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생물학으로 풀어본 우리 몸의 비밀] “뇌는 몸의 종…수행으로 ‘뇌의 장난질’ 없애야”
〈27〉뇌는 우리 몸의 주인이 아니다
모든 동물에게 뇌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등동물 가운데에는 뇌가 없는 것이 많이 있다. 지렁이의 경우 몸통 앞뒤로 입과 항문만 뚫려 있다. 식도 또는 창자와 나란히 신경계가 달리고 입 구멍 안쪽의 신경계가 두툼해져서 ‘근접 화학 탐지기’인 혀의 기능을 하지만, 뇌는 없다.
멍게의 경우는 뇌가 있다가 없어진다. 다 큰 멍게는 바위에 붙어살지만, 올챙이와 비슷하게 생긴 어린 멍게는 헤엄을 치며 다닌다.
그림에서 보듯이 알(b)에서 나온 멍게 유생(幼生)에게는 뇌에 해당하는 간단한 신경계도 있고 한 쌍의 눈도 달려 있지만(c), 어느 정도 자라면 적당한 곳을 찾아 단단히 부착한 후(d) 입수공(入水孔)과 출수공(出水孔)으로 바닷물을 순환시키며 영양분을 섭취한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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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의 일생. | | | |
이 때 더 이상 기능할 필요가 없는 유생 때의 뇌는 흡수되어 사라진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동물은 성체가 될수록 뇌가 더 발달하는데 멍게는 이와 반대다.
진화의 과정에서 뇌는 한참 나중에 나타난다. 몸의 중심은 ‘입’과 ‘성기’다. 뇌가 없어도 입과 성기만 기능하면 2세를 생산하여 대를 이을 수 있다. 멍게에게서 보듯이 뇌는 몸의 활동을 보조하기 위한 2차적인 기관이지, 몸의 중심이 아니다.
인간종이 짐승의 세계에서 최강의 포식자로 등극하게 된 것은 언어중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뇌의 기능 가운데 음성언어를 만들어 내고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새든 고양이든 인간이든 성대를 울려서 ‘고기 몸’의 내적 상태를 남에게 나타낸다.
인간은 입술과 혀의 근육을 다양하게 움직여서 각종 소리를 만들어낸다. 구강의 부피와 바람이 나가는 출구의 모양에 따라 다양한 모음이 만들어진다. 혀를 놀려서 구강 속의 이곳저곳에 대거나 입술을 사용하여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의 자음을 만들어낸다.
문명 발달하면서 뇌가 주인행세
히스테리 우울증 공황장애 원인
그리고 이런 자음과 모음의 조합에 근거하여 음절, 단어, 문장이 차례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성신호는 갖가지 사물과 사건을 상징한다. 음성신호의 수와 종류에서 인간은 다른 짐승을 압도한다. 한 세대에 이룩한 기술이 음성신호, 즉 언어를 통해서 다음 세대로 계속 전달되어 문명의 누적이 이루어짐으로써, 인류는 그 어떤 종도 넘보지 못하는 최강의 포식자가 되었다.
그런데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고기 몸’을 위한 부속기관인 ‘뇌’가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몸에서 유리되어 제멋대로 노는 것이다. 각종 신경질환이 발생한다. 히스테리, 우울증, 정신분열증, 공황장애…. 몸의 ‘종’이 되어야 하는 뇌가 몸의 ‘주인’ 노릇을 함으로써 일어나는 정신질환들이다. 불교수행의 기초는 뇌를 본래 자리로 되돌리는 데 있다.
매 순간 일어나는 감각의 변화를 주시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뇌는 본래의 기능을 회복한다. 몸에 순종하는 것이다. 화두를 들고서 생각을 ‘중도(中道)의 궁지(窮地)’로 몰고 가는 간화선 수행을 통해 ‘뇌의 장난질’이 사라진다.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 “이 문 안에 들어온 후에는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 인용된 평전 보안선사의 말씀이다. 뇌가 분수를 지키게 만드는 가르침이다.
[불교신문 2840호/ 8월18일자]
김성철 교수(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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