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 행복' - (6) 양자물리학과 마음

장백산-1 2013. 6. 21. 16:53

 

 

 

일요법회 녹취] 일요영상법회"행복"(6) '마음이 물질 세계를 만들어 낸다.'(양자 물리학증명)|설법 녹취록

인본 | | 조회 29 |추천 0 | 2013.06.20. 22:22 http://cafe.daum.net/truenature/N0Zv/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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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보통 옆에 태릉선수촌이 있는데, 요즘에 운동선수들, 국가대표선수들이나 이런 사람들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心想化技法을 아주 많이, 많이가 아니라 안하는 운동선수가 없을 정도로 하고 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연구가 어떤 무수히 많은 연구결과들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결과입니다. 아주 초기결과들인데요, 구소련에서 운동선수들, 최정상급의 운동선수들을 4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올림픽대회 나가기 전에 첫 번째 그룹은 100% 훈련에만 평소처럼 전념을 시켰어요. 그런데 두 번째 그룹은 75% 훈련을 시켰지만, 25%는 심상화를 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7시간은 훈련시키고, 2시간 반은 心想化를 시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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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想化라고 하면 마음에서 生生하게 想像을 하는 겁니다. 운동선수가 내가 그 운동에서 이기는 상상을 하고, 꼴을 넣는 상상을 하고, 태권도 경기 같으면 태권도에서 이기는 상상을 하고 온갖 기술들을 상상하면서 위기를 넘기고 이겨내는 이런 상상들을 생생하게 시키는 거죠. 그리고 마음속에서 어려운 훈련 같은 것도 마음속에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3째 그룹은 50%는 훈련을 시키고 50%는 심상화를 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4번째는 한 2시간만 훈련을 시키고 7시간 가까이를 많은 시간을 심상화 시켰죠. 엄청난 모험이었을 수도 있겠죠. 처음에는. 그랬는데 결과가 어느 그룹이 가장 경기력 향상이 뛰어나게 나타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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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80년 뉴욕 동계올림픽에서 4번째 심상화를 한, 7시간 이상 75% 정도 심상화를 시키고 단지 훈련은 25%밖에 시키지 않았던 그룹이 가장 경기력 향상이 뛰어나게 나왔습니다. 2번째가 3번째 그룹이었고요. 3번째가 2번째 그룹이었고, 4번째가 1번째 그룹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훈련만 전념한 팀들보다 심상화를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더 월등한 경기력 향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거죠. 지금은 많은 운동선수들이 심상화기법을 실제 운동에서 많이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영상...)

 

, 마음을 活用해서 실제 운동경기력 향상을 가져오는 것이 그냥 불교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요즘에 현대과학에서 실제 모든 나라에서 경기를 하는 선수들에게 실제 이것을 누구나 시키고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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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마음의 힘이 얼마만큼 우리 現實을 變化시키는지 하는 것들이 이제는 아주 보편적으로 사회저변에 펼쳐져 있는 그런 모습들입니다. 이거는 제가 너무 길어서 보지는 않겠는데요, 이 내용이 뭐냐 하면, 生覺으로 실제 근육량이 늘어나는 연구를 하는 겁니다. 실제 무거운 것을 손으로 들어 올린다고 상상만 하는 거예요. 상상만 하는 것인데 실제 상상만 했을 뿐인데 실제 들어 올린 것처럼 팔에 근육량이 늘어나는 것들이 實際 科學的으로 證明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령을 꼭 들어야지만 근육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상만 해도 근육이 늘어난다. 그러니까 근육이 늘어나게 하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거죠. 몸으로 실제 운동하는 방법이 있고, 상상을 통해서 그것이 늘어나게 하는 방법도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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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의 生覺, 우리 意識은 몸에 영향을 미칩니다. 몸에도 영향을 미치고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고. 病院 같은 데서도 낫는 상상을 시키고 또 이를 테면 어떤 안 좋은 바이러스들을 아주 깨끗하고 맑은 에너지가 깨끗하게 가서 잡아먹는 상상화를 시킨다든가 혹은 다양한 방법으로 상상을 시키거든요. 그런 방법들이 醫學에서도 상당히 놀라운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런 어떤 마음의 힘이 요즘의 量子物理學에서 많이 밝혀졌다고 제가 늘 말씀을 드려왔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原子는 實際의 存在가 아닌 하나의 幻想이라고 밝혀지고 있고요. 原子보다 작은 原子의 基本料素라고 하는 亞原子는 物質이 아닌 潛在的인 可能性으로 存在한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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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最少量의 單位인 量子는 波動으로만 存在한다는 겁니다. 에너지파동으로만 存在한다는 겁니다. 어떤 波長, 波動으로만 存在한다. 