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과 현대물리학

阿彌陀佛 念佛

장백산-1 2013. 2. 9. 01:15

 

 

 

 

*우리 人間은 누구나가 다 고뇌와 빈곤이 없는 안락하고 풍요한 행복을 간구하고, 生老病死가 없는 영생永生의 理想鄕을 그리는 사무친 鄕愁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人間의 모든 문화 현상은, 비록 길고 옅은 차이는 있을지라도, 다 한결같이 인생고人生苦의 救濟와 眞正한 自由를 그 究境 目的으로 하고 있으며, 다만 그 目的을 實現하는 方法에 差異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정작 인간의 고액苦厄을 구제함에는, 먼저 人間의 本質, 곧 참다운 자아自我가 무엇인가 分明히 알아야 할 것이요, 이러한 문제를 解決하려는 모든 종교 철학 가운데서, 인간의 근본 바탕을 가장 철두 철미하게 밝히고, 영원한 안락의 경계에 인도하는 가르침이 불교임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불교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도, 일체 중생을 구제하려는 부처님의 거룩한 서원誓願과 不思義한 功德으로 藏嚴된 이상향理想鄕, 곧 극락세계極樂世界를 너무도 生生하고 印象的으로 밝히신 經典은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인데, 이는 무량수경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阿彌陀經입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極樂世界란, 慾界 色界 無色界 등 중생이 生死輪回하는 三界의 次元을 넘어 선,

永遠히 安樂한 복지福池로서, 時間 空間과 因果律을 超越한 境界이며, 우리 중생이 必境 돌아가야 할

마음의 故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허명무실虛名無實한 방편가설方便街說이 아니라, 嚴然한 永生 不滅의 實存이며, 우리들의 올바른 수행으로 業障이 消滅할 때, 우리 스스로 보고 느끼고 누리는 상주불변常住不變한 法樂의 境界입니다.

*정녕, 우리 중생은 本來의 自性이 阿彌陀佛이요, 우리가 本來 살고있는 故鄕은 極樂世界인데, 짖궂은 煩惱 業障에 가리워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지없이 생사고해에 방황하다가, 다행히 부처님의 교법敎法을 만나서, 비로소 참다운 自我와 眞正한 故鄕인 極樂世界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實로, 永遠 不滅한 宇宙 自體의 大生命이 바로 부처님이요, 그 부처님의 代名辭가 阿彌陀佛이며,

부처님의 慈悲 化身이 관세음보살이요, 부처님의 智慧 化身이 대세지보살입니다.
그것은 마치 無窮한 태허공太虛空에 陰과 陽의 이원二元이 圓融하게 作用하여 萬有가 生成하는 것과

비슷한 도리입니다.

*宇宙 스스로가 그대로 神秘不思義한 부처님이요, 宇宙에는 언제나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誓願이 充滿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阿彌陀佛이나 觀世音菩薩을 生覺하고 외우며 부르는 것은, 그것이 바로

부처님과 相通하고 부처님의 가호를 입게 되는 깊은 因緣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아로 돌아가는 성불의 계기가 되고, 또한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결정적인 선근이 되는 것이며, 여기에 부처님으로부터 베풀어지는 他力과 자기 수행의 自力이 아울러 感應하는 깊은 意義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참다운 실상세계實相世界인 極樂世界의 藏嚴 찬란한 境界를 흠모하고 동경하며, 宇宙 自身의

이름이요, 우리의 本來面目의 이름이기도 한 阿彌陀佛이나 觀世音菩薩을  一心으로 生覺하며 그 이름을

외우고 부르는 것은, 우리 범부 중생이 찰나찰나에 끊임없이 스스로 부처님임을 自覺하면서 부처가 되어 가는, 絶實하고 안온한 성불의 첩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음에 아미타불과 극락세계의 實相을 여의지 않는 念佛은 이른바 실상염불實相念佛이요 보왕삼매寶王三昧로서, 바로 진여자성眞如自性을 여의지 않는 念佛禪이 되는 것이며, 그래서 자력自力과 타력他力, 관觀과 염念, 정定과 혜慧를 함께 쌍수雙修하는 深心微妙한 念佛 功德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염불선念佛禪은 佛性에 들어맞는 天然自然한 수행법이기 때문에, 모든 수법修法을 종합 포섭하였으며, 종파宗派를 초월한 가장 보편적인 행법行法일 뿐 아니라, 바야흐로 分裂 鬪爭의 歷史的 危機에 直面한 不安한 現世代에 가장 알맞은 시기상응時機相應한 안락법문安樂法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미타불과 극락세계를 말씀하신 경전은, 화엄경, 법화경, 열반경, 능엄경 등 실로 이백 수십 부에 달하는데, 특히 華嚴經의 입법계품에는 普賢菩薩이 선재동자를 깨우치는 法門 가운데, “원하옵건데, 목숨이 마치려할 때 온갖 障碍가 消滅되어 極樂世界에 태어나 阿彌陀佛의 뵈올지이다”라고 찬탄하였고, 보적경寶積經에는 석존께서 아버지이신 정반왕에게 念佛하여 極樂에 往生하기를 간절히 권하셨습니다.

