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찾아서!!!

천부경의 수론에 나타난 '인중천지'를 중심으로

장백산-1 2012. 11. 14. 13:30

 

 

 

 

人中天地..사람 속에 宇宙

민족영웅해무리 (younbok****)

주소복사 조회 263 12.01.27 00:06

 

강론 : 弘益人間 思想의 世界觀-김상일(한신대 철학과 교수) 

-天符經의 數論에 나타난‘人中天地’를 중심으로-

                            
Ⅰ. 0과 無限(infinite)

석가모니(566-486 B.C.)의 전기인 「佛所行證」에 依하면 그는 어렸을 적에 57 단위의 계산을 暗算으로 해내었다고 한다. 1억이 9 단위이고 보면 그것의 7곱 배에 가까운 암산을 하였다는 것은 그가 宗敎家 以前에 천재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천재 수학자 가우스도 어릴 적에 상당한 단위의 수를 計算해 내었다고 한다. 물론 석가나 가우스나 하나 하나 세어서 그런 암산을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數의 構造를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며 그 構造로 파악하면 그 만한 암산은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數를 안 것이 아니라 數論을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舊約聖書 열왕기 상 3: 8에 보면 솔로몬왕이 智慧를 神에게 求하는 場面에서 “셀 數도 없고 多數라고도 할 數 없는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 말 속에 솔로몬의 智慧의 眞髓가 담겨져 있고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의 數 개념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한겨레는 日常生活 속에서 걸핏하면 ‘그럴 수, 이럴 수’, ‘재수’, ‘꼼수’ 등 ‘數’라는 말을 유달리 많이 사용한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촌수 寸數’라는 數로 關係를 表示한다.

그래서인지 지금 민족 종교 대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경전인 「天符經」은 모두 81개자로 되어 있는 데 그 가운데 2/3이 모두 숫자로 되어 있다. 世界에 그 유례가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數에 가장 어두운 민족을 손꼽으라고 하면 또한 그것도 우리일 것이다. 그 이유는 西洋 사람들이 生覺하는 數 槪念과 우리가 生覺하는 그것과 差異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싶다.

數學도 現代 數學은 數의 理論인 ‘數論’ 혹은 ‘數學論’을 거론한다고 했으며 數學論의 核心은 集合論이다. 生覺키로는 數學과 數學論은 다르며 우리 民族은 數學論을 意味하는 數 槪念에 익숙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주장의 妥當性은 天符經을 解析해 보면 옳다는 것이 立證이 된다.
 
우리 겨레의 경우 ‘세다’에서 ‘셋 3’이라는 말이 由來 한다. 그렇다면 의 槪念에서 겨레의 數 理解에 對한 根本的인 秘密을 찾아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天符經에서도 여러 숫자 가운데 3이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와 함께 지금부터 겨레의 數論과 칸토어의 數學을 比較하고, 무엇보다 가장 太風의 核이라 할 수 있는 集合論에 나타난 逆說을 겨레 數論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 차례 대로 알아 보기로 한다.

여기서 몇가지 問題 設定을 해 보면 칸토어와 마찬가지로 天符經도 實無限의 槪念을 가지고 있는가,

가부번과 비가부번의 區別을 알고 있는가, 集合論의 逆說의 問題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등이다.
 
哲學 思想은 ‘無’ 혹은 ‘0’을 受容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西洋 數學은 피타고라스나 유크리트로부터

始作되고 그들의 數學에 대한 공헌은 지대하지면 그들 數學의 決定的인 弱点은 ‘無限’ 혹은 無라는 槪念을 外面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에 칸토어가 최초로 無限의 問題를 數學에 提紀했을 때에 그 당시 수학자들이 그렇게 칸토어에 抵抗한 近本的인 理由도 바로 뿌리 깊은 無限에 對한 去否感 때문이었다.

파스칼 마저도 ‘無限 空間’이란 무서운 전율을 일으키는 것이라 했다.

東洋에서도 易은 ‘太極’이란 有에서 始作된다 라고 했다.