단지 觀察할 때, 粒子가 된다. 그러니까 觀察할 때만 意圖를 가지고 이렇게 觀察할 때만 物質이 되고, 그 前에는 物質이 아닌 無限 波動의 可能性으로만 存在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宇宙의 構成料素는 波動이라는 거죠. , 이 波動이 人間의 意志에 따라서 粒子卽 物質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밝혀놓은 겁니다. 그래서 波動으로 평소에는 존재하고 있다가 과학자가 意圖와 生覺을 일으킴에 따라서 거기에 反應해서 粒子로 나타난다는 것이 證明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고요. 自發的 進化라는 책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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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粒子는 우리가 관찰이나 계측이라는 形態로 건드리기 前까지는 可能한 모든 狀態로 存在한다. 우리가 관찰하거나 계측하는 瞬間 입자는 마침내 實際的인 무엇으로 凝結한다. 달리말하자면 現實은 存在要求에 따라 存在하는 것이다. 萬物은 모든 곳에 언제나 있는데, 우리 마음이 宇宙로부터 뽑아내어 特定한 時間과 空間속으로 가져와서 우리가 現實이라고 여기는 그것을 創造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願하는 게 무엇이든 그것이 성공이든 돈이든 아이의 성적이든 무엇이든 뭔가 願하는 것이 있단 말이죠. 그런데 그 願하는 것은 언제나 無限한 可能性으로 存在합니다. 내가 그것을 할 수 있을 것이냐? 없을 것이냐? 거기 우리는 答을 내릴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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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이 나는 그거는 할 수 없다고 生覺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意圖하기 始作한 겁니다. 내가 그렇게 意圖하기 始作하면 그것만이 現實이 될 수 있도록 이 宇宙法界는 고것 만큼만을 現實化 시키는 거에요. 凝結시켜서 可能한 現實로 凝結을 시켜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世上은 無限한 可能性의 場인데, 우리가 그것을 制限하고 있으면 그것은 언제나 그 속으로 制限되게 마련이다. 例를 들면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데리고 있던 예전에 데리고 있던 우리 *종병이었던 친구가 아주 오래 어렵게 어렵게 한 몇 년을 재수재수해서 대그룹에 들어갔어요. 상당히 연봉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지방대출신인데 어렵게 대그룹에 들어갔더니 동기들이 서울대 연대 고대 박사 석사들까지 있다는 거에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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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첫 진급을 남들보다 1년 빨리 진급을 했어요. 그래서 정말 뿌듯해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 친구가 항상 하는 말이 , 이게 정말 너무 힘들어서 돈을 많이 주는 만큼 사람을 너무 힘들게 너무 시간이 내 시간을 가질 수가 없다. 또 스스로도 이렇게 구속, 너무 되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서 다른 직장도 한번 알아볼까? 이런 생각들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딴 직장에서 오라고 해서 그곳에 정말 가고 싶은 마음이 한편 있고, 한편은 여기 또 남아야 되겠다는 생각도 있고, 그런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일을 계속 했는데, 결국에는 그다음 진급에서 떨어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또 당연히 괴롭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떨어지고 나니까 어떻게든 또 올라가야 되겠다. 이 생각이 드는데, 이러다가 완전 나가게 되면 어쩌지? 하는 고민을 하면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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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가 그 얘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진급이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하면 나는 이 회사에서 진급을 하리라. 올라가리라.” 라는 한 가지 가능성을 향해서 에너지를 투입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그 가능성에만 우리가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그곳에서 진급을 하든가 안하든가 요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직장 안에서라는 건 변화가 없죠. 그런데 이 친구가 사실은 네가 생각했을 때, 네가 만약에 그 직장을 그만두고 진급이 안돼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나온다는 것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실패거나 우울하거나 암담한 것이 아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할 뿐이 것이지. 너희 직장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실제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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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있는 그대로 그 현실을 관찰하면 그것은 전혀 성공이거나 실패라는 개념을 갖다 붙일 일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즉 네가 지금 까지는 요 직장 안에서만 성공해야 된다는 마음으로서 認識의 限界를 制限시켜 놓고 살았다면 이제 그 회사를 나오게 되면 無限한 可能性, 즉,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無限한 可能性을 向해서 내가 광활하게 마음을 펼칠 수 있는 無限可能性에 드디어 발을 내 딛는 것이다. 엄청난 일이 너에게 벌어질 수도 있다. 