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은 중생 아닌 미래의 부처님!
- 한탑스님-
한탑 스님은 ‘올바른 불자의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법문했다.
“단 한 번의 나무아미타불 念이라도 간절하게 해야 자신을 淨化할 수 있다”며
“無我와 空의 道理도 바로 알아야 執着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고 일갈했다.
여러분 우리는 ‘나무아미타불’ 염송을 자주 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南無阿彌陀佛’을 念하는 意味를 잘 알고 實踐에 옮겨야 합니다.
그저 입으로만 하는 ‘나무아미타불’은 효험(?)이 없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艶하면서 우리 자신을 淨化해 가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단박에 자신을 淨化할 수 없으니 마음을 조금씩이나마 淨化하겠다는 意志의 發露로
이 ‘나무아미타불’을 念해야 합니다.
아미타부처님이 西方淨土에 있다는 말은 象徵的인 것입니다.
해가 동쪽에 떠서 서쪽으로 기우는 것처럼 이생의 삶을 다한 우리도
서쪽으로 가서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자는 의미가 내포된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生의 삶에서 지금 이 瞬間을 놓치지 않고
佛法에 따른 삶을 산다면 이곳이 곧 極樂淨土입니다.
極樂淨土에 산 사람이 地獄에 떨어질리 만무하니
죽음 以後의 삶에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 自身을 淨化하는 첫걸음은 바로 ‘執着’을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 정화하며 염불 - 기도해야
執着을 버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는 이 생에서 幸福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우리 불가의 실천덕목 중 하나인 ‘布施’도
어떤 마음으로 行하는지에 따라 그 삶도 달라집니다.
그저 내 것을 베푼다는 程度로 布施를 해서는 안됩니다.
나누는 것입니다. 相對方을 위해 내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의 二分法的 槪念을 떠나 서로 나누는 것이 眞情한 布施 精神입니다.
그래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實踐하라 하지 않습니까?
執着을 버리려면 ‘나’를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여러분들에게 ‘나’를 버려라 해도 버리지 않습니다.
‘無我’와 ‘空’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無我’와 ‘空’을 조금이라도 理解하지 않고는
平生 ‘나’라는 束縛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無我’라고 하니 ‘내가 없는 나는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空’이라 하니 ‘아무것도 없으면 지금 보이는 것은 무엇’이냐고 합니다.
이런 二分法的 西區 認識으로는
‘無我’와 ‘空’은 제쳐두고라도 ‘無我’의 그림자도 볼 수 없습니다.
여러 경전이 있지만 『金剛經』을 꼭 工夫하세요.
그러면 ‘無我’와 ‘空’을 理解할 수 있습니다.
金剛經에 나오는 四句偈를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무릇 形相이 있는 것은 모두 다 虛妄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如來를 보리라.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응당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 것이요,
응당 머무는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以生其心)
만약 色身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함이라.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일체의 함이 있는 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應當 이와 같이 觀하라.’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無我의 가슴에 豊饒를 심어라
바다 위의 波濤와 물거품을 보세요.
파도를 바다라 하지 않고 물거품을 파도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거품은 곧 파도이며 파도는 곧 바다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나’를 버린다고 해서 한탑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한탑은 이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無我’와 ‘空’을 조금 理解했다고 해서 바로 體得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煩惱에 의한 業障이 그만큼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方便으로 阿彌陀佛을 念하고 祈禱를 하는 것입니다.
다만 ‘나무아미타불’만 念하고 自身을 바로 알아 執着을 버리는 努力을 하지 않으면
佛子다운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 自身이, 여러분 個人 한 분 한 분이 變해야 世上이 變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받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 마음을 뒤집어서 주는 마음으로 살아가라”
하셨습니다.
역대 조사 스님들도 “받을 生覺 말고 주는 마음을 가져라” 했습니다.
달마대사는 “求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곳이 바로 地獄이고,
求하는 마음이 없을 때 거기가 바로 極樂”이라 하셨습니다.
내가 變하면 世上은 佛國土
여러분 주변에 있는 분들을 한 번 보세요, 그리고 이웃을 보세요.
모두 ‘중생’이라 하지만 ‘未來의 부처님’입니다.
그러면 베푼다는 生覺을 떠나 ‘供養을 올린다’는 마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佛敎의 眞情한 ‘信仰’일 것입니다.
우리는 求하려 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께 供養 많이 올렸다고 해서 많은 福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福을 받고 싶어하는 것은 내가 가난하다고 느끼는데 기인합니다.
自身의 가슴속에 ‘가난’이라는 씨앗을 자꾸 심으니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眞情 豊饒롭게 살고 싶다면 ‘豊饒’의 씨앗을 가슴 속에 심어야 합니다.
‘執着’을 떠난 ‘無我’의 가슴 속에 ‘풍요’의 씨앗을 심어가려는 努力을 해야 합니다.
내 가슴속에 핀 꽃 한 송이가 열매를 맺어 또 다시 씨앗을 퍼트리면
世上은 그만큼 變하고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世上이 곧 佛國土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부터라도 ‘나무아미타불’을 입으로만 念하지 말고
단 한번을 하더라도 懇絶하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간절함 만큼 自身이 變하고 世上이 變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희작님이 올린 법문
*무진장-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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