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道一以貫之 (도는 하나로써 꿰뚫음이다)

장백산-1 2012. 12. 14. 13:44

 

 

 

일이관지 (一以貫之)

 

슬기 2012.03.10 09:54

 

一以貫之는 『논어(論語)』 「이인편(里仁篇)」에 나오는 말로 ‘하나로 꿴다.’는 뜻이다.

어느 날 공자(孔子)가 증자(曾子)에게 말했다.

“삼/셋(參)이여, 모든 것의 道는 하나로써 모든 것을 꿰뚫음이다(參乎吾道一以貫之).”

셋(三)이 하나(一)로써 世上 모든 理致를 꿰뚫음이 道다 

공자가 나간 後 제자들이 그 뜻을 묻기를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이에 증자(曾子)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夫子之道忠恕而已矣).”

 

또 「위령공편(衛靈公篇)」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어느 날 孔子가 자공에게 말했다. “사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알고 있는 사람으로 아느냐?”
자공이 대답했다. “그게 아닙니까?”
공자가 말했다. “아니다. 나는 ' 셋이 하나'로써 世上의 理致를 꿰뚫었느니라.”
공자는 당시 많이 안다는 이유로 聖人으로 불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자공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자공은 남들에게 말을 박식하게 해서 어떤 사람들은 공자보다 더 나은 것으로 알기도 했다.

 

이에 반해 증자는 그다지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實踐 爲主의 수양을 한 사람으로 공자가 一以貫之를 말했을 때 금방 그 뜻을 알았다. 그러나 오히려 博識한 자공은 그렇지 못했다. 공자는 그에게 많이 배우고 아는 것보다 오직 '하나'의 眞理로 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을 일깨워 준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희는 ‘博學多識이 聖人의 根據가 아니고 꿰뚫는 것聖人의 根據’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공자는 충(忠)과 서(恕)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한 것이다.

 

충(忠)과 서(恕)에 대한 解析은 多樣하게 있다.

주희는 ‘本來 善한 自己의 本性을 純粹하게 發現하는 것을 충(忠)이라 하고, 自己를 미루어 다른 것에 미치는 것을 서(恕)’라 하였다.

 

또한 왕부지(王夫之)는 ‘자기의 이치를 다하면 세상의 이치를 貫通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주례소(周禮蔬)」에서는 ‘나를 미루어 生覺하여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헤아리는 것으로 萬物의 理致가 모두 파악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모두가 장자의 이른바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면 인(仁)을 다한다.’는 말과 통하는 것이다.


서(恕)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다.’는 小極的인 道德律로 傳統的으로 解析해오고 있지만, 最近에는 ‘自己가 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自己가 通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通達하게 하라.’는 積極的인 解析을 덧붙이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自己의 마음이나 理致를 다 하면 다른 사람이나 萬物과 통(通)할 수 있는 理由나 根據는

‘사람의 本性과 事物의 理致가 '하나'의 根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것으로 老子는 ‘사람이란 백(魄)이 일(하나/一)을 품고 있는 存在’라 했다.

여기서 일(一)은 ‘宇宙가 탄생하기 前의 混沌의 원기(元氣) 또는 萬物의 시원(始原)이 되는 도(道)’를

意味한다.

 

사람이나 萬物은 한 根源(일/ㅡ)에서 나온 存在들이므로 事物의 本質인 이치(理致)나 사람의 本質인 本性은 동질적(同質的)인 것이다. 여기에 사람이 事物의 理致를 깨달을 수 있는 根據가 있다 할 것이다.

 
孔子는 충(忠/衷)을 實踐하여  內的으로 自己 完成을 기하였고

自身의 마음을 거울삼아 다른 사람이나 萬物을 비추어(照見) 서(恕)를 實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