보살님들 중에 이러시거든요. 남편이 돈을 벌어 와야 되는데, 남편이 돈을 어떨 때 많이 벌어오고 어떨 땐 조금 벌어오고, 회사 일에 따라서 돈 버는 게 다르고, 남편이 이러다가 이 남편이 나중에 돈도 못 벌어오고 집에서 논다고 그러면 어쩔지. 나중에 돈 못 벌어오면 내가 벌어 와야 될 거 같은데 갑갑해 죽겠습니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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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마음속에서 남편이 돈을 안 벌어오면 우리는 끝장이다.’ 라는 스스로에게 어떤 制限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그 보살님께 그걸 여쭈어 봤어요. 또 다른 可能性에 대해서는 完全히 마음을 닫고 계시군요. 그랬더니 제가 무슨 마음을 닫고 있습니까? 만약에 남편이 돈을 못 벌어오는 상황이 되었어요. 되었으면 아내입장에서 나는 죽어도 내가 나가서 뭘 할 수 없다. 나는 돈을 못 번다고 우리는 觀念으로 生覺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그런데 그 觀念을 내려놓고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돈을 벌어야 되거든요. 이제.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이 못 벌어오면. 그 말은 어찌 보면 아내가 지금까지는 나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집에서 애만 보고 나가서 돈을 못 벌고 시대에 뒤떨어진 거 갖고 이런 制限된 生覺을 가지고 있다가 그 瞬間부터 완전히 가슴을 열어서 온 宇宙의 모든 것이 可能해질 수 있는 그 無限 可能性의 場으로 내가 드디어 가슴을 열 수 있는 機會가 주어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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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無限 可能性을 向해서 가슴을 열고 있는 사람이 있고, 닫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죠. 그 可能性을 向해서 가슴을 열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나에게 波濤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전혀 生覺지도 못했던 일자리가 들어올 수도 있어요. 어떤 분은 이 직장을 가졌기 때문에 이 계통만 난 할 수 있다고 生覺을 確定지어 버립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일이 나에게 주어졌을 때 일단 저는 그거 자신 없습니다.”라고 막아버리는 거죠. 可能性을 닫아버리는 겁니다. 꼭 그걸 필요가 사실은 없죠. 스님들에게 스님은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스님들 인터뷰 같은 걸 보면 주로 앞으로 계획을 물어보면 스님이 뭐라고 답하는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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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나는 이런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因緣 따라 모든 것을 向해 가슴을 열뿐입니다. 뭐 절이 더 커지거나 포교가 열심히 잘되거나 이렇게 되면 그렇게 가는 것이고, 또 그것이 안돼서 또 다른 어떤 可能性이 열리면 그 可能性으로 나는 向해서 가는 것이다. 매 순간순간 나에게 주어진 無限可能性을 向해서 가슴을 열뿐, 내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根源的인 願이 없는 것은 아니죠. 上求菩提下化衆生이라는 일체중생을 구제하고 내가 깨달음을 얻겠다고 하는 그 큰 원력은 있지만, 具體的인 것이 무엇이 될지는 宇宙法界에 그야말로 내맡기는 겁니다. 無限可能性을 向해서 가슴을 활짝 열어두고 있는 것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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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內的인 生覺이 外部世界를 이와 같이 創造를 하거든요. 하나의 生覺을 일으키면 이 宇宙法界가 나를 도와주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可能하냐하면 이 宇宙는 서로 連結되어 있기 때문에 可能합니다. 連結되어 있기 때문에 내 意識과 내 마음이 宇宙와 連結되어 있어요. 내가 한 生覺 일으키면 宇宙가 反應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하나 속에 全切가 들어있고, 내 안에 宇宙 全切가 들어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서 이 宇宙法界에 있는 無限한 可能性을 끌어올 수 있다는 것을 잘 믿지 못하거든요. 내 안에서 그 모든 可能性이 表出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事實은 여러분 未來에 펼쳐지는 그 어떤 無限한 일들이 事實은 내안에 있던 겁니다. 내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은 事實은 내안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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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存在하는 것이 바깥에 投映될 뿐인 거에요. 바깥에 獨者的으로 내 바깥과 안에만 存在하거나 밖에만 存在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가 곧 全切고, 全切가 독 하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世上의 構造를 살펴보면 同一한 패턴의 無限한 反復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細胞를 끊임없이 세포로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갔을 때, 꼭 全 宇宙로 뻗어나가고 뻗어나가고 뻗어나갔을 때 볼 수 있는 同一한 패턴들을 細胞의 社會 속에서 宇宙의 패턴을 읽을 수가 있거든요. 프랙탈 이렇게도 얘기하는데, 同一한 프랙탈 構造가 이 宇宙에는 無限히 反復되고 있습니다. 그게 하나 속에 전체가 갈무리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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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불교에서는 나라는 존재를 단순히 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바로 소우주라고 불교에서는 보고 있는 거죠. 