그러나 老子는 道德經 42장에서 無에서부터 始作한다고 했으며 이 点에서

老莊과 佛敎 思想은 相通한다.

天符經 81자의 구절 하나 하나를 새로운 겨레 數論의 公理로 삼아 이를 證明해 나가는 方法을 取하면서 이를 진나의 논리와 比較하려 한다. 天符經을 두고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여기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데리다의 말 대로 문헌이란 누가 언제 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內容 속의 意味가 무엇인지 묻는 것이 더 重要하다. 81개 글자 가운데 2/3이 數이다. 먼저 天符經 전문을 여기에 우선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一 始 無 始 一 析 三 極 無
        盡 本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一 積 十 鉅 無 匱 化
        三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運 三 四 成 環 五 七 一 妙
        衍 萬 往 萬 來 用 變 不 動
        本 本 心 本 太 陽 昻 明 人
        中 天 地 一 一 終 無 終 一

 

그리고 여기서 文字와 數字를 區別하여 우선 文字가 가지고 있는 構造를 살펴보자.

漢字로 되어 있는 文字는 모두 對稱 兩元的 構造로 되어 있다.

1. 始와 終, 2. 析과 積, 3. 盡과 櫃, 4. 生과 成, 5. 運과 環, 6. 天과 地, 7. 合과 妙衍, 8. 往과 來,

9. 用變과 不動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天과 地는 그 사이에 人이 들어가 三元的이 된다.

天符經은 現代 數學에서 問題가 되고 있는 1. 假無限과 實無限의 문제, 2. 無限의 一對一 對應의 문제,

3. 數學과 超數學의 문제, 4. 集合論과 逆說의 문제, 5. 괴델의 不完全性 整理의 문제 등 제반 문제를 一括的으로 含縮하고 있는 매우 重要한 문헌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81자를 모두 公理化 시켜 놓으면 다음과 같다.

 

한공리 1-1 一始無始一
한공리 1-2 一終無終一
한공리 2  析三極 無盡本
한공리 3-1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한공리 3-2 一積十鉅 無櫃化三
한공리 4-1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한공리 4-2 大三合六 生七八九 運三四 成環五 七一妙衍 
한공리 5-1 萬往萬來
한공리 5-2 用變不動本
한공리 6-1 本心本太陽
한공리 6-2 昻明 人中天地
한공리 7  一

 

여기서 ‘한공리’라고 명칭을 붙인 이유는 窮極的으로 天符經이 全切가 部分이고 部分이 全切라는 것을

말하려는 데, 바로 우리말 ‘’이 그러한 意味를 사전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公理’라고 하는 것은 유크리트 原論에서 그 취지를 빌려 온 것이다.

바로 위의 한공리들은 그야말로 數와 宇宙의 기틀이 되는 것으로서 이 기틀 위에 秩序가 成立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공리를 만드는 順序에 있어서 모든 것이 原文의 順序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데,

한공리 1-1과 1-2 만은 원문의 처음 것과 마지막 것을 함 묶음으로 붙여 놓았다.

‘一始無始一’에서 始作하여 ‘一終無終一’로 끝나는 天符經은 모두가 이렇게 對稱的 構造로 構成돼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공리 7이다. 즉 ‘일’은 1-1과 1-2를 事實上 媒介해 주는 役轄을 한다. 즉, 처음과 마지막을

連結시키는 고리(環)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전체 공리를 成立시키는 베타 공리적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들 공리 속에는 古對로부터 現代에 이르는 모든 數學의 數學論이 모두 包含돼 있는

莊嚴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공리를 사용하면 난해한 현대 수학의 중요한 부분들을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무엇 보다도 우리 겨레가 얼마나 높은 水準의 數論을 파악하고 있었는지 하는 것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바로 現代 數學論에서 가장 問題示 되는 ‘逆說’의 문제에 대한 天符經의 見解가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元曉의 思想을 理解하는 데도 天符經에 나타난 數에 대한 理解 없이는 不可能하다고

보며, 그런 意味에서 보더라도 天符經이 그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古代로부터 傳해 내려 오면서

우리 思想家들의 思惟 構造를 決定해 온 公理와 같다는 事實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한공리 하나 하나를 現代 數學者들의 그것과 比較하면서 理解해 나가기로 한다.  

