날 第者 한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대승불교의 주요 가르침 중 모든 것이 空하다는 것과

모든 것이 그대로 眞理라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어떻게 모든 것이 空한데 그게 眞理란 말입니까?"
아주 좋은 質問입니다.
答은 쉽다.

집에 가서 거울을 한 번 봐라.

거울 속엔 아무 것도 없다.

完璧하게 空하다.

 


거울 앞에 붉은 공을 갖다 대면 붉은 공이 나타나고,

하얀 공을 갖다 대면 하얀 공이 나타난다.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비출 뿐이다.

붉은 공을 치우면 거울에는 더 이상 붉은 공이 없다.
오로지 그것을 비출 때만 상(像)이 나타난다.

맑은 거울은 언제나 完璧히 空해서 어떤 것에도 執着하지 않는다.

어떤 것도 아무런 障碍 없이 비춘다.

모든 것은 이 空한 宇宙라는 거울 앞에서 있는 그대로 왔다갔다하며 비춘다.
아무 것도 덧붙이지도 빼지도 않는다.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이나, 거울에 비친 像 역시

"공(空)하므로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眞理이다.

 


그러나 우리 人間의 마음은 이렇지 못하다.

마음의 거울에 붉은 것을 갖다대면 우리 역시 붉은 것을 비출지도 모른다.

하지만 붉은 것을 치운 뒤 하얀 것을 갖다 대면

우리 마음의 거울은 여전히 '붉은 것'을 '生覺'하고 있다.
'붉은 것보다는 하얀 것이 낫지 않을까?'

혹은 '다음에 다시 붉은 것이 나타날까?'

혹은 '지금 앞에 있는 하얀 것은 좋지 않아.

붉은 것이 더 좋아, 아니야, 아니야. 하얀 것이 더 좋아....

아, 잘 모르겠다.'하고 '生覺'한다.

 


하얀 것이 앞에 있지만

우리 마음은 언제나 그것을 '제대로' 혹은'그대로' 비추지 않는다.

다른 것에 執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처럼 언제나 世上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 않는다.

아주 强한 慾心이나 執着을 갖고 있기 때문에

瞬間 瞬間 다른 사람을 위해 慈悲롭게 行動하는 代身 이 世上의 좋고 나쁨에 執着한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스스로 만든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부처이다.
모든 것이 空해서 결국 모든 것이 같다는 깨달음을 얻으면

우리 사는 삶은 모두 衆生을 위해서 사는 삶이며, 그것이 바로 부처의 삶이다.

 


이런 狀態에서 慈悲心은 저절로 나온다.
대보살의 삶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모두 부처이다.

萬物이 '공'(空)해  結局 모두가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으면

우리 삶은 모두 衆生을 위한 삶이다.

그것이 바로 부처의 삶이다.

慈悲心은 절로 나온다.

'나'가  있으면 慾心이 나오고 모든 것과 내가 分離된다.

 

 

그러나 '나'가 사라지면 分離는 일어나지 않는다.
修行을 通해 이런 眞理를 깨달으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障碍가 없다.

마음에 障碍가 없으면 慈悲로운 대보살의 行動은 저절로 나타난다.

반야심경에 나오듯 '얻을 바도 없으며, 얻을 것도 없다.'

'瞬間 瞬間 衆生을 돕는 일(事)만 있을 뿐이다.'

 

-무진장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