내안에 우주 전체가 담겨있다는 것은 많은 어떤 것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手指鍼 하시는 분들 보면요, 손바닥 안에 오장육부, 우리 몸 전체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제 몸의 어느 부분이 아플 때요, 손의 일정부분을 따주거나 지압을 해주거나, 뜸을 떠주면요, 실제 그 몸의 그 부분이 놀랍게 좋아집니다. 신기할 정도로 놀랍게 좋아져요. 손에 모든 부분이 장기기관, 얼굴, , 발 모든 부분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저도 해보니까 신기할 정도로 이렇게 낫는 것들을 볼 수가 있어요. 그게 손바닥 안에 우리 몸 전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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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복제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손오공이 머리카락을 뜯어서 후 불면 또 다른 손오공이 나타나는 것처럼 사실 DNA 복제도 어떤 하나의 DNA를 뜯어내면 그 속에 우리몸 전체를 복제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그 안에 담겨있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머리카락을 복제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그 안에 들어있는 얘기 아니겠어요? 머리카락을 뜯어서 이걸 가지고 동일한 나를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머리카락 속에 나의 모든 정보가 담겨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머리카락이라는 작은 것 티끌하나 속에 내 손 끝에 있는 細胞 하나 속에 내 몸 全切의 모든 情報가 담겨있습니다. 하나가 곧 全切고 全切가 곧 하난 겁니다. 어떻게 티끌하나 속에 宇宙全切의 情報를 담을 수 있죠?

이게 可能한 것이 바로 이 宇宙法界입니다. 크고 작은 것이 本來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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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히 작은 것 속에 無限히 큰 것을 사실은 담을 수가 있죠. 사실은 무한히 작은 것이 무한히 큰 힘을 발휘하는 걸아십니까? 커야지 힘을 잘 쓰잖아요. 덩치가 커야 사람이 힘을 잘 쓰잖아요. 점점 힘이 크면 힘이 강해지지만, 사실은 작은 것으로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그 힘은 더 無限大로 커집니다. 원자폭탄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잖아요. 원자보다 더 작은 粒子를 개발하게 되면 그것은 더 큰 원자력의 몇 배의 몇 수십 배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작은 것 속에 더 무한한 어떤 힘과 무한한 크기가 담길 수도 있는 겁니다. 耳穴 요법을 하는 어떤 분을 보니까 귀만 가만히 살펴보면요, 귀속에서 이상하게 몸이 어디가 아픈지. 이 사람은 성격은 어떤지. 모든 것을 알아냅니다. 귀만 가만히 봤을 뿐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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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가 소화가 안 되시죠? 어디 위가 좀 안 좋으시네요. 다 알아냅니다. 제가 어떤 또 학교에 교수님을 보니까 눈을 전공한 안과 교수님인데, 눈을 얼마나 파고들어서 공부를 하셨는지 눈동자만 가만히 살펴보면 이 사람 성격이 어떤지, 몸이 어디가 안 좋은지, 몸의 어느 부분이 손상이 되었는지. 이런 걸 알아내셔요. 그러고 어떤 심리학회를 갔더니 이 분은 눈을 보는 심리학회입니다. 눈동자를 가만히 보고 있더니 그 사람의 성격 경향, 이런 걸 알아맞히어요. 이게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어느 한 部分은 全切를 反映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華嚴經에도 보면 一卽一切多卽一이다. 하나가 곧 全切고 全切가 곧 하나다. 一微塵中含十方이라 해서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 전체(宇宙)를 머금고 있다. 이럽니다. 한 티끌 속에 이 宇宙全切의 모든 情報를 머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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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미난 비유면서 놀라운 비유가 있습니다. 이 비유를 한번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쉽게 설명 드려 볼 테니까 이 비유를 한 번 들어보세요. 정말 놀라운 현실을 발견할 겁니다. 냄비가 있어요. 동그란 냄비에 물을 넣었습니다. 잔잔한 냄비가 있고 냄비에 물을 넣었습니다. 물에 조약돌을 저마다 다르게 생기고 크기도 다른 조약돌 3개를 동시에 하나 둘 셋 해서 동시에 조약돌 3개를 떨궜습니다. 그러면 냄비 위에 있는 조약돌이 떨어지고서 온 물의 파장이 일겠죠. 그죠? 물결, 파가 일겁니다. 그리고 물결파, 물결파장, 파장과 파장사이에 간선무늬가 생깁니다. 간선무늬가 생겨서 끝까지 퍼져나가겠죠. 이게 호수라면 그것이 아주 무한하게 많이 퍼져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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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냄비 위에 있는 그 波長이 있어요. 물결波, 干涉무늬만 있을 겁니다. 그런데 조약돌은 이미 떨어진지 오래지요. 그런데 그 맨 위에 있는 냄비의 물결波長을 急速 冷凍을 시켜서 얇게 오렸다고 생각해 보자는 거죠. 맨 위에 있는 波長만 싹 오려냈습니다. 얼려서. 그러면 우리는 동그란 原版 하나를 들고 있을 거에요. 그리고 그 원판 앞면에는 원판 까끌까끌한 波長의 情報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동그란 얼음은 波長만을 가지고 있어요. 파장만을. 조약돌은 이미 없어진지 오랩니다. 그런데 이 波長의 홀로그램이라는 거 들어보셨을 겁니다.

