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觀心修行과 破相論/마음을 지켜보는 일

장백산-1 2013. 1. 26. 14:59

 

 

달마 " 觀心 修行法 "

 

 

 

 

달마 觀心 수행법 / 법상스님

 

 

                                    달마스님의 파상론(破相論)을 보면
                         觀心 修行에 대한 所重한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깨달음에 이르고자 決心했다면
그가 수행할 수 있는 가장 本質的인 方法은 무엇입니까?”
“가장 本質的인 方法은
다른 모든 수행법을 包含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다.”

다른 一切 모든 修行法을 包含하고 있는
가장 本質的인 修行方法은 다름 아닌
마음을 지켜보는 이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마음을 觀하는 것이 곧 마음을 비우는 일이며,
무심(無心)에 이르는 길이고, 執着을 놓는 일, 放下着의 길이며,
나아가 本性을 살피는 길인 것입니다.
 
 제자는 다시 묻습니다. 

"그러나 三界와 六途는 無限히 넓습니다.
고작 마음을 지켜보는 일을 가지고
어떻게 이 끝없는 煩惱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三界의 業도 오직 마음에서 나온다.
만일 그대의 마음이 三界 속에 있지 않으면
그것은 三界를 超越한 것이다."

삼계와 육도의 모든 業 또한
結局 우리의 마음으로 지은 것에 다름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三界 속에 있지 않으면
곧장 삼계를 초월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三界 속에 있지 않다는 말은
'마음을 비운' 자리, 無心의 자리를 意味합니다.
 
우리는 삼계 육도를 다 淸淨하게 가꾸려 애쓸 必要가 없으며,
須彌山 보다 높은 業障을 다 녹이려 애쓰거나
그 무거운 業障을 탓하려 할 必要는 없습니다.

오직 마음을 觀함으로써
至極한 沈默, 無心을 이루게 되면
本來 아무 일도 있지 않았던 本來의 자리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달마스님은 또 이야기 합니다.

"그대가 닦는 수행이
그대의 마음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그대는 깨달아야 한다.
만일 그대의 마음이 淸淨하다면 모든 佛國土 또한 淸淨하다."

지켜보는 깨어있음의 수행은
그대로 우리의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깨어있지 못할 때 마음은 있지만,
온전히 깨어있는 瞬間 마음은 사라집니다.
그대로 무심(無心)입니다.

온전히 깨어있는 바로 그 瞬間이
그대로 깨달음의 瞬間이지
다른 곳에서 깨달음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청정하다면,
다시 말해 우리가 마음을 잘 지켜봄으로써 깨어있을 수 있다면,
깨어있음으로 無心을 이룰 수 있다면,
모든 불국토가 그대로 청정해 질 것입니다.
깨어있는 瞬間이 그대로 부처요, 불국토라는 말이지요.
 
破相論의 본문에서는 
조금 더 構體的인 觀心수행의 法門을 청해 들을 수 있게 됩니다.
修行을 成就하자면
여섯가지 도적을 쫓아 버려야 하는데,
눈의 도둑을 쫓아 버리자면
物質的 對相에 執着하지 않아야 하고,
귀의 도둑을 억제하자면
들리는 소리에 左右되지 않아야 하며,
코의 도적을 降伏시키자면
香氣에 대하여 分別하지 않아야 하고,
입의 도둑을 制壓하자면
맛에 貪味하지 않으며, 法다운 말만을 해야 하고,
몸의 도적을 항복받자면
모든 感觸에 좌우되지 않아야 하고,
마음의 도적을 調節하자면 無知를 극복하고 智慧를 닦아야 한다.

여섯가지 우리 몸의 感覺器管인 눈, 귀, 코, 혀, 몸, 뜻을 通해서 들어오는
그 感覺의 對相인 色, 聲, 香, 味, 觸, 法이
가장 큰 도둑이며, 도적이라고 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향기 맡고
입으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며, 마음으로 분별하는 등
이 모든 우리 몸의 器管들은
바깥의 對相들 卽, 六境, 色-聲-香-味-觸-法을
끊임없이 취해 가지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 時도 平和로울 날이 없이 바깥의 對相을 貪하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物質(色)을 탐하고, 귀로 좋은 말(聲) 듣기를 원하며,
코로 좋은 향기(香) 맡기를 바라고, 혀로 맛(味)에 탐닉하고,
몸으로 좋은 감촉(觸)을 탐하며,
마음으로 온갖 分別을 일으켜 생각(法)을 지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여섯 도둑 때문에
우리는 늘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고 貪내며 성내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여섯 感覺器管으로 좋은 것을 탐내다가(貪心)
얻지 못하였을 때 화(嗔心)를 낸단 말입니다.
이처럼 여섯 器管의 도적에 휘둘려
바깥의 여섯 對相이 텅~ 비어 한 것(虛空)임을 알지 못하고
貪心과 嗔心을 일으키는 그 마음이 바로 어리석음(癡心)인 것입니다.

