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떤 일에도 動搖하지 않는 마음이 되어야겠다는 공부의 目的이
놓아지지가 않습니다.
<답>모든 게 비었소. 혹시 지금 目的이 있으면 틀리고, 目的이 없어야 옳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오? · · · · · ·
그렇게 두 갈래를 지어놓으면 그게 虛物이오. 뭔가 崇高한 理致를 工夫하고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結局 하는 짓은 계속 이건 옳고, 저건 그르고
하고 있으니, 그게 계속 마땅치 않은 걸 마땅한 것으로 바꿔치기 하려는
이승(二乘)의 典形的인 모습이오. · · · · · ·
그래서 옛 고인(古人)들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살지언정 二乘엔 떨어지지 말라'고
하셨던 거요. 그래 가지고선 죽을 때까지 그 갈등, 對立이 어떻게 쉬겠소?
무슨 수로 바다의 千波, 萬波를 全部 하나씩 맛보고 들춰보고 옳고 그르고를
따지겠냔 말이오.
있는 그대로 보시오.
모든 게 무생(無生)이오.
行爲의 主體, 思考의 主體가 있는 게 아니오.
'내'가 지금 올바른 生覺을 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監視하면서 自己 自身의 言行을
되돌아보고 制禦하는 것은 올바른 修行法이 아니오.
修行者도 아니고. 도무지 주재자(主宰者)가 없는데 누가 무엇을 監視하고 制約하겠다는 거요?
정법(政法)의 因緣을 만나서 올바른 修行者가 第一 첫째로 해야할 일은,
어느 구석을 찾아봐도 '나' 라고 할 만한 '나'가 없다는 事實을 깨치는 거요.
지금 그러한 生覺을 할 때의 '生覺하는 者', '묻는 者', 그게 다 主宰者를 말하는 거요.
그렇게 모든 行爲의 主體를 만들어놓은 것이
人間이 만들어낸 幻想 중에 가장 고약한 幻想이오.
무슨 일이 일어날 때, 그 일을 일으키는 主體가 있다고 여기는 것, 그게 모습에 홀리는 거요. · · 모든 것은 因緣으로 말미암을 뿐이오.
因緣으로 말미암아 나는 것은 나도 난 것이 아니오.
연기설(緣起說)의 이 秘密한 뜻을 철저히 깨쳐야 하오.
-현정선원법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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