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간디와 광덕스님
2000년 1월 18일, 화요일 오전 델리의 아침 공기 속에서
나는 문득 당신을 만났습니다.
간디 선생.
위대한 영혼, 당신을 만났습니다.
“Truth is God." ‘진실이 곧 신(神)이다.’
간디 선생.
당신은 첫마디로 말합니다.
神, God, 하느님에 중독되어 앓고 있는
이 허약한 한국인에게 당신은 말합니다.
“Truth is God, 진실이 신이다.
진실이 부처님이다, 진실이 법신불 이다.”라고 말합니다.
“My Life is My Message.”
‘나의 삶이 나의 메시지이다.’
간디 선생.
무엇이 진실인가? 진리인가?
숙세의 업에 끌려 또 묻고 따지는 나에게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삶이 나의 메시지다”라고 ……
“진실하게 사는 것이 신이며, 붓다이며, 법신불이다.”라고 당신은 말합니다.
간디 선생.
부끄럽습니다.
기념관 방방 구석구석 가득 메운 당신의 삶을 보고
당신의 생애를 보고 나는 부끄럽습니다.
물레를 돌리고 실을 뽑고 베를 짜는 당신 앞에서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돌립니다.
바람 털같이 가벼운 한 벌의 옷을 걸치고 맨발로, 막대기 하나로,
친한 사람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당신의 삶 앞에서
나는 한없는 부끄러움의 메시지를 듣고 있습니다.
빈둥빈둥 편히 지내며
소유, 소유……또 그 소유를 축적하기 위하여, 무덤같이 축적하기 위하여
머리나 굴리며 허둥대는 내 삶의 육십 년 세월이 부끄럽습니다.
간디 선생.
당신은 또 말합니다.
“붓다는 사랑의 위대함이 승려들을[힌두교의] 싸워 이기는 것과 같은
평등한 힘을 가졌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더라면,
붓다는 승려들과 싸우다 죽었을 것이다.”
아하, 이제 알았습니다.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붓다가, 붓다 석가모니가 왜 거룩한 죽음(순교의 미명)의 길을
택하지 않았는지를 조금은 깨닫습니다.
붓다가, 붓다 석가모니가 왜 예수같이, 매달려 피 흘리는 순교의 삶을
살지 않았는지 이제 겨우 깨우침의 힌트를 받고
오래 묵은 체증이 펑 뚫리는 공허감을 느낍니다.
붓다는 사랑의 힘으로 가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붓다 석가모니는 장애를 제거하기 위하여 장애와 싸우지 않고
사악한 마라[악마]를 항복 받기 위하여 마라와 투쟁하지 않는
고요한 미소로 연꽃처럼 피어나는 자비의 미소로 일관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장애가 본래 없음을 드러내 보이고
마라와 사악한 세력이 본래로 천사와 선과 동일생명임을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간디선생.
당신은 우리 시대의 붓다입니다.
당신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인류의 교사입니다.
진실로 겸허한 작은 스승입니다.
저때 붓다 석가모니가
“나는 지도자가 아니다. 나는 대중을 이끄는 자가 아니다.
나는 오직 너의 가운데 있다.”라고 하신 것처럼 당신은 말합니다.
“나는 위대한 스승의 발걸음을
단순히 겸허하게 [뒤따라]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이 시는 2000년 1월 18일(화) 아침 7시 40분, 인도 델리에 있는
간디 선생 박물관을 참배하고 다음 날 자이푸르 아쇼크 호텔에서 쓴 글임.
1974년 11월 1일, 군사 독재가 서슬 푸르던 시절, 종로 대각사에서 총불회 주최로
사상강연회가 열렸다. 광덕스님과 법정스님이 강사로 초빙되었다.
광덕스님이 먼저 강단에 올라, “아무리 어둠을 원망하고 어둠과 싸워도 어둠은
사라지지 않고, 오직 등불 아래서만 어둠은 사라질 뿐이다.” 라고 설하였다.
법정스님은. “영화 빠삐옹에서, 자유를 찾아 탈출을 감행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다.”라고 설하였다.
강연이 끝나자 대학생들이 데모를 시도하며 문 밖으로 몰려 나가려 하였다.
경찰이 몰려왔다. 이때 광덕스님께서 학생들 앞을 가로막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못 간다 이 녀석들아! 나가려거든 나를 밟고 가거라…….
어둠으로써 어둠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때 많은 사람들이 스님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아마 속으로 ‘무력하다’
비난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간디 선생을 보면서, 이제 겨우 스님의 깊은 뜻이
조금은 가슴에 와 닿는다.
