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우리 모두가 함께 가야 할 길???

장백산-1 2013. 1. 22. 02:21

 

 

반야심경(般若心經) 54-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12.-반야심경(般若心經)
뽀얀 | 조회 51 |추천 0 |2010.02.01. 13:46 http://cafe.daum.net/sejon/389m/313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이제 지금까지 說한 般若心經의 內總整理할 때가 되었습니다.
經에서는 總括하여 整理를 함에 있어 다시금 내용적인 면을 되새기지 않습니다.
언설을 세움으로써 오히려 眞實이 歪曲될 수 있고, 本來의 의미를 傷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 채택한 방법은 이 모든 내용을 하나의 眞言으로 내세워

總括的으로 結論짓는 方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眞言이

바로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입니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진언은 원래 번역하지 않고, 산스크리트어 원음을 그대로 소리내는 것을 原則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그 理由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진언에 담겨 있는 의미가 부처님의 깨달으신 境地 그 自體를 直說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도 奧妙하고 깊어 우리 凡夫의 사량(思量)이나 理論으로는 도무지 理解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번역에 의해서 진언이 담고 있는 本來의 意味, 깨침의 世界를 歪曲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두 번째, 眞言이 가지는 소리의 振動 그 自體가 깊은 氣運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菩薩이 三昧를 얻어서 그 힘으로 特定한 소리에 가피를 입힌 것이 眞言이며, 또한,

이 宇宙의 根源的인 振動의 氣運이 眞言이므로 그 소리를 떠난 眞言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理由 때문에 보통 이 구절은 解析을 하지 않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原語가 가지는 意味를 살펴봄으로써 그 含縮된 意味를 알아보는 것도

나름대로 意味는 있으리라 生覺하며,또한 이미 이에 대한 많은 解析이 이미 普遍化되었기 때문입니다.

呪’의  산스크리트 語는,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스바하’인데, 그 意味를 살펴보면,
‘가테(gate)’는 ‘간 이여’  ‘가자 "

 ‘파라(para)’는‘저 언덕, 피안’을 意味하고,

 ‘상(sam)’은 ‘완전히’라는 意味를 가집니다.
‘보디(bodhi)’는 ‘깨달음’의 뜻이고, ‘스바하(svaha)’는 ‘영원하라, 행복하라’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眞言의 힘을 빌어 『반야심경』이 가지고 있는 깨침의 소리를 含縮하고 있는 이 呪文은

어떠한 觀點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대략 아래와 같은 意味로 連結하여 解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卽, 이 언덕에 있는 無明 衆生의 立場에서 解析해 본다면,

“가세, 가세, 저 언덕으로 가세, 우리 함께 저 언덕으로 가세,깨달음이여! 행복이 있어지이다(영원하여라)”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고,

 

어리석은 衆生에서 마음을 닦아 나가는 修行者의 立場에서 解析해 본다면,
“가는 이여! 가는 이여! 저 언덕으로 가는 이여!  저 언덕 온전히 가는 이여! 깨달음이여! 永遠하여라”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우리들 衆生의 立場에서 반야바라밀다를 증득하신 깨달은 부처님의 世界를 바라보는 立場에서라면 조금 달리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신 이여! 가신 이여! 彼岸으로 가신 이여!   완전히 가신 이여!  깨달음을 이루신 이여! 永遠하소서.”

또한 이미 반야바라밀다를 증득하여 깨달음에 이르신 부처님의 立場에서 解析한다면,

다음과 같은 해석도 가능할 것입니다
“건너갔네, 건너갔네. 저 언덕에 건너갔네.   저 언덕에 모두 다 건너갔네. 깨달음을 成就했네.”

 

 


以上과 같은 意味의 解析을 基本으로 하여 조금의 의역(意譯)을 붙여 본다면,

다음과 같은 解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成就했네, 성취했네. 모든 所望 성취했네.  萬 衆生들의 모든 所望 다 성취했네.”
“幸福하여라, 행복하여라. 우리 모두 행복하여라.   이 世上 우리 모두 다 함께 행복하여라.”

