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마음의 자리

장백산-1 2013. 6. 24. 13:54

 

 

 

마음자리/서암스님|영원한 나를 찾아서
유당 || 조회 0 |추천 0 | 2013.06.24. 11:22 http://cafe.daum.net/yourhappyhouse/Ev0h/2896

 

 

 
 
마음의 자리 / 서암 큰스님

 

 

옛날에는 대의삼장이라고 하는 이는 공부를 많이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훤히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나를 욕하면 나를 욕하는구나, 무슨 근심이 있으면 어떤 근심을 하는구나 하고 그 마음을 환하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혜충국사가 그 사람이 그런 소리로 모든 사람을 어지럽히니 바로

잡아주어야 되겠다싶어서 찾아와서는 '그대가 남의 마음을 훤히 안다고

하니 내 마음도 한 번 알아봐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 점잖은 스님이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면, 올 때 물가에서 말, 소, 개, 당나귀 이런 것들이 어울려 노는 것을 보았으니 그곳에 生覺을

던졌습니다. 그러니까 대의삼장이 확연히 마음을 알아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을 저 도리천이나 하늘세계에 던졌더니 대의삼장은

'아이고 스님, 참 훌륭하십니다.'하면서 그 마음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一切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마음의 고향, 말하자면 喜怒哀樂 想念이 떨어진 그 마음자리에다 마음을 딱 둬 버렸습니다.
그러자 대의삼장이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으니 당황합니다.

온갖 神通力으로 저 天上世界를 다 뒤지고 地獄을 다 뒤지고 三界六途를 다 헤매도 눈 앞에 있는 혜충국사 마음이 있는 자리를 못 찾았던 것이지요.
보통 사람은 상념(想念)의 世界에 마음을 쓰니 그것을 모두 알 수 있지만 빛도 모양도 냄새도 없는 본래 마음자리에 갖다 놓으니 아무리 신통력이 있다 해도 어떻게 想念으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슬플 때는 슬픈 生覺에 마음이 가기 때문에 鬼神이 보고 다 알 수

있지만 빛도 모양도 냄새도 없는 本來 자리에 딱 놓아두면 찾을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지요.


혜충국사는 당황하는 대의삼장에게 '반딧불 같은 지혜를 가지고 모든 사람을 현혹하느냐'고 호령을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잘못을 깨우친 대의삼장은 이렇게 해서 바른 마음工夫에 들어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꽃은 어느 누가 봐도 꽃이지만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 보는 것하고

눈뜨고 깨달은 사람이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마치 근심이 많은 사람은 꽃을 보고 눈물을 짓고, 근심이 없고

마음이 和平한 사람은 꽃을 보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과 같은 理致이지요. 그러니까 꽃 自體가 뭐 슬프고 괴로운 게 아닌데, 自己의 色眼鏡,

自己의 境界에 따라서 그렇게 判斷하는 것입니다.

대의삼장은 비록 모든 중생의 마음은 다 알지만 本來 마음자리를 밝히지

못한 까닭에 本來 故鄕에 던져진 마음을 알 道理가 없었던 것이지요.
대부분의 사람은 母胎 안에 들어선 것도 記憶하지 못하고, 2살 3살 때도

記憶 못해요. 아주 영리한 사람이 아니면 모태의 기억을 못하거든요.

그러나 딱 앉아 參禪을 하다 보면 어머니 배 안에 있던 記憶, 3살 4살 때

까맣게 잊었던 生覺도 떠오릅니다. 그것은 보통 때는 보이지 않던 먼지가 아침에 太陽빛이 비치면 바글바글하게 다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태양빛이 磁石처럼 그 먼지를 끌어온 것은 아니거든요. 다만 밝은 빛이 비추니까 먼지가 보일 뿐이듯 우리가 參禪을 하여 마음을 밝히면

지난 시절 까마득히 잊었던 일까지 다 떠올라 生覺나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한 段階 넘어서면 生覺이 가라앉으면서 靈的인 能力이 생겨, 가만히 앉아서도 數千里 밖의 일도 알고 過去 現在 未來를 훤히 알게 되지요.

그러나 그런 것을 아는 것이 參禪 工夫가 아닙니다.

여기까지는 한 過程일 뿐입니다.

그 段階에 執着하지 않고 넘어가면 참으로 完全히 조용하게 喜怒哀樂이

끊어지고 本來 安心立命한 자리를 發見하게 되지요. 空氣를 깨끗이 하면

太陽빛이 아무리 비추어도 먼지가 안 보이는 경우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太陽빛이 먼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밝은 빛이 먼지를 보이게 했을 뿐이기 때문이지요.

世上을 살아가는 데 '내가 世上을 굴리느냐, 世上에 내가 굴림을 당하느냐'하는 그 生活 態度가 凡夫와 聖人의 差異입니다.
이 世上 사람들은 모든 環境의 지배를 받으면서 누가 웃기면 웃고, 누가

부아를 돋우면 부아를 내고, 이렇게 지배를 받으면서 苦痛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世界는 어떠한 境界라도 相關이 없는 물들지 않는 自己를 驅使(구사)한다 그 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조용히 앉아서 한번 生覺해 봅시다. 다만 10분이라도 앉아서 自己 生覺을 딱 集中하고 參禪하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 參禪하는 찰나부터 自己의 安定된 마음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1분 동안 하면 1분동안 하는 것만큼, 10분 하면 10분하는 것만큼, 1시간 하면 1시간 하는 것만큼 하기 前과는 自己人生이 다른것이 스스로 느껴집니다.
마치 밥을 한 숟가락 먹으면 한 숟가락 먹은 만큼 배부르고 두 숟가락 먹으면 두 숟가락 먹은 만큼 배부르다가 끝내 한 그릇 다 먹으면 배가 다 부른 것처럼 우리가 어느 단계까지 수행을 쌓아 올릴 때 큰 영향럭이 생겨 어느 瞬間에 이르면 잠시만 해도 그 理致를 대번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感情이 생긴다든지 무슨 生覺이 極度로 달릴 때 잠시라도 가만히 앉아서 마음의 뿌리를 돌이켜 보면 그 불이 사그러집니다.
타는 불에 찬물 끼얹듯이 우리의 그 타는 熱病이 시원한 參禪의 물로 싹

녹아집니다. 그게 바로 法悅이고 喜悅이지요.

그것은 해 보시면 즉각 느껴집니다. 그렇게 해서 내 人生이 차츰 차츰 달라지는 것이지요. 영리한 이들은 물론 한번에 대번 깨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오래도록 해서 자꾸 쌓으면 모두 그렇게 깨치게 됩니다.

본래 마음을 밝히고 보면 바른 正法을 알고 그것에 따라 살게 되니,

우리 모두 이 理致에 따라 生活하도록 힘씁시다.

    서암스님의 가르침 [소리없는 소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