홀로그램의 원리인데요, 홀로그램을 再生시킬 수 있는 빛을 쏘아줍니다. 그러면 이 동그란 파장에 빛을 쏘아주면요, 저 뒤의 배경에 뭐가 나타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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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세 개가 동일한 위치에 똑같이 생긴 조약돌이 정확하게 똑같이 세 개가 딱 나타납니다. 三次元立體映像으로 나타난단 말이죠. 이 말은 뭐를 의미하냐하면, 이 물 위에는 波長밖에 없어요. 조약돌은 없습니다. 波長밖에 없는데, 波長을 再生시켰더니 物質現實이 再生되더라는 얘깁니다. 이 말은 뭐를 의미하냐하면요, 量子物理學에서 밝혀낸 게 이겁니다. 이 世上은 이 宇宙는 波長으로 이루어져있다. 精神/마음이든 物質이든 모든 것은 波長으로 이루어져있다. 電磁波, 念波, 몸에 있는 물질도 다 波長이죠. 이 世上 모든 것은 波長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놀라운 事實은 波長으로 이루어져있는 一切 모든 存在는 그 波長 안에 아무리 작은 波長이라 할지라도 그 波長 안에 온 宇宙의 모든 情報를 담고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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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波長을 再生시킬 수 있는 方法만 開發한다면 모든 것을 알 수가 있다. 온 宇宙의 모든 情報를 밝혀낼 수 있다는 겁니다. 아까 동그란 原版이 있어요. 원판을 깨뜨렸습니다. 깨졌어요. 원판이. 깨졌는데 그 작은 깨진 조각 하나만 들고 또 다시 홀로그램 빛을 비추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까와 똑같이 조약돌 3개가 그대로 3차원 입체영상으로 보여 집니다. 깨뜨려가지고 한 조각만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이 말은 뭐냐 하면요, 波長은 아무리 작은 波長이라 할지라도 一微塵中含十方, 한 티끌 속에 한 波長 속에 宇宙의 時空間을 超越하는 宇宙 모든 情報를 그 波長 안에는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물결波를 받다보니까 조약돌을 떨구었을 때 물결波가 천천히 멀리 퍼져나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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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은 生覺의 念波라든가 모든 波長은 사실은 그 波長이 일어남과 同時에 宇宙 끝까지 傳達이 맞춰진다는 겁니다. 우리 눈으로 確認할 수 있는 肉眼으로만 봤을 때 천천히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事實은 모든 波長은 그것이 波長이라면 그 波長을 일으킴과 同時에 宇宙 끝까지 傳達이 끝난다는 겁니다. 이게 量子物理學에서 말하는 非局地性 非局所性의 原理입니다卽 局地的이지 않다는 거에요. 그 어떤 것도. 이 宇宙는. 그 어느 한 地域에만 制限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즉 제가 난 안 돼. 나는 해도 성공할 수 없어.” 이렇게 한 生覺을 딱 냈습니다. 말 한마디를 딱 했어요. “내가 그걸 어떻게 하겠어? 난 안 돼. 못해.” 한마디 했습니다. 그러면 그

말의 波長, 그 意圖의 波長, 生覺의 波長이 宇宙 끝까지 안드로메다 별까지 우주 끝까지 傳波를 이미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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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局所的으로 그 제 生覺의 波長은 우주 끝까지 傳波를 마쳤는데 時空을 超越해서 過去까지 未來까지 傳波를 마쳤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生覺이라는 것은 宇宙 끝까지 퍼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일까요? 제로時間입니다. 時間이 걸리지 않는다. 時間을 要하지 않습니다. 혓바닥에 있는 세포를 하나를 떼어가지고 배양을 시켜서 몇백 키로 떨어진 곳에서 배양을 시켜놓고요, 거기에 거짓말 탐지기를 연결시켰습니다. 검류계 같은 걸 연결시키고 이 사람을 이쪽에 놔두고, 몇 백키로 떨어진 곳에 떨어진 이 사람은 여기에 있고요, 나와 그 세포, 이 사람의 혓바닥에서 뗀 배양세포가 두 개다 검류계에 거짓말탐지기 같은 걸 연결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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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마음의 어떤 마음의 變化를 알아보기 위해서 탐지기를 連結시킨 다음에 이 사람이 戰爭에 참전했던 사람이었데요. 참전했던 사람의 전쟁 영상을 틀어줬습니다. 영상을 틀어줬더니 처음엔 波長이 고요하다가 전쟁영상을 딱 보고 사람이 죽고 이런 장면을 보면서 波長이 막 급격하게 거짓말 탐지기 같은 검류계가 급격하게 떨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시간대 별로 다 체크를 해놨어요. 그런데 나중에 몇 백킬로 떨어진 바깥에 있던 것을 가지고 와서 時間帶 별로 變化를 봤더니 同一한 時間帶에 내가 급격하게 떨고 있을 때 그 혀에서 배양했던 세포도 몇백 키로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同一하게 움직이더라는 겁니다. 이와 같이 나와 連結된 一切 모든 存在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어도 그게 非局所的으로 同一한 時間帶에 營響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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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나는 성공할 수 있다. 