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과 현대물리학

自己 中心性/自己 基準인 我相(아상)을 다스리는 법

장백산-1 2013. 6. 1. 21:02

 

 

 

아상을 다스리는 법 |☞ 온라인 수행방♡,·´″″°³о
부민스님 | | 조회 6 |추천 0 | 2013.06.01. 11:08 http://cafe.daum.net/jabisunwon/Tk3b/336

 

 

 

我相을 다스리는 法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自己 中心性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人間이 갖고 있는 하나의 特徵 이에요.

自己 中心性 이란?

 事物을 認識할때 自己를 基準에 놓고 認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 뒤, 좌, 우를 말할 때

實際 空間上에 앞이 있고 뒤가 있고, 좌가 있고 우가 있는건 아닙니다.

다만 自己自身을 基準/中心으로 한  앞과 뒤, 좌와 우가 있다고 認識(錯覺)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 基準에서 世上을 認識하고 南便은 남편 基準에서 世上을 認識하고

子息은 자식 基準에서 세상을 認識하게 되는것이 自然 스러운 것입니다.

 

그럼 自己 基準을 왜 갖게 될까요?

事物을 認識할때 自己를 中心/基準에 놓고 認識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自己 中心/基準을 佛敎 用語로는 ‘我相’ 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옳으니 그르니, 맞니 틀리니, 빠르니 늦으니 하는 分別을 늘 합니다.

그런 分別의 基準은 自己自身입니다.

相對方도 自己 基準에 따라 分別합니다.

이 때 認識의 基準이 서로 다르니 分別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어 갈등이 생깁니다.

이럴 때, 빠르고 더딘게 本來 있는게 아니고,

빠르다느니 더디다느니 하는 分別을 自己가 계속 일으키고 있음을 알면

分別心은 일어 나더라도 固執을 하지 않게 되므로 갈등이 解消 됩니다.

그런데 이런 理致를 理解해도 現實에서는 無意識的으로 感情이 일어나 앞서므로 잘 안됩니다.

그럼 感情的 으로는 왜 克復이 안될까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 習慣,

내가 認識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作用하는 無意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業識입니다.

그 業識이 드러나는 것이 感情인데, 이 感情은 境界에 부딪힐 때

나도 모르게 無意識的이고 習慣的으로 卽刻的으로 일어납니다.

그럴 때 얼른 理性的으로 돌아가서 ‘이건 나를 基準으로 하기 때문에
생겨난 現狀’ 이라고 깨달으면

그냥 사라지지만, 그 때 알아 차리지 못하면 계속 그 感情에 휩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感情이 오래 持續 되기도 해서 때로는 10년, 20년, 30년까지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가슴에 못이 박히고, 恨이 맺히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마음 作用의 理致를 밝혀서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는 ‘나를 基準으로 해서 보니까 나에게 이런 感情이 생기는구나’ 하고 내려놓는 것이고,

또 하나는 相對의 行爲에 對해서 ‘저 사람이 自己 基準에서 보면

저렇게 感情이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저런 生覺을 할 수가 있겠구나’ 하고 理解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相對가 性質을 낼 때도 내가 便安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卽刻的인 反應,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내 感情은 당분간 계속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내가 깨어있지 못해서, 또 相對의 感情을 理解하지 못해서

나도 모르게 境界에 부닥치면

無意識的으로 習慣的으로 즉각 먼저 感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瞬間瞬間 깨어 있어라’ 하고 말하는 겁니다.

무엇보다 感情이 일어날 때 빨리 알아 차려야 하고, 그래서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것을 反復함 으로써

그런 無意識的 反應인 業識이 점점 弱하게 되고 더 나아가 消滅되어 가는 것입니다.

瞬間에 깨어 있는 힘이 커지면

實際 生活 속에서도 境界에 끄달리지 않는 超然한 狀態가 점점 이루어집니다.

우선은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없는 것을 目標로 삼지 말고,

갈등이 있는 그 現實을 認定하고  거기서 내 我相을 내려놓는 演習을 자꾸 해 보세요.

相對가 固執不通 이라는 것은 그가 自己 中心性이 强하다는 뜻도 있지만

그를 보는 내 中心性도 굉장히 强하다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 固執 센 性質을 꺾으려는 내 固執도 普通 固執은 아니라는 거지요.

법륜 스님

 

                                         결가부좌 생활(명상)참선센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