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동양철학을 통해 바라보는 현대물리학

장백산-1 2013. 4. 26. 00:04

 

 

 

동양철학을 통해 바라보는 현대물리학


음(陰)과 양(陽)
(Yin and Yang)

Ⅰ. 과학, 종교, 철학에 대한 선입견

오늘날 大部分의 사람들에게, 종교나 철학은 과학의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먼저 宗敎를 생각해 보자. 그도 그럴 것이,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와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의 시대를 지나면서 과학적 사실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밝혀질수록 당시의 절대종교인 기독교의 교리나 宇宙觀과 모순되는 내용이 많았고, 이로 인한 교황청과 과학자들의 대립은 첨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많은 과학자들은 교황청의 종교재판을 거쳐야했고, 뜻을 굽히지 않는 경우엔 화형까지도 당한 일이 있다. 갈릴레이가 교황청의 파문으로부터 풀려난 것이 지난 1992년의 일이라는 것은 그간 이들의 극단적인 반목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배경 속에서 어찌 과학과 종교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겠는가?


 

이번엔 哲學과의 關係를 보자. ‘철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것은 철학자들의 난해한 말이다. 알 듯하면서도 명쾌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말들의 연속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에 비하면 科學은 어떠한가? 과학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므로 접어두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더없이 간결하고 명쾌한 수식으로 이론을 설명하고 또 받아들인다.

이렇게 명확함을 최우선으로 하는 과학이 철학과 구분된다는 생각은 꽤 타당해 보인다.

 
각 분야가 다루는 對相도 差異가 있어 보인다. 科學은 주변의 物質世界를 다루는 반면, 宗敎와 哲學은 자아나 존재와 같은 精神世界의 가치를 화두로 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다.

요컨대, 과학은 물질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 사실을 명확한 언어로 다루는 학문인데 반해,

종교와 철학은 정신세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개념적으로 ‘모호하게’ 다루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그러나 최근, 이러한 전통적인 선입견이 동양의 종교와 철학으로부터 깨지고 있다. 현대과학, 특히 현대물리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그 연구 결과가 동양의 종교와 철학에서 오래 전부터 말해오던 우주관, 물질관과 놀랍도록 일치하는 것이다. 고전 서양과학의 상징인 뉴턴(Isaac Newton)의 고전역학이 20세기 초반에 무너지고, 科學의 패러다임이 量子力學으로 轉環되면서 새 時代를 맞이하였다. 그러자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自然의 모습을 ‘과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러한 새로운 서양과학의 업적들이 갈수록 동양철학의 흐름과 相通한다. 이러한 현대물리학의 동향에 대하여, 그 선두에 서있는 영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量子力學은 지금까지 해놓은 것은 東洋哲學의 基本槪念인 (陰陽, 太極)을 科學的으로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The findings of quantum physics has done nothing more than validate the fundamental concepts of Eastern philosophy.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하던 科學과 宗敎, 그리고 哲學. 특히나 完全히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西洋科學과 東洋哲學에서 이러한 놀라운 一致가 나타나는 것은 무슨 意味인가?

 
先入見을 깨고 좀 더 客觀的으로 바라보면,
과학, 종교, 철학의 세 분야는 모두 眞理, 自然의 本質에 대해 탐구하고 그것을 알아내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現象世界를 뛰어 넘어 보다

깊은 本質을 들여다보며 共通的인 패턴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들이 獨立的인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眞理가 어떤 種類이냐에 起因하는 것 같다. 科學에서는 우주와 물질세계의 眞理를 탐구하고, 宗敎에서는 자아와 인간세계의 眞理에 대해 탐구하고, 哲學은 우주와 인간의 眞理에 대해 탐구한다.
2) 따라서 철학은 과학과 종교를 連結하는 가교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差異는 現狀的인 面만을 보았을 때 느끼게 되는 것으로,

本質的인 面에 있어서는 세 분야 모두 宇宙의 根源的인 原理를 發見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구 반대편에서 오랜 세월의 틈을 두고 활동했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理論과 부처(Buddha, 석가모니)의 수행은 비슷한 意味로 다가온다.