라고 믿는다면 그 할 수 있다는 그 한 生覺은 宇宙 끝까지 傳波를 마쳐서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옵니다. 그 波長이. 그 한 生覺의 波長 속에 宇宙 全切 情報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요, 보십시오. 一切 宇宙의 모든 精神과 物質 世界는 모두 波長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波長은 宇宙 끝까지 퍼져나갑니다. 그것도 同時間에 非局所成으로 퍼져나갑니다. 그런데 이 波長은 宇宙의 모든 情報를 다 담고 있습니다. 時空을 超越해서 이 말은 뭐냐 하면요, 여러분이 아무도 없는데서 몰래 누구를 죽였어요. 아니면 무슨 동물이나 이런 거 함부로 죽였습니다. 우린 아무도 안 봤으니까 業을 받지 않겠지. 그렇게 生覺합니다. 業을 받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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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宇宙法界는 그 事實을 宇宙 全切가 同時에 記憶하고 있는 거에요. 非局所的인 原理에 依해서. 우리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갑자기 비 오는 날 감전이 되어서 죽게 됐습니다. 거기만 안 밟았으면 되는데 그 뚜껑만 안 밟았으면 되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딴 짓하고 가다가 그 뚜껑을 다른 사람 다 제대로 지나가는데 나만 거길 밟아서 죽었어요. 이를 테면, 그럼 그것을 재수 없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됐지? 이게 무슨 業이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 그 말은 이게 만약에 業이라면 내가 죽을 業이었다면 그 뚜껑이 내가 갈 걸 딱 알고 거기 있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아니면 위에 있는 간판이 강풍에 떨어져서 나를 쳐서 죽었다. 그러면 그 강풍이 그 時間에 내가 죽을 줄 알고 내 業을 알고 그 時間에 불었고, 그 時間에 간판이 떨어져서 정확히 나를 맞췄다는 게 되잖아요. 業대로 죽었다면. 바로 그렇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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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物質이 어떻게 그걸 압니까? 物質도 모두 波長으로 이루어졌단 말입니다. 그리고 이 波長은 宇宙의 모든 情報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時空을 超越하는 情報卽 여러분의 前生, 그 前前生, 그 前前前生의 모든 業의 情報까지를 다 담고 있다. 業을 避해서는 어디로 도망가도 도망갈 수 없다고 경전에 나오거든요. 그게 이 業의 結果는 온 宇宙 全切에 營響을 미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도망가도 소용이 없다. 이 波長은 서로 連結되어 있다고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宇宙를 하나의 홀로그램 虛像이라고 봅니다. 金剛經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보여지고 있는 一切 모든 存在는 다 空한 것이다. 如夢幻泡影이다. 꿈과 같은 것이고 幻像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 홀로그램의 幻像일 뿐이라는 겁니다. 우리 몸이라는 것은. 이 世上이라는 것은. 홀로그램의 虛像을 가지고 執着해 있는 것에 불과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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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홀로그램 虛像은 우리의 意圖에 따라서 마음에 따라서 우리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겁니다. ? 이 宇宙는 언제나 모든 可能性이 이미 具足되어 있는 곳이니까. 내가 意圖만 일으켜서 그것을 어차피 虛像이니까 虛像은 마음대로 만들기 쉽잖아요. 實相일 때 마음대로 만들기 어렵죠. 無限한 可能性을 믿어서 내가 된다고 生覺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되는 것이 事實은 本質이니까.그래서 여러분이 絶對 안 된다고 强力하게 믿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런데 無限 꿈속에서 마음먹은 대로 自覺夢을 꾸면서 意圖하는 데로 꿈을 탁탁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現實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 이 現實은 우리가 生覺하기에 堅固한 物質 같지만 事實은 堅固한 物質이 아니라 홀로그램 虛像에 불과한 겁니다卽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虛像에 불과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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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窮乏하다고 느낄 때 宇宙는 나에게서 돈을 가져가버립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풍요로워서 남들에게 나누기를 좋아하고 베풀기를 좋아하고 풍요로운 마음을 가질 때 이 宇宙는 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現實로 드러내는 거예요. 