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찾아서!!!

일본의 진주만 재 공격은 이젠 거의 완성했다

장백산-1 2013. 2. 15. 16:10

 

 

일본의 진주만 재 공격은 이젠 거의 성공했다.

 

 

물론 하와이에 오셨던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다이야몬드헤드는 백만년 전, 아니 억만년 전에 이 섬에 화산이 폭팔하여 분지를 이룬 흔적인데 이 흔적이 유명한것은 바로 그 앞 바다 일본군의 진주만의 폭격과 이를 대응하기 위한 미군 시설이 구경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이 다야야몬드 정상에 거의 매일 등산 겸 을라가는데 오늘을 특별한 감회를가지고 독자님들에게 알리려 한다.

 

 

이 분지에 들어가려면 터널을 통과해애한다.

 

 

한국 같으면 영하 21도 라지만 이곳 하와이는 영상 21도라 위통을 벗고 걷는 사람도 있다.

 

 

이 분지 안에서 저 정상까지 가야 일본의 군함을 막으려는 대포가 있었던 자리다.

 

 

 

토질을 화산암이라 메마르다.

 

 

 

다야몬드헤드 설명서

 

 

위 그림의 새 들을 찾아 찍었다.

 

 

 

땅이 메말라 고사목도 많았다.

 

 

 

저 위가 대포가 있었던 자리다.

 

 

 

관광객 중에는 일본인이 많았다. 아니 일본인들은 필수 코스다.

 

 

 

일본은 한국 중국등과 필리핀 등 동남아 권을 먹으며 태평양을 완전 지기네 손아귀에 넣으려 했다. 그러나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것이 미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빌려 막강한 해군기지를 세운것이니 그 미군기지만 때려부수면 태평양 권과 동남아시아가 와전 자기네 손에 들어올줄 알았다.

1941 년 12 월 7 일 새벽 6시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기 위하여 일본 항공모함에서 출격하는 제 1진 183 대 전폭기들은 돌아올 연료도 없이 미 전함에 충돌해 죽는 가미가제(神風) 특공대들을 출격시켰다.

여기서 일본군에 끌려갔던 한국 젊은이들은 어떻하든 빠져 나오려 한 사람도 있지만 일본군과 언론에 속아서 일본 천황을 위하여 자원 목숨숨을 버린 사람도 많았단다.

 

 

1941 년 12월 7일은 일요일이었었다.수병과 군인들은 외박 나갔거나 늦잠 자는 날이다.

 

 

4.jpg

14.jpg

17.jpg

9.jpg

,

 

첫번째 일본 전폭기들,이 진주만 에 나타난 것은 오전 7 시 55분이었다.포드섬 부두에 정박해 있는 오크라호마 호 전함이 폭격 당해 연기가 솟아나고 있다.

일본 전폭기로부터 톨피도 어뢰가 투하되어 연기를 뿜으며 전함으로 달려 가고있는 장면.

아리조나호 전함이 화염에 쌓여 폭발하고 있는 모습을 포드 섬에 있는 미 해군 비행 기지에서 수병이 어리벙벙해 하면서 바라보고있다.

곧 바로 비행기지에 있던 미해군 전투기 33 대가 폭파당했다.

 

아리조나 호 전함이 피격 당한 직후 첫번째로 찍은 사진.

검은연기가 하늘로 치솟고있다. 이해할수 없는 상황에 어리둥절해 하는 미군병사들.

부두에 있는 폭탄 저장고가 공격을 받아 폭발하고 있고 오른쪽은 전함 네바다 호가 불길에 쌓여있다.

웨스트 버지니아 호 전함이 피격 당해 옆으로 기울어 침몰하는 중이고 나란히 서있는 테네씨호 전함도 불길에 쌓여있다. 구조 보트가 한사람을 물에서 건저 내고있다.

펜실바니아호 가 대파 된채로 기울어저있다.

일본 전폭기의 일방적인 기습 공격에 공습은 일본측 대승으로 끝났다.

천만다행인 것은 항공 모함 세 대 모두 태평양에서 근무 수행중이어서 피해를 입지 않았다.

공습이 끝난후 일본측 피해는 잠수함 한척과 전폭기 360 대중에 겨우 29 대 만이 격추 되었을 뿐이다.

반면에 미국측 피해는 전함 6 척 침몰, 전폭기 164 대 소실, 해군 2008명 전사, 육군 218명 전사, 해병대 109 명 전사, 민간인 68명 사망, 부상자 1178 명이었다.

진주만 공격은 미국인들만 경악 시킨게 아니었다.

평화 회담을 하러 워싱턴에 머물던 일본 대표들도 몰랐었고

일본의 우방인 히틀러도 알지 못했던 초특급 비밀 작전이었었다.

 

 

일본은 진주만 기습 공격을 암암리 준비하면서 교활하게도 한편으로는 미국과 평화 회담을 추진, 위장하였다. 이렇게 일본은 교활 했다.