그럼 오늘날 종교와 철학, 특히 동양철학의 어떤 모습이 현대 물리학자들의 눈을 끌고 있으며,

스티븐 호킹이 위와 같은 고백을 하도록 만들었을까?



Ⅱ. 道德經 속의 우주관(宇宙觀)

도가철학의 창시자,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42장 〈도화(道化)〉3)

다음 구절로 시작된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
만물부음이포양 충기이위화


 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萬物을 낳는다.
만물은 陰氣를 등에 지고 陽氣를 가슴에 품고 있다.

음양의 두 氣가 서로 작용하여 調和로운 氣를 形成한다.

 

 


 

여기서 도(道)는 도교에서 말하는 自然의 根源的 秩序이고,

하나는 기(氣)이며, 둘은 음양(陰陽)을 뜻하고, 셋은 이 음양이 모여서 만드는 和合體들을 의미한다. 이 句節을 科學者들에게 어울리는 다음과 같은 表現으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宇宙는 쿼크(quark)와 렙톤(lepton)을 낳고,

쿼크와 렙톤은 陽性子와 電子를 낳고,
양성자와 전자는 原子를 낳고,

원자는 萬物을 낳는다.
萬物은 전자를 오비탈(orbital)에 지고 양성자를 原子核에 품고 있다.
양성자와 전자의 두 電荷가 서로 작용하여 安定化된 에너지 準位를 形成한다.

 

 


 

 

노자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오늘날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과 얼마나 닮았는가! 이처럼 고전적인 東洋哲學에서의 陰陽4)은 電磁氣學의 陽電荷, 陰電荷와 상당히 어울리는 개념인 듯하다. 또, 이러한 電荷가 그보다 根源的인 存在로 構成되어 있다는 것도 현대물리학이 알아낸 성과 중의 하나로, 道德經에서는 이를 氣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두 電荷의 存在를 알게 되었을 때, 英語는 "plus"와 "minus"라는, 電氣的 現狀과는 별 關係가 없는 反意語를 선택한 데 反해, 동양에서는 이들을 “더하기전하”와 “빼기전하”가 아닌 “陽電荷”와 “陰電荷”로 명명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동양철학과 과학의 연계성을 시사하는 첫 번째 힌트였을 것이다.

 

 

비슷한 만큼 差異도 있다. 自然은 쿼크로 이미 陽電荷(Up quark, +2/3)와 陰電荷(Down quark, -1/3)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섞어서 陰과 陽을 만드는 代身 中性子와 陽性子를 만들었다. 이는 무거운 元素를 만드는 데 있어서 中性子가 꼭 必要하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元素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陽性子 두 개가 모여야 하는데, 이들 사이에는 電氣的 反發力이 作用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다. 이를 中間에서 中性子가 自身이 가지고 있는 쿼크를 通해 媒介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理由로, 水素를 除外한 모든 무거운 元素는 原子核에 中性子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쿼크를 이렇게 利用한 후, 自然은 陽電荷와 맞먹는 陰電荷를 가진 렙톤 電子를 새로이 準備했다. 그렇다면 쿼크와 렙톤을 陰과 陽으로 보면 어떨까? 지금까지 현대물리학자들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物質世界는 모두 쿼크와 렙톤 두 部類의 素粒子로 이루어져 있다. 온 世上이 陰과 陽 둘의 調和로 이루어졌다는 陰陽論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自然에 存在하는 陰陽의 한 예로 生覺해도 無理가 없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物質世界는 全切的으로 보면 陰과 陽이 섞여 새로운 和合體 原子를 만들고, 이 原子가 萬物을 構成하고 있다. 老子가 이런 生覺을 할 당시에는 물론 電荷라는 것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陽性子나 電子의 存在에 對해서는 더욱이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가 物質界의 構成 原理를 저 簡單한 구절로 설명한 것은 얼마나 대단한 洞察力인가! 이 사실을 최근에 와서야 제대로 알게 된 서양문명 속의 과학자들은 이런 노자의 통찰력에 대해 한번쯤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가져온 곳 : 
카페 >행복창조의 커뮤너티! 美플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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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zoplin|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