*마명馬鳴보살(불멸佛滅후 육백년경)의 기신론起信論, 용수龍樹보살의 십주비바사론과 지도론智度論, 또한 세친世親보살의 정토론淨土論등에서도, 念佛은 부처님의 無量 功德과 根本 誓願을 確信하는 수행이기 때문에 불보살과 感應하고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마치 順風에 돛단 배와도 같이 수행하기 쉽고 성불하기 쉬운, 이른바 이왕이수易往易修의 행법行法임을 찬양하였습니다.

*중국에서도 혜원慧遠, 지의, 선도善導, 연수延壽, 중봉中峰, 연지蓮池대사 등, 念佛을 창도하여 자행화타自行化他한 선지식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의 원효元曉대사와 같이 念佛을 主宗으로 한 이는 말할 것도 없고, 자장慈藏, 의상義尙대사 등과, 고려의 대각大覺, 보조普助, 태고太古, 나옹懶翁대사 등과, 이조에서는 함허涵虛, 서산西山, 사명四溟대사 등이, 선禪과 念佛을 融合한 선정일치禪定一致의 見知에서 念佛을 役說하였습니다.

*西山大師는 그의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마명馬鳴과 용수龍樹가 다 높은 조사이면서 念佛 往生을 권장하였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念佛을 안할까 보냐”라고 간절히 念佛을 권면하였습니다.

*아미타불은 다만 극락세계의 敎主이실 뿐 아니라, 法身, 報身, 化身의 三身을 겸전한 삼세三世 일체불一切佛의 本體로서, 그 永遠한 生命과 慈悲를 위주로 할 때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이요, 無限한 智慧 功德을 위주로 할 때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며,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위주로 할 경우에는 觀世音菩薩입니다.
그래서 여러 경전에는 수없이 많은 부처님의 명호名號(이름)가 나오나, 필경 阿彌陀佛인 동일한 부처님의 화도化導의 因緣에 따른 功德의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용돌이치는 현대 문명의 폭류 속에서, 비록 우리들의 착잡한 因緣이 성불의 대도를 직행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 중생이 필경 돌아가야 할 故鄕인 極樂世界와 本來 자성自性인 阿彌陀佛을 念願하는 普遍的인 人生觀과 그에 따른 誠實한 수행은 한사코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우리 고해 중생은 一切 現象이 모두 몽환포영夢幻泡影과 같은 虛妄 無常한 假相에 지나지 않음을 신인信認하고, 매양 最上 幸福한 極樂世界의 映象을 지니며, 最上의 槪念인 阿彌陀佛을 念佛하는 生活은, 우리

自身을 淨化하여 그만큼 성불의 경계에 다가서게 하며, 아예 영생永生의 大道에서 물러서지 않는 不退戰의 결정 신심을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念佛 생활은 현대인의 불안 의식과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는 데도 다시 없는 청량제가 될 것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잃어 버린 진아眞我의 回復과 分裂된 祖國의 광복光復과 人類의 永遠한 平和

복지福祉를 위한 가장 根源的인 最上의 길이기도 합니다.

*극락세계에 왕생한다는 것은, 바른 깨달음을 얻어 위없는 眞理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성자가 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온갖 번뇌를 소멸하고 정각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이,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도 또한 경전의 말씀과 같이, ‘작은 선근과 적은 복덕’으로는 不可能한 것입니다.

*극락세계에 往生하기 위한 큰 선근善根과 거룩한 복덕福德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念佛인 것입니다.
우리 本來 自性이 阿彌陀부처님이요, 阿彌陀佛이란 부처님의 명호(이름)이기 때문에,

念佛이란 곧 自性佛을 生覺하고 自性佛로 돌아가는 법이자연法爾自然의 修行法인 것입니다.

*念佛은 부처님의 本源에 들어맞는 수행법일 뿐 아니라, 삼세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결같이 권장하고 기억하여 호념護念하시는 수행법이기 때문에, 다른 수행법에 비하여 불보살의 가피가 수승함은, 여러 경전이나 수많은 영험록을 통하여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능엄경에서도 석존께서 “나는 일찍이 수행할 때에 念佛로써 無生法印에 들었느니라” 하셨고,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念佛하는 이는 모든 사람 가운데 香氣로운 연꽃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念佛은 진여자성眞如自性을 여의지 않는 自性禪이라고도 하고, 또한 모든 三昧의 王이라 하여

보왕삼매寶王三昧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선禪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佛心)이요, 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 경전의 말과 문자에 걸리지 않고

마음을 밝힐 때, 선과 교는 본래 둘이 아닌 진여자성眞如自性의 체용體用인 것입니다.