 

진주만 공격 직후 일본 천왕 히로히토는 미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놀란 미국인들은 애국심으로 군에 입대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 12월 7일을 치욕의 날 "로 선포했고 의회는 3 일후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 당시 미국인들은 일본이 직접 미 본토로 상륙해 처들어 오는 줄로 믿고있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은 'California's Owens Valley' 에 수용소를 짓고 소개시켰다

그때 한국인 중에는 일본인으로 오해 받아 조선인임을 해명하느라고 애먹은 동포들이 많이있었다.

일본의 진주만 폭격은 재미 한국인들에게 일본 멸망의 신호탄이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줄기차게 투쟁하던 동포들은 이제 세계열강 미국과 함께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마주하게 된것이다.

뜻하지 않게 성큼 다가온 조국 광복의 현실은 한인들을 애국심으로 독립운동을 성원하게 만들었다.

결국 일본의 진주만 폭격은 일본이 호랑이 수엄을 뽑은것이다.

 

미국은 이 진주만 기습으로 정식으로 태평양 전쟁을 이르켰고 원폭으로 일분을 굴복 시켰다.

따라서 세계 언론이나 미국인인들을 일본의 진주만 폭격은 도끼로 제발 찍은 미련한 짓 으로 보고 있다

 

 

다시 오늘날 다이야몬드헤드 등산로

 

 

 

 아래가 올라오던 분지 중심으로 이 분지는 성벽과 같이 주위가 둘러쳐 있음으로 우리는 터널을 통과 해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다.

 

 

 

대포가 있던 기지로 올라가는 철게단은 많았다.

 

 

 

이 계단을 다 올라가 캄캄한 도깨비 굴을 지나면 정상에 올라가는 철계단이 나온다.

 

 

 

 

철 계단을 다 올라가면 엎드려 기어나올만한한 대포 놓았던 자리가 나오고 ......

 

 

 

거기서 나오면 바로 일본 전함이 공겨해오리라는 탁트인 바다.

 

 

 

 

이 진지는 이렇게 생겼고 일본 전함이 쳐 들어오면 그 구멍에서 대포를 쏠 것인데 일본군 목적은 태평양 장악이 목적이었지 미국 본토공격이 아니었음으로 쳐 들어온 일을 없단다.

 

 

 

 

수 많은 각국의 관광객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미국등 대부분의 관광객 : " 미련한 일본놈"

"제 발등을 찍은 일본놈"

일본 관광객 : 여러분 이 화와이에서는 일본어를 써도 되고 일본 엔화를 써도 좋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

 

 

 

글쓴이 바로 뒤가 일본군이 쳐 들어올지도 모르는 와이키키 해변

 

 

 

뚱뚱한 아줌마도 여기에는 꼭 온단다.

 

 

그러나 이제 진주민 사건은 70 여년이 지났다.

지금 한국은 전자제품 나부랭이나 일본보다 앞섰다고 기고만장 이지만 기초과학은 일본과 비교가 않되니 언제 다시 일본에게 역 추적 당할지 모르므로  조심하지 않으면 않된다.

 

지금 수 많은 일본인 들이 관광차 이 하와이에 온다.아니 그 이전부터 일본인들은 남아도는 돈으로 하와이 영토를 사서 하와이 땅 70% 가 이미 일본소유이고 그들은 영어도 쓰지않고 일본 엔화를 그대로 쓰면서 이 진주만 공격을 방어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이 다이야몬드 헤드 군사시설을 킬킬대며 구경하고 있으니 태평양을 정복 하려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재 공격은 거의 성공했다.

 

그렇다면 애초 하나 둘 셋 ...열의 [진본 천부경]에서 아홉으로 씨족의 울타리를(국경) 를 튼튼히 한 다음, 애초 있지도 않았던 국경을 열고 타 민족과 피를 섞어 다문화 가정을만들어 홍익인간 하라는 하느님 교훈을 남들에게 펼쳐 보기는 커녕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고 하느님 이후 4 천년 후에 이두로 써진 최치원의 81자가 천부경인줄 알고 중국의 한자 뜻으로 풀다 풀다 풀리지 않으니 각종 음양오행설로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는 우리...

 

그러다가 5 천년 유구한 전통을 지키지 못하고 사색 당쟁을 하다가 간교한 일본에게 주권을 내준 우리...

 

해방도 자력으로 하지 못하고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인 동족상쟁의 원인이 되는 38 선으로 미소가 나눠먹이식인 해방...그리하여 아직도 천만 이산가족이 울고있고 우리는 막걸리 한병를 사 먹더라도 엄청난 군사비를 세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이 끝나지 않은 전쟁을 보고 글쓴이는 기여히 진주만을 재 탈환하여 낄낄 대는 일본인 모습을 보며 우리가 정말 다시 그런 쓰라린 역사를 범하지 않으려면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씁씁한 기분으로 내려오는데 한송이 이름모를 붉은 꽃 만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천부경.net

또는 http://cafe.daum.net/chunbuinnet -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