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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民族의 精神世界, 風流- -山神- -三聖

장백산-1 2012. 11. 19. 13:55

 

 

 

韓民族의 精神世界, 風流, 山神, 三聖| 동영상
알마자야 | 조회 51 |추천 0 | 2006.07.0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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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新羅 末期의 聖人 崔致遠은 본디 우리나라에는 玄妙한 道가 있었으니,

佛敎,儒敎,道敎가 다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라고 얘기했다.

 

그 自身이 當代의 뛰어난 儒學者요.또 末年에는 全國의 절을 떠돌다 마침내 神仙이 되어 사라졌다는

神秘의 人物 崔致遠이 얘기한 그 玄妙한 道란 무엇일까?

 

우리 韓民族은 예로부터 스스로를 天孫族이라 불러왔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받들며 살아온 民族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神인 桓因과, 그의 뜻을 이땅 위에 가르친 桓雄,

그리고 그 하늘뜻으로 나라를 세워 사람들을 다스린 檀君, 檀君의 子孫이 바로 韓民族이기 때문이다.

 

이는,하늘의 뜻이 땅을 通하여 사람에게 傳해졌기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다르지 않다는 三神一體 思想에 根據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根本자리인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늘의 밝음과 땅의 참된 길,그리고 人間의 마음이 하나로 連結되는 자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桓雄時代부터 하늘에 祭祀를 지낼 때면,風伯은 天符를 鏡에 새겨 들고 있었다고 傳한다.

이것이 바로 天符經 81字이다.

 

天符經의 中心思想은 結局 하나思想이다. 하늘인 陽과 땅인 陰이 陽과 陰의 中間的 性格인 人間에게서

하나로 完成된다는 것이다. 結局,그 根本된 자리에 있어서는 하늘과 땅,사람이 하나라는 것이다.

 

이러한 思想은 곧 하늘을 섬기는 信仰으로 發展하게 되었다. 스스로 하늘처럼 밝아지고,

땅의 神靈스런 氣運으로 調和롭게 살며,人間의 根本을 알아 밝은 道理를 行하고자 했던 것이다.

 

高朝鮮의 始祖 檀君王儉은 雲師에게 命하여 摩尼山에 祭天團을 쌓고 天祭를 올렸다.

이러한 傳統은 高句麗나 百濟, 新羅에게도 傳해져 왔다.

 

新羅의 歷代王들은 해마다 하늘에 祭祀를 올렸다.

天祭를 지내던 東西南北 中央의 다섯단을 오악이라 지정하고, 더욱 神性視했다.

 

이처럼 하늘의 뜻을 살펴 百性을 다스리고자 했던 것이 統治者의 道理였으며,

이것은 곧 모든 人間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弘益人間 思想이라는 하늘의 을 이 땅에 펼치는 길이기도 했다.

 

佛敎가 이땅에 들어오기 前까지 우리民族은 이러한 弘益人間 思想과 信仰 아래

三郎이란 聖殿을 두고, 桓因, 桓雄, 檀君을 함께 모셔왔다고 傳해온다.

 

송수호박사:

記錄에 보면 "大雄이란 佛敎의 글이 아니다" 라는 글이 있다.

大雄殿이란  原來, 桓雄天皇을 모시는 곳이지요.

佛敎가 들어와서 그 大雄殿에 佛像을 모신 것이지요.

 

그리고, 檀君像이나 桓雄像은 뒤의 山神閣으로 모시게 되었고,

그 緣由로 지금도 三神閣을  大雄殿이나  佛像보다 한치라도 높은 곳에 모시지,낮은 곳에 모시지는 않습니다.

 

 

太白逸史  中, 神市本記 제3편에서는 이렇게 傳하고 있다,

"佛像이 처음으로 들어와 절을 짓고 大雄이라 하였다. 이는 僧道들이 옛 慣習을 그대로 따라 이름을 빌린 것이요.

本來는 승가의 말이 아니다"고 하였다.

 

이러한 옛 記錄에 따라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사찰의 構造를 살펴보자.

지금의 사찰은 당시에 三郞이라 불렀던 聖殿의 構造와 흡사하다.

 

佛敎가 이땅에 들어오기 , 大雄殿은 桓雄을 모셨던 곳이며,

지금은 석가의 16제자를 모셔둔 大雄殿  그 뒷편의 三聖閣 또한,

本來는 桓因, 桓雄, 檀君, 이렇게 세분을 모셨던 곳이다.

 

그 三聖閣 뒷편에 山神閣 역시,스스로 전두의 脈을 끊고 入山하여 神仙이 되었다는

檀君朝鮮의 47代 고열가檀君을 모신 곳이다.

 

結局  新羅 땅에 存在했었다는 前佛,卽 석가佛 以前에 깨달은 부처란 바로 桓雄을 일컫는 것이다.

桓雄은 지금도 佛敎에서는 帝釋天을 다스리는 帝釋天王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우리 民族 傳統思想과 信仰과 桓因 桓雄 檀君으로 이어지는 우리 歷史 이야기는

新羅의 안함大師가 쓴 歷史書 三聖記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安함은 元曉와 동시대를 살았던 高僧으로,黃龍寺 9層塔의 建塔을 建議하기도 했으며,

三國遺史에는 海東의 明賢으로 記錄되어 있는 新羅 10大 聖賢 중의 한분이다.

이처럼 新羅時代에는 桓人, 桓雄, 檀君의 對한 이야기가 많이 傳해져 온다.

 

三聖記를 남겼던 안함大師는 元曉보다 조금 앞선 人物이며,

表訓天詞라는 冊을 남겼던 表訓大師는 元曉와 함께 唐나라 유학길을 함께 떠났던 義相의 제자다.

 

그리고 鸞郞碑文과 天符經을 韓文으로 번역해 남겼던 崔致遠은 유학자인 설총의 후예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新羅時代 全切를 通해 수많은 聖賢들이 佛敎가 아닌

우리의 歷史와 傳統思想에서 떠나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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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으니,이를 풍류라 한다

 

說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 三敎 接化群生

가르침의 근원은 선사[仙家史書]에 자세히 실려있는데,

유,불,선 삼교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서,이를 접하면 모두가 생명과 삶을 얻는다.

 

且如 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집에 들어 효도하고   나라에 나아가 충성하니,이는 노사구(공자)의 교지(敎旨)가 되고.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억지로 하지 않으면서 행하고,말없이 가르치는 것은 주주사(노자)의  근본이 되며,

 

諸惡莫作 衆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악행을 짓지 않고 선행을 쌓는 일은 축건태자(석가)의 교화(敎化)가 된 것이다.

 

 

"원래,공자,석가,노자의 유도,불도,선도는 우리 천손민족의 신선도에서 파생되었으며,

천제,천지인 삼신으로부터 이어오는 풍류도의 장생불사 신선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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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삼성각,산신도

 

경남 남해 용문사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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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신원사 중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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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갑사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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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군 소재사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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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 고견사 약사전(삼성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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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군 유가사 산령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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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http://cafe231.daum.net/_c21_/bbs_search_read?dataid=76&grpid=14mBU&fldid=BzfS&fenc=2mnAL8W3c3I0&contentval=0001Ezzzzzzzzzzzzzzzzzzzzzzzzz&nenc=PkMRnh5KVwAuHyXKZnRq4g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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