*一切 萬有의 根本 自性이 阿彌陀佛이요, 極樂世界 역시 같은 自性인 청정심淸淨心으로 이루어진 境界이니, 마음이 汚染되면 그에 相應한 삼계三界(욕계, 색계, 무색계) 육도六道(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에 輪回하는 苦惱를 벗어날 수 없으며, 本來의 淸淨한 마음으로 돌아오면 今生과 來世를 가리지 않고

상락아정常樂我淨한 極樂世界의 淸淨한 幸福을 受容할 수 있는 것입니다.

*極樂世界를 염원念願하고 阿彌陀佛을 生覺하며 그 명호(이름)를 부르는 念佛 工夫는, 眞如 自性을 여의지 않는 참선 공부와 本來 優劣이 없으니, 念佛과 禪은 一致하는 것입니다.

*염불과 참선이 둘이 아닌 선정일치禪定一致의 뜻이 담긴 대표적인 法門은, 觀無量壽經의 다음 구절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은 바로 法界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一切 衆生의 마음 가운데 들어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의 마음에 부처님을 生覺할 때, 이 마음이 바로 삼십이상과 삼십이수형호를 갖춘 圓滿 덕상德相이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루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니라”(諸佛如來是法界身,入一切衆生心想中, 是故汝等想佛時, 是心卽是三十二隨形好, 是心是佛)

*저명한 선사들로서 선정일치禪定一致를 주장한 분들의 法門을 몇가지 소개할까 합니다.

*[念佛의 공덕이 成就되면 언제 어느 곳에서나 阿彌陀佛의 참 몸이 앞에 나타나며, 臨終時에는

구품九品 연화대에 영접되어 그 상품上品으로 往生한다] = 보조지눌普照知訥스님 (念佛要門 중에서)

*[阿彌陀佛의 淸淨 微妙한 法身이 두루 모든 衆生의 마음에 계시므로, 마음과 부처님과 중생이 本來 差別이 없다, 그래서 마음이 곧 부처님이요, 부처님이 곧 마음이다, 阿彌陀佛의 명호(이름)를 끊임없이 分明히

生覺하고 외울지니, 힘써 정진하여 그 공덕이 成就되면, 홀연히 分別이 끊어지고 阿彌陀佛의 참 몸이

뚜렷이 나투신다 ]= 태고보우太古普愚스님 (太古庵歌 중에서)

*[마음은 바로 부처님의 경계를 生覺하여 끊임이 없고, 입은 부처님의 명호(이름)를 分明히 불러 흐트러지지않게 한다, 이렇듯 마음과 입이 서로 應하면, 그 한 生覺 한 소리에 能히 팔십억 劫 동안 生死輪回의 罪業을 消滅함과 同時에, 팔십억 겁의 수승한 공덕을 成就한다] 淸虛休靜스님 (淸虛堂集)

*[오직 阿彌陀佛 지니고 다른 生覺 없으면 손 튀길 수고도 없이 西方極樂 가리라] 六祖慧能 스님

*禪定과 淨土가 같이 있으면,
마치 뿔 난 호랑이 같이
이승에는 남의 스승이 되고
다음 생엔 부처와 조사가 되리.

선정이 없고 정토만 있으면
만萬사람 닦아서 萬 사람 가니
다만 阿彌陀佛만 뵈옵게 되면
깨닫지 못할 걱정 어찌 있을까?
선정만 있고 정토 없으면
열 사람에 아홉이 미끄러지고
중음中陰 境界가 나투게 되면
별안간 그를 따라가고 말으리

선정과 정토가 모두 없으면
무쇠 평상과 구리 기둥의 지옥
일만 겁과 일천 생에
믿고 의지할 데 하나도 없네. (永明延壽 스님)

*念佛과 參禪이 같지 않다고 疑心하는 이가 있는데, 그것은 參禪이란 다만 마음을 알고 性稟을 보려 함이요, 念佛은 性稟이 미타彌陀요 마음이 곧 淨土임을 모르는 데서 오는 것이니, 어찌 그 理致에 둘이 있으랴?
經에 말씀하시기를 “부처님 生覺하고 念佛을 하면, 現世나 다음生에 반드시 부처님을 뵈오리라” 하셨으니, 이미 현세에서 부처님을 뵈옴이 어찌 참선을 하여 道를 깨닫는 것과 다름이 있을 것인가,
阿彌陀佛 넉자를 화두話頭 삼아, 자나 깨나 분명히 들어 쉬지않고 한 생각의 분별도 나지 않는 데 이르면, 차서를 밟지 않고 바로 부처님의 경지에 뛰어 오르리라 (정토삼부경 서문)

가져온 곳 : 
블로그 >까치
|
글쓴이 : 희작(喜鵲)|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