物質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그 사람이 富者가 되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이게 마음의 장난입니다. 一切唯心造죠. 이 世上은 홀로그램의 虛像이기 때문에 마음만 내면 物質로 만드는 것은 이 宇宙法界가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홀로그램 宇宙'라는 책에 보면 지금 어떤 얘기가 나오냐 하면 왼손 엄지손톱 속에서 안드로메다 銀河界를 發見할 수도 있다. 原理上으로는 모든 過去와 未來를 示事하는 모든 內容들이 時空間의 微細한 領域 구석구석에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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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낱낱의 細胞들도 그 속에 宇宙를 품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고요. 아주 비근한 예로 박쥐가 振動波長을 放出했다가 物體에 부딪혀서 되돌아오는 波長을 통해서 먹잇감의 情報를 알거든요. 그런데 이 박쥐는요, 波長을 계속 내보냈다가 되돌아오는 波長을 통해서 이 먹잇감의 情報를 흡수한다고 그럽니다. 이 波長을 통해서 그 먹잇감의 정보를 흡수하는 법을 아는 거죠. 그래서요. 심지어 박쥐는 이 波長이 갔다 되돌아오는 波를 解釋함으로서 이 먹이가 얼마큼 큰지, 이 먹이가 맛있는 것인지. 어디서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이런 거 까지도 다 알고 있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 波長을 통해서 날라가 가지고 그 먹이가 날라가고 있을 때 正確히 날아가서 그것을 입으로 탁 집어 삼킵니다. 눈이 없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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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波長으로 모든 먹이의 모든 情報를 다 읽고, 그 情報를 波長에 담긴 情報를 박쥐는 일부 해독할 수 있는 거죠. 이것을 해독할 수 있는 어떤 그 홀로그램을 해독하는 장치가 우리가 앞으로 만든다면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어떤 것들입니다. 이와 같이 結論的으로 말씀을 드리면요, 이 量子物理學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一切唯心造의 原理. 그리고 金剛經에서 말한 如夢幻泡影 모든 것이 꿈과도 같다는 原理. 그러기 때문에 이 世上은 내가 마음 하나 일으킴으로서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創造해 낼 수 있다. 業이 왜 作動하는지의 어떤 原理.

마음 하나 일으키는 것이 얼마나 重要한 것인지. 또 얼마나 내가 意識 있게 깨어있는 마음으로 말 한마디 해야 되고, 깨어있는 마음으로 마음을 써야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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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요즘에는 現代科學에서 이렇게 밝혀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生覺行動을 할 때 내가 말한 이 한마디가 宇宙 끝까지 傳波를 마쳐서 나에게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念頭에 둔다면 함부로 말 할 수 없겠죠. 또 反對로 나는 絶對 안 된다고 生覺했던 것들, 나는 도저히 不可能이라고 生覺했던 것들이 事實은 진짜 不可能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事實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말을 많이 쓰는데요, 이 世上에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었다면 나도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世上에 누군가가 어마어마한 發見을 이루어냈다면 나도 그 發見을 이루어낼 수 있고요. 엄청난 것을 이루었다면 나도 이룰 수 있고. 어마한 돈을 벌었다면 나도 벌 수가 있는 게 基本 原則입니다. 이것이 모든 存在의 基本原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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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同一한 素材로 이루어져있거든요. 同一한 波長波動이라는, 그 波長은 無限한 情報와 힘을 담고 있다고 그랬어요. 그 힘이 어느 정도냐 하면 여러분이 波長을 내보내서 다시 되돌아올 때 物質 現實을 創造해 내는 그 힘이 어느 程度냐 하면, 손톱 밑에 작은 空間, 손톱 밑의 때만큼의 작은 空間속에 담긴 波長이 가지고 있는 힘이 어느 정도냐 하면요, 量子物理學에서 발견한 게 우리가 발견한 물질에너지의 총합보다 억만의 억만의 억만의 억만의 억 만 배보다 더 크다. 이렇게 애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난 안 돼.”하는  한 生覺 일으키는 그 한 生覺이 그 한 마디 말이 물질 에너지의 총합의 억만의 억만의 억만의 억만의 억만 배보다 더 큰 힘으로 내 삶을 創造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난 안된다고 生覺함으로서 안 되는 現實을 어마어마하게 큰 힘으로 創造하고 있었던 거에요.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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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 內面에 있는 안 된다고 生覺했던 意識을 整理하는 것. 淨化하는 것. 내 마음속에. 난 이거 안 된다. 난 안된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아주 안 좋은 티끌 煩惱 이런 것들을 고요하게 淨化시키고 懺悔하고 내려놓고