이 呪文이야말로 般若心經 全切의 結論이며 佛敎 全切의 結論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주문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窮極의 境地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게송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解答을 明快히 내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어딘가로 向해 길을 가고 있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나, 自身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방황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가야할 곳을 올바로 보고, 그 길에 全力投球하여 魂身의 神命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解答은 모두가 諸各各  이겠지요.

돈을 向해,  온갖 財物을 쌓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 名譽를 가지기 위해 달려가는 등

自身 스스로의 利益과 安樂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한, 家族의 利益, 社會의 公益, 國家의 平和를 위하는 方向으로 

생(生)을 바쳐 내달리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 世界를 環境 汚染에서 求해 보고자 이리 저리로 뛰어 다니는 사람들도 있으며,

社會의 온갖 否正腐敗를 척결해 보고자 사회 곳곳에서 모니터 역할을 자청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 힘들고 가난에 시달리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 나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좁은 所見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고 있는 方向人生 全切에 걸쳐 있지 않고,

당장의 눈앞의 利益만을 내다보며 걸어가고 있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高等學生은 오직 大學 進學이라는 目標를 向해 나아가고 있으며, 大學生은 좋은 職場을 向해, 職場人들은 昇進을 向해 뒤도 안 돌아보고, 그렇다고 좀 더 앞을 내다보지도 못하고 熱心히 뛰고 있을 것입니다.
고개를 들어 社會를 바라보면, 모두들 숨가쁘게 뛰는 사람들뿐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根本을 되돌아 살펴보면, 이렇게 熱心히 뛰고 있으면서도

自身이 왜 뛰고 있는지, 어디를 向해 뛰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大部分입니다.
남들이 모두 뛰고 있으니 그저 따라서 뛰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듯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의 目標를 向해 熱心히 뛰어가고 있지만,

위에서 보았듯이 우리가 뛰어 가는 곳, 즉, 삶의 目標 모두가 諸各己 다르게 마련입니다.
東쪽으로 가는 사람, 西쪽으로 가는 사람, 그 中間에서 갈 길 몰라 헤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賢明한 길일까?
우리 人間이 어리석은 存在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点을 모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般若心經의 末尾에 나오는 呪文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는

바로 이 疑問에 對한 解答을 提示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呪文에서는 바로‘生死의 괴로움이 없는 彼岸의 저 언덕으로 가라는 길을

明確히 提示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智慧의 完成’을 向해 가라고 하는 人生의 目標  設定에 對한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이지요.

 

 

自身만의 安樂을 위하는 財物과 名譽를 向한 길,

個人, 혹은 家族만을 위한 길,

社會와 내 國家의 安樂을 위한 길,

모든 人間을 위한 길

이 모두는 결코 窮極의 目的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人類와, 모든 生命 있고 없는 一切를 위해

모두가 ‘온전한 존재로서 하나’라는 同體大悲心의 마음으로

이 모두가! 함께 깨칠 수 있도록 하는 眞理의 이야말로 우리가 가야할 窮極의 境地인 것입니다.

언뜻 보아서는, 社會, 國家를 위한, 그리고 모든 人間을 위하는 길이 훌륭한 듯 보여도

事實은 集團利己主義이거나, 나와 너, 人間과 自然을 갈라놓고 分別하는

좁은 意味의 이타(利他)일 뿐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우러져 함께 북 치고, 장구 치며,神命나게 나아가야 할 은 다름 아닌,

모두가 하나되는 世界,  깨침의 세계, 저 彼岸의 언덕인 것입니다.
般若波羅蜜의 세계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은 바로 이러한 훤칠한 길이요, 시원스레 뻗은 걸림이 없는 길입니다.
恒常 우리가  處한 狀況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내가 가고 있는 길을 다시 한번 点檢해 보고,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는, 다시 말해, 每 瞬間  어디를 向해 가고 있는가를  点檢해 보는 것,

觀察하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工夫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彼岸을 向해 가야 합니다.

죽음을  해 갈 것이 아니라,

眞情  삶도, 죽음도 없는 저 彼岸의 언덕을 向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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