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인과법 / 연기법

장백산-1 2012. 10. 1. 21:01

 

 

因果法과 緣起法

 

 

 

인과법(因果法)

 

부처님께서는 이 因果法則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卽 모든 일(事)의 結果에는 原因이 있고,

原因은 반드시 結果를 가져온다는 因果의 法則입니다.

因果 法則은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는 너무나 當然한 法則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여기에 깨달을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느냐고 反問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因果 關係가 生覺보다는 훨씬 複雜하게 展開됩니다.

어떤 原因은 結果가 卽時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떤 原因은 數十年 혹은 數百年이 지난 後에야 結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原因과 結果의 進行 過程이 機械의 作動처럼 時間의 先後關係가 固定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으며, 어떤 境遇에는 原因이 結果 속으로 다시 投入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原因과 結果는 複雜하게 여러 가지로 서로 關係를 맺으며 展開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因果의 法則이 複雜하게 展開된다고 하더라도

自然의 變化에는 原因이 있으면 반드시 結果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人間의 行爲에는 다른 点이 있습니다.

人間의 行爲에는 의지(意志)가 들어있기 때문에 自然의 法則과는 다릅니다.

卽 人間은 自身의 마음에 따라서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人間의 이러한 意志가 담긴 行爲를 인(因)이라 부르지 않고 업(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業에 따라 오는 結果를 보(報)라고 합니다.

 

人間이 善業을 짓게 되면 善報를 받고, 惡業을 짓게 되면 惡報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人間이 어떤 意志를 갖고 行爲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과보(果報)가 結定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人間의 幸福과 不幸은 自己 스스로가 짓는 만큼 自身이 받는 것이지,

自己 自身  以外의 다른 어떤 힘(氣運)에 依해서 結定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만약에 人間의 幸福이나 不幸이 自己自身 以外의 다른 存在에 의해서 左之右之된다면,

個人이나 社會의 責任을 누가 져야 하는지, 그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도 우리를 幸福하게 하거나 不幸하게 만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法을 가르쳐서

그 法(眞理/般若智慧)을 우리가 깨달아 바르게 살게 하시는 存在입니다.

 

 

 

연기법(緣起法)

 

다음으로 因果의 法則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인연화합(因緣和合)의 法則’입니다.

한가지 例를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여기에 치즈가 있다고 합시다. 牛乳가 發酵되어

치즈로 變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우유를 냉장고에 保管하면 우유는

그대로 우유로 남아있게 됩니다. 그러나 우유가 乳酸菌과 만나 서로 어울려서 發酵가

되면 치즈로 生겨납니다.

이때에 牛乳를 인(因)이라 하고 乳酸菌을 연(緣)이라고 합니다.

牛乳와 같은 一次的인 原因을 인(因)이라 하고

乳酸菌과 같은 二次的인 原因을 연(緣)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原因이 結合해서 結果를 가져오기 때문에 ‘因緣和合의 法則’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좀더 自細히 살펴보면 이런 点을 알게 됩니다.

卽 牛乳가 乳酸菌과 같은 發酵條件을 만나지 않았다면 치즈는 生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치즈는 다시 치즈과자라든가 치즈피자, 치즈햄버거를 만드는 原因으로 作用하게 됩니다.

이처럼 치즈는 牛乳와 乳酸菌의 和合에서 나온 結果이지만 다시 치즈는 치즈햄버거의

原因이 됩니다.

 

치즈로 예를 들어보았으나, 事實 모든 萬物은 이와 같이 서로서로 密接하게 相互依存的인

關係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事物도 홀로 獨立的으로는 存在할 수 없는 것입니다.

一切 存在는 이처럼 서로서로 關係를 맺고 依持하면서 끊임없이 成-住-壞-空  즉,

생겨나고 머물다 부서지고 무너져 사라지는 끝없는 無始無終의 循環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事物의 關係를 ‘상의상관(相依相關)의 法則’이라고 합니다.

모든 存在는 이와 같은 關係 속에서 끝임 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存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因果의 法則,

         因緣和合의 法則,

         相依相關의 法則을 통털어서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生겨나려면 이것과 저것이 서로 어울려야 生겨나고,

또한 어떤 것이 사라지는 것도 結局 이것과 저것이 어울려야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緣起의 理致를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說하셨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으며,

 이것이 生기면 저것도 生겨나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없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萬物은 緣起의 法則 속에서 存在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홀로 獨立된 永遠한 것은 없고, 서로의 關係 속에서 變化하면서 存在하는 것입니다.

모든 萬物은 이와 같이 서로 密接한 關係를 맺고 있습니다.

萬物은 서로 關係를 맺고 끊임없이 生겨나고, 머물다가, 變化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永遠히 變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없지요.

어떤 物質이나 現狀도 適切한 環境에서는 나타났다가 다시 그 환경이 바뀌면

그 바뀐 環境에 따라서 物質이나 現狀도 變化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緣起의 法則을 깨닫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초기 불교에서는 貪ㆍ嗔ㆍ痴  三毒을 無明의 뿌리라고 하는데 이 中에서 치(痴), 즉

어리석음은 바로 이 緣起法을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緣起法은 곧

宇宙의 모든 事物이나 現狀이 나와 密接하게 연결되어 關係를 맺고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한 톨의 쌀알이 生겨나는 것을 보십시오. 한 톨의 쌀알 속에는 농군의 노력과 땀이 서려있는가 하면, 여름날의 햇빛과 바람이 담겨있고 천둥과 먹구름과 빗방울이 들어있습니다.

온 宇宙가 힘을 기울여야 쌀 한 톨이 여무는 것입니다. 우리는 宇宙가 들어 있는 쌀을

먹고 살아갑니다. 나는 바로 온 宇宙와 둘이 아님을(不二)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나와 關係되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이웃에 사랑을 보내고,

모든 事物에 사랑을 보냅니다. 이 끝없는 사랑이 慈悲입니다.

慈悲는 人間關係에서 基本이 되는 윤리입니다.

人格의 完成이라는 것도 事實은 나와 이웃이 마치 손과 발이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서로가

뗄 수 없는 同一體라는 것을 깨닫고 無限한 慈悲를 實踐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웃에 對한 사랑이 곧 나 自身을 完成하는 길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緣起를 보는 者는 法(眞理)을 보고, 法(眞理)을 보는 者는 緣起를 본다.

그리고 緣起를 보는 者는 '나'(自性)를 본다.”고 가르치신 理由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무진장 행운의 집-

 

 

 

흰구름견도님이 올린 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