 

2. 한공리 1-1: “一始無始一”

‘數’라는 槪念이 그리스에서 생긴 이래 한번도 지금까지 數의 槪念 自體에 대한 定義를 내린 적은 없었다. 그 理由는 1, 2, 3,...같은 소위 自然數들을 누구나 疑心없이 自然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數들에 對하여 ‘自然數(natural number)'라고 한다.

그러나 19世記 初부터 학자들은 이러한 直觀的으로 自然스럽게 받아들여지는 數 槪念이 아니고

嚴密하게 定義된 그러면서도 그 定義가 直館的이고 自然스런 理解로서도 빗나가지 않는

그러한 自然數에 대한 定義를 내리는 것이 必要하다는 事實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려오다가 자기가 그림(figure)을 그려넣는 바탕(ground)이 무엇인지를 갑자기 意識하는 것과 같다.

東洋畵에서는 화가들이 일찍부터 바탕도 그림으로 함께 생각해 왔지만 西洋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현대화가 가운데 에셔나 마그리트 같은 작가들에 의하여 겨우 이 事實이 알려지기 始作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2’라는 數를 定義하라고 하면 1 ‘다음’이라고 할 것이다. 3은 2 ‘다음’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數 그 自體로부터의 定義가 아니라, 그 前의 數를 먼저 말하고 ‘다음’이라고 말하는 方法으로

定義할 수밖에 없다.

이런 方法은 嚴格한 意味에서 어떤 外部에서 定義되지 않는 無定의 數를 導入하여 自然數를 定義하는 方法이다. 그러면 어떻게 無定의 數를 導入하지 않고도 自然數를 定義할 수 있는 方法이 없을까? 그래서 어떤 自然數 N에 對해 自然數 N을 한가지 N으로 알 수 있는 方法으로 定義하는 方法은 없을까?

이 말은 數를 定義할 때에 지금까지는 他者 言扱的 方法을 取해 왔다는 것을 意味한다.

3을 定義할 때에 2를 通해 定義했다는 것을 意味한다.

이제부터는 數를 自己 言扱的으로 한 번 定義해 보자는 것이다.

우로보로스를 切斷내기 以前의 狀態에서 數를 定義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數의 自己 言扱的 定義 方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폰 노이만의 方法을 所介하면 다음과 같다.

太初에 無, 즉' 0'이 있었다고 하자. 이제 無에서 빅 뱅이 생겼다. 太初의 無를 '0'라고 한다면 빅뱅은 無에 對한 集合이 生겼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0'과 區別하기 위하여 直線을 하나 0에 그어 ꍋ로 표시한다.

지금부터 創造가 始作된다. 空集合 ꍋ를 要素로 하는 集合이 1개 생겨났다. 이를 (0) 로 표시한다. 이것을 ‘1’이라고 이름 짓는다. 다음으로 지금까지 만들어진 集合들로 새로 만들어지는 集合은 0과 1로 되는 集合 (0, 1)이다. 이것을 ‘2’라고 이름짓는다. 이렇게 해서 다음과 같이 次例로 集合이 만들어진다(김용국, 1997, 277).

에덴 東山에서 신이 인간을 만든 다음에 그 인간으로 하여금 이름을 짓게 했다. 아마 그 때에 인간이 이름 짓는 방법이 바로 이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겨레 경전 天符經은 이를 ‘一始無始’라고 했다. 그러면 0과 0의 集合 (0)은 다르다는 한 가지 事實이 밝혀졌다. 어떻게 다른가. 0이 集合으로 表示될 때에는 0도 嚴然한 1個라는 ‘갯수’가 되어진다. 그러면 ‘1’은 元素 하나로 이루어진 單 集合 (ꍋ)로 定義한다.