容恕하고 마음을 고요히 한 뒤에 거기서 한 生覺 딱 일으켰을 때 그 한 生覺은요, 놀라운 크기와 놀라운 힘으로 宇宙法界를 感動시킨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까지 營響을 미치는 겁니다.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데 누가 수사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사실은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보면 큰 잘못일 수도 있고, 저렇게 보면 좀 괜찮은 것일 수 있어서 그 몇 몇 사람들이 結果를 내느냐에 따라서 自己는 큰 죄가 될 수도 있고, 작은 죄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마음을 써야 되겠냐고 오셨어요. 어떻게 쓰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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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보통 우리들 마음은 어떠냐하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보니까 답이 안 나오는데 그렇다고 그 사람들한테 가서 손발 빌었다간 더 크게 잘못될 수도 있고. 이 분은 머릿속만 계속 複雜한거에요. 잘못되면 어쩌나? 이게 잘못돼서 더 크게 잘못되고 더 크게 잘못되고 뭐가 꼬이고 꼬이고 꼬여서 내가 最惡이 되면 어쩌지 하고 이 生覺은 끊임없이 生覺을 안 좋은 쪽으로 몰아가는 게 우리 生覺의 特性이거든요. 그러면 우리는 生覺의 奴隸가 됩니다. 生覺의 노예가 되면 그 일을 풀 수 있는 根源的인 힘을 까먹어 버리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生覺을 내려놓는 겁니다. 어떻게 生覺이 내려놔지냐 하면 生覺을 지켜봤을 때 生覺이 고요해져요. 그래서 그럴 때일수록 정리가 답이 안 나올 때일수록 고요히 틀고 앉아서 생각을 지켜봐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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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生覺이 고요해지도록 만들어야 되요. 生覺을 지켜봄으로서 生覺이 고요해지면 겉에서 나를 支配하던 生覺의 잔재가 고요히 사라지면서 生覺 너머에 있던 根元, 本質과 接觸을 하게 됩니다. 이게 修行을 하는 理由에요. 내 內面에 있는 根元 本質的인 힘과 接觸을 하게 되면 그 힘은 宇宙 全切와 둘이 아닌 '하나'로 連結되어 있기 때문에 그 根元인 本質的인 힘에서 宇宙法界를 感動시켜서 나를 돕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 근원자리에 어떤 힘이 생기면 이를테면 판단하는 어떤 판결하는 사람이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고 안 좋고 하면 갑자기 판결도 나쁘게 써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기도하고 수행을 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냈을 때 내 마음이 그 삶의 마음과 傳達이 되고 連結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판결문을 쓸 때 그 사람 마음이 갑자기 고요해질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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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갑자기 이 사람을 떠올리면서 ~ 이 사람이 내가 이렇게 조금 잘못 써지면 큰일 날 텐데.” 하고 측은한

마음이 갑자기 동할 수도 있어요. 그 일들을 宇宙法界가 도와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고요히 하고 고요히 冥想하고 祈禱하고 修行하는 것이 이렇게 크고 偉大하고 대단한 理由가 그겁니다. 그렇게 祈禱를 通해서 마음이 고요해진 사람은 한 生覺 딱 일으키면 그 生覺이 强力한 힘을 받기 때문에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겁니다. 무엇이든 創造해내는 힘으로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큰 스님들은 한 生覺 일으키면 그게 現實로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심지어 어떤 큰 스님들이 祝願한번만 해줘도 病이 낫기도 합니다. 심지어 축원 카드만 그 사람 얼굴도 본적이 없지만, ‘그 사람 어디가 아프다.’ 그 축원카드만 읽어줬는데 그 사람이 遠隔으로 낫기도 해요. 그게 不可能한 게 아니라 實際가 可能한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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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宇宙一切가 連結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連結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절에서 축원하는 것도 사실은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 타인을 축원해주고 타인을 축복해주게 되면 내가 그 축복을 받고 내가 그 혜택자가 됩니다. 남들을 도와줬는데 내가 그 혜택을 받는단 말이죠. 가장 먼저. 오늘 여기까지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