지금쯤, 붓다가 앞장서서 가시는 저 대열 어디엔가 광덕스님이 가고 있을지 모른다.
허약하고 깡마른 몸에 고요한 미소를 가득 띠면서.
6. 광덕스님과 마차푸차레봉과 산골 마을
“나는 여러 가지 할 말을 가지고 잠실 불광사로 광덕 큰스님을 처음 뵈러 갔습니다.
그러나 삼배를 올리고 큰스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느닷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 나왔습니다.……”
이것은 지난 2000년 3월 12일, 이곳 도솔산 도피안사 스님의 날 기념 법회시
대웅전에서 박범훈 교수가 한 고백이다. 박범훈 교수는 중앙대학교 국악과에
재직하면서 국악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92년 국악 교성곡
‘보현행원송’을 창작하여 발표함으로써 불교음악의 새 지평을 연 드문 인재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박 교수는 독실한 불자가 되었고, 2000년 2월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음악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광덕스님을 회상하는 불자들 가운데에는 이와 비슷한 체험을 토로하는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느닷없이 쏟아지는 눈물……. 무엇 때문일까?
이 눈물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2000년 1월 30일 이른 아침, 우리 일행 십여 명은 네팔 포카라의 상그릴라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삼십여 분을 달려 한 산을 오르고 있었다. 히말라야산을 보다 가까이
친견하기 위해서다. 큰 버스가 오르기에는 무리한 비탈길이었지만, 운전 기사
쿠마르 씨의 능숙한 운전으로 우리는 무사히 전망대 언덕에 도달할 수 있었다.
모두들 설레는 가슴으로 버스를 내려 전망대로 다가섰다.
갑자기 눈앞에 달려와 멈추선 전설의 히말라야…….
그 중앙에서 파랗게 광명을 발하는 전설의 마차푸차레봉(峯)!
일행은 탄성을 발할 여유마저 압도당한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흑-” 하는 통곡소리가 느닷없이 터져 나왔다.
놀라 바라보니 지헌 선생의 사모님, 다음 순간 우리 모두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가까스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느닷없이 터져나오는 통곡…….무엇 때문일까?
저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마차푸차레를 올려보며 체면불고하고 울고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오르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도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악인들도 벌써 수십 명이 히말라야의 계곡에 묻혔다.
얼마 전에도 등반을 취재하던 KBS 요원 두 분이 눈사태에 휩쓸려 희생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오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정상에 올라 단 몇 분 동안
깃발을 휘날리고 만세 한번 부리기 위하여 그들은 하나뿐인 목숨을 담보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들이 정작 목숨을 걸고서라도 찾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도 고향에 가면 꼭 찾아가는 곳이 있다. 철부지 어린아이 시절 뛰놀던
산골마을 터-, 양쪽 옆으로 시냇물이 시원히 흘러가고 봄이면 빨갛게 피어나는
백일홍나무, 여름 낮에는 온통 더운 하늘을 가로막고 푸르게 뻗어나가는 느티나무-,
나는 백일홍 꽃 속에 파묻혀 만화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었고, 느티나무 가지에
매달려 매미처럼 노래를 불렀다.
이제 그 꽃도 그 나무도 사라지고, 꿈도 노랫가락도 상실된 지 오래지만,
그래도 거기에 가고 싶고 가서 서면 가슴이 설레고 눈물이 난다.
광덕스님.
마차푸차레봉,
산골 마을…….
여기서 우리는 우리들의 고향을 만나는지 모른다.
영겁 전에 우리 생명이 처음 잉태되던 그 순수한 영혼의 모태를 만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 앞에 서면 느닷없이 눈물이 터져 나오고 거기로 가기 위하여 목숨까지
거는지 모를 일이다. 눈물은 모체회귀(母體回歸)의 떨림일까, 쏟아지는 울음은
서로 부딪치며 한 덩어리가 되는 순수 영혼들의 떨림[共鳴]일까.
꿈도 사라지고 노래도 끊어진 지 오래인 이 황량한 세상, 인간들, 나 자신…….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그리워진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억제하지 못하는 생명
본연의 떨림인 것-. 그래서 우리는 이 나이가 되도록 안주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어슬렁대고 있는 것이다. 광덕스님을 찾고, 마차푸차레봉을 찾고,
떠난 지 오랜 고향 산골을 찾아 가슴 설레며 길 떠날 차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 광덕스님 시봉일기 7권 사부대중의 구세송 중에서- 글 송암지원, 도피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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