이제부터 우선 겨레 경전은 말하기를 그 첫 구절에서 ‘일(ㅡ)은 無로부터 始作하고, 그 하나에서 다시 또 始作이 된다. 一始無始一’라고 했다. 이는 위 集合論的 數 理解로서만 正確하게 解析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고 본다. 이 첫 구절은 마지막 구절 ‘一終無終一’과 韻이 一致한다. ‘始’와 ‘終’이 바뀐 것 뿐이다.

이는 한국인의 集合論 이해의 성격을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앞으로 칸토어와 西洋의 數學者들을

그렇게 괴롭히는 逆說의 解法을 찾는 실마리가 되며 元曉 역시 唯識 佛敎를 이해할 때에 역시 天符經의 數

理解 方法을 擇하고 있다는 事實을 미리 말해 둔다. 천부경은 이어 ‘析三極 無盡本’이라고 했다.

그러나 수학자 칸토어는 이제 기나긴 無限數의 여행을 하다가 여로에 지쳐 精神 病棟에서 죽고 만다. 죽은 칸토어의 靈魂을 위로하기 위해 먼저 여기에 천부경 전문을 독송해 두기로 하자. 그가 이 經을 알았더라면 그러한 悲劇은 겪지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한공리 1-1: “一始無始一”  Q.E.D.

3. 한공리 3-1: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갯수’냐 ‘順序’냐

칸토어의 數 産出 原理에는 종래의 입장과는 다른 한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산출 원리를 ‘제1산출 원리’와 ‘제2산출 원리’로 나누어 생각했다는 점이다. ‘제1산출 원리’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것으로 形成된 어떤 數에 1 또는 어떤 單位를 더해 나가는 방법이다. 1, 2, 3,...과 같은 방법이다. 이와 같이 성립된 數의 個數는 無數히 많다. 이 계열 속에는 最大의 數가 存在하지 않는다. 天符經은 이런 경우을 두고

“하나를 쌓아 큰 열이 되다. 큰 열이 허물어짐이 없이 3으로 變한다”라고 했다.

셀 수도 그렇다고 다수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겨레는 아무리 작게 나누어도 3이고, 아무리 크게 모아도 3이라고 했다. 卽, 無限은 3이란 뜻이다. ‘셈’ 한다는 것과 ‘셋’은 결국 같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여기에 겨레의 數 槪念이 모두 3이란 數에 있다는 事實을 發見하게 된다.
 
第2産出 原理는 第1部類에 속한 모든 數를 超越한 새로운 數를 成立시키는 방법이다. 第1部類에 속한 數

全切가 그것의 順序에 따라 주어졌다고 보고 이를 묶어 하나의 數로 理解하는 방법이다. 天符經은 이를 ‘삼’에 對하여 ‘대삼합 大三合’이라고 했다. 第1次 演算과 2次를 區別하기 위한 것이다.

無限이 3이니 無限의 無限인 ‘큰3’이란 뜻이다. 그래서 칸토어와 같이 우리 겨레는 無限이 여러 개 있고, 또 큰 것이 있고 작은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신도 ‘三神’이라고 하지 않는가. 칸토어는 自己의 集合論을 두고 신이 자기에게 제시해 준 것으로 이해할 정도였다.

그리고 數는 宇宙의 秘密 그 自體였다. 칸토어는 無限의 無限인 ‘大三’을 두고 ‘초한수 超限數’라 불렀다.

이제부터 우리는 두 産出 원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부터 考察한 다음, 超限數의 秘密을 알아 보기로 한다. 두 産出 原理의 關係를 말하기 전에 ‘서수(數 orderded number)'와 ’기수(數 cardinal number)'의 槪念을 알아두는 것이 必要하다. 序數는 첫째, 둘째와 같이 順序대로 세는 것이다. 基數는 1, 2, 3...과 같이 集合의 크기를 測定할 때 사용된다. 順序數는 일렬로 順序있게 배열시킬 때 ‘位置’와 ‘順序’를 定하는 데

使用된다. 이제 天符經에 따라 두 演算 방법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