모름지기 修行者는
이 여섯가지 도적들을 잘 降伏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六根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것들을 잘 觀하여
들고 나는 그 어떤 境界에도 執着하는 바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六境이라는 바깥 對相에 執着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눈의 도둑을 몰아내려면 
눈에 보이는 모든 物質的 對相에 執着하지 않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對相에 좋고 나쁜 分別을 짓고
좋으면 愛着하여 붙잡으려 하고, 싫으면 憎惡하여 버리려고 애를 쓰니
色이라는 境界에 휘둘려 마음을 煩惱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귀의 도둑을 억제하자면 
귀로 들려오는 그 어떤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아서
칭찬이든 비난이든 그 어떤 좋고 나쁜 소리에 左右되지 않아야 합니다.
칭찬에 執着하여 자꾸 듣고자 애쓰지도 말고
칭찬을 들었다고 쉬 들뜰 것도 없으며,
비난을 들었다고 煩惱에 휩싸여
내 中心을 잃고 헤매어 서도 안 된 다는 말입니다.
코의 도적을 항복시키자면 
香氣에 對하여 分別하지 않아야 합니다.
香氣에 分別하면 곧장 눈 귀 코와 몸 뜻도 함께 分別을 일으켜
온갖 執着을 만들어 냅니다.
입의 도둑을 제압하자면 
먼저, 맛에 貪味하여 飮食을 섭취하지 않아야 합니다.
맛에 貪함이 많으면 때를 區分하지 못하여
時도 때도 없이 먹게 되고,
그리하여 그 貪心이 뱃속을 채우게 되어
몸을 어지럽히고 그로 因해 精神이 昏迷해져 마음에도 害를 입힙니다.

또한 입을 잘 觀하여 法다운 말만을 해야지
生覺난다고 다 입 밖으로 내 놓게 되면
사람이 實없어 지고 空虛해 집니다.
늘 입을 잘 다스려 沈默을 지킬 일이고
말을 할 때라면 몇 번이고 觀하여 法다운 말을 어렵게 꺼낼 일입니다.
몸의 도적을 항복받자면 
모든 感觸에 좌우되지 않아야 합니다.
자칫 감촉에 執着을 하게 되면
淫蕩한 行과 삿된 行으로 온갖 身業을 짓게 됩니다.
몸의 行動을 늘 잘 觀하여
어떤 行動에도 感觸의 欲望에 휘둘리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마음의 도적을 잘 조절하자면 
수행을 통해 어리석은 마음을 잘 극복하고,
觀 수행을 通해 智慧를 닦아야 합니다.
늘 境界따라 올라오는 마음을 잘 觀하여
그 마음이 신구의(身口意)로 어떻게 퍼져 나가는 지 잘 살펴야 합니다.

結論的으로 이 여섯가지 도적을 잘 警戒하여
이 도적들이 우리를 侵犯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몸의 이 여섯가지 器管을 잘 지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城의 외곽이 튼튼하고 병사들이 두 눈 뜨고 깨어 있게 되면 
함부로 도적들이 城을 뛰어 넘을 수 없지만,
병사들이 잠 자느라 깨어있지 못하게 되면
쉽사리 도적이 城을 침범하듯,
우리 몸의 여섯 器管을 잘 觀하여
깨어있는 마음으로 지켜봄으로써
여섯가지 對相이 여섯 器管을 侵犯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스님께서는 
여섯 도적을 降伏 받기 위해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마음을 거두어 內面을 觀察하고
밖의 對相의 일을 밝게 깨달아 잘 觀照할 수 있다면
貪嗔痴 三毒心을 完全히 끊을 수 있고,
밖에서 들어오는 여섯가지 도적들을 잘 막을 수 있다.

그러면 많은 功德과 갖가지 藏嚴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요.
眞理에 이르는 많은 길을 낱낱이 成就할 것이다.
그렇게 수행하는 사람은 머지 않아 부처를 증득하게 되리라."
 
여섯 도적을 잘 觀照함으로써 
三毒心을 끊고 온갖 功德을 成就하며
머지 않아 부처를 증득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수행의 關鍵은 바로 이 여섯 感覺器觀인
여섯 개의 門을 잘 觀照함으로써
여섯 도둑들이 들어오는 것을 잘 막아내는 데 있다고 할 것입니다.
 
破相論의 末尾로 갈수록 
달마스님은 더욱 간절한 法門으로 우리를 일깨웁니다.

"부처는 깨어있음을 意味한다."

깨어있음이 그대로 부처인 것입니다.
그러니 瞬間 瞬間 깨어있음을 通해
우리는 부처를 만나는 것입니다.
天地가 搖動을 치는 엄청난 부처를 찾고자 애쓰지만 않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아주 쉽고도 은은하고 평화롭게 부처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涅槃의 永遠한 기쁨은 마음이 쉬는 데서 나온다...
世上을 지켜보는 것이나, 거룩함을 지켜보는 것,
그것은 눈깜짝할 사이보다도 빠르다.
깨달음은 바로 지금 일어난다.
眞正한 門은 감추어져 있고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오직 마음을 지켜봄으로써 그 門을 찾을 수 있었다."
 

마음을 지켜보는 일이 마음을 쉬는 일입니다.
애쓰려는 마음, 깨달음에 도달하려는 마음을 모두 쉬고
묵묵히 마음을 지켜봄으로써 涅槃의 永遠한 기쁨은 나옵니다.
또한 世上을 지켜보고 마음의 거룩한 本性을 지켜보는 수행은
눈 깜짝할 사이보다도 빠르다고 합니다.

‘깨달음은 바로 지금 일어난다.
오직 마음을 지켜봄으로써 그 門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지금 바로 그대에게
깨달음은 限없는 平和로움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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