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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原住民 이야기 - 1서정록 / 검은 호수
왜 인디언인가? | |
서정록님은 지금 거제도에 사시면서 韓國 古代史를 통해 우리 文化의 傳統과 精神世界를 硏究하고 계십니다. 아메리칸인디언에 대한 공부뿐 아니라 주변국들과 소수민족, 제3세계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의 眞情한 傳統을 되살리는데 必要한 作業이라는 겁니다. 아메리카인디언의 精神世界는 구술과 wintercount를 통해 現在까지 많은 부분이 傳해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우리 古代文化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함께 아메리카인디언의 世界와 우리 古代文化가 어떻게 連結되는지 서정록님을 글을 通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북미원주민
이야기 - 1]
왜 인디언인가?
검은호수 서정록
수년전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오래된 未來]는 많은 이들에게 感動을 주었습니다.
티벳
라다크인들의 소박한 생활이 어느덧 都市生活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잠자는 靈魂을 일깨운 것입니다.
하지만 이 혼탁한 시대에 라다크인들의 소박한 생활이 과연 우리를 일깨워 새로운 生命世界로 나아가게 해줄 수 있을까 다시 生覺해 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資本主義 文明을 接하기 始作하자, 얼마 안 가 그들의 純粹함과 소박함을 잃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너무도 착해서, 순진무구해서 資本主義의 교활한 商術에 무너졌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이 무너진 것은 直接的으로는
資本主義의 侵透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그들 內部의 欲望으로부터 무너졌다고 보는 쪽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文化에는
오체투지의 지극한 낮춤이 있는 同時에 기복(祈福)의 文化가 함께 發見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수백 年 동안 白人들의 壓制와 밀려오는 物質文明의 洪水 속에서도
의연히 自身들의 本來의 모습을 지켜가려는 北美 인디언들의 경우와 對比됩니다. 물론 北美 인디언들의 경우에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白人문화에 동화되어
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自身들의 意思에 의한 것보다는 白人들이 인디언 부락을 파괴하고, 그들을 거리나 保護區域으로 내몰았던 데
주로 기인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白人들의 生活方式을 따라갔던 이들과
잘 살아보기 위해서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境遇를 같이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19세기 중반에 白人들이 中西部의 인디언 마을을 빼앗는
過程에서 生存權을 지키려는 인디언들과의
잦은 마찰이 있었는데, 그 過程에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戰鬪를 하다보면 서로 포로가 있게 마련이지요. 白人 兵士들 역시 인디언들에게 포로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쟁을 하다 보면 자연히 결손가정들이 생깁니다. 전쟁에 나간 남편이 죽거나 자식이 죽는 거지요. 그런 경우
인디언들은 포로들 중에서 자신의 남편으로 삼고 싶거나 자식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南便이나 子息으로 받아들입니다. 새로운 家族이
되는 거지요. 인디언 가정에 들어간 백인 병사들은 곧 인디언 사회에 적응해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디언 전사대의 일원으로 백인
병사들과의 전투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운이 나쁜 경우 白人들에게 포로가 되지요.
그러면 白人들은 그에게 왜 白人이 인디언 전사대가 됐느냐,
白人 사회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디언 家族이 된白人 兵士들은 하나같이 白人 사회로 復歸하기를 去否했다고 합니다. 이제 自身은
인디언이라고, 더 이상 白人이 아니라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그들은 왜 自身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敵인 인디언이 되고자 했을까요. 도대체 인디언
社會에 무엇이 있기에?
1832년부터 8년 동안 북아메리카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며 수백 점의 인디언 그림을 남긴 '조지 캐틀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그림과 현지의 생활과 풍습을 자세히 적은 그의 편지는 인디언 예술과 문학의 고전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난 인디언들의 삶과 우호적인 태도에 크게 감동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극한 정성으로 늘 나를 환영해주었던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법이
없어도 정직하며, 감옥도 없고, 가난한 집도 없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십계명을 읽은 적도, 목사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지만, 그것을 잘 지키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신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적이
없는,
그리고 그러한 맹세가 필요 없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성경이
없어도 신을 공경하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신 또한 그들을 사랑할 것이기에.
나는 모든 宗敎들이 같다고 믿으며, 종교적 적대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나의 물건을 훔친
적이 없는 민족,
그런 것에 대해서 징벌하는 법조차 없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땅을 빼앗고자 그들의 영역에 침입한 자들 외에는
백인들과 싸운 적이 없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신이 창조한 인류를 사랑하며, 결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신의 신성한 아이들이기에.
나는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돈을
貪하지 않는 인디언 민족들을 나는 진정으로 사랑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의 한 사람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뉴욕 주에 거주하는 이로쿼이 사람들이
西區의 民主主義보다 훨씬 더 수준 높은 民主主義 제도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도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고귀한 야만인'이라 부르며 어떻게 야만인들이 저렇게 水準 높은 民主主義 精神을 具現했는지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美國聯邦 憲法의 골격이 이로쿼이 연합의 <偉大한 平和의 法>에 基礎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西部映畵에 나오는 인디언에
익숙해져 있는 분들 가운데는 여전히 인디언들을 야만인으로 認識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現狀은 美國에 갔다가 '인디언
투어(Indian Tour)'를 하고 온 분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됩니다. 미국의 인디언 保護區域에 가 보니 貧困하기 이를 데 없는 데다 술
먹고 마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던데, 그런 인디언에게서 무엇을 배운다고 그러냐고 말입니다.
美國의 主流文化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일수록 이런 見解를 가진 경우가 많은 것을 봅니다.
事實 인디언 문화야말로 오늘날 미국의 주류문화, 이른바 新自由主義 文化의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문화이기에 더욱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物質과 資本이 最高이고, 돈만 가지면 못할 게 없는 世上에서 物質보다는 나누는 삶을 實踐하고, 나 個人보다는 家族과 이웃과 部族을 먼저
生覺하며,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그들의 삶이야말로 非現實的이고 原始的으로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北美 西南部의 山嶽地域(아리조나 州)에 사는 나바호族은 富者가 되는 것을 무척
警戒합니다. 利己心과 慾心 없이는
결코 富者가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富者가 되었다면, 그는 틀림없이 家族과 이웃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다시 말해 어려운 家族과 이웃을 챙기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富者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當然한 이야기입니다.
인디언 社會에는 獨特한 文化가 있습니다. 西區와 舊大陸의
文化가 物質과 蓄積을 崇上하는 文化라면 인디언 社會는
나눔을 崇上하는 文化라고 할 만큼, 그들은 物質을 이웃과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物質에 여유가 있는데도 이웃의 과부나 고아나 어려운 노인들을 돌보지 않으면, 社會的으로 지탄을 받는 것이 예사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락에 祝祭가 있으면 서로 自身이 준비한 것들을 가지고 나와 이웃과 나눕니다. 가난한 사람들조차 조그만 것이라도 들고 나와 자신의 마음을 나눕니다.
그래서 인디언 社會에는 基本的으로 富者와 가난한 자가 없습니다.
物質을 보는 態度가 資本主義 社會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들은 動植物을 包含한 모든 存在를 自身의 형제요, 친척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大地를 어머니라 부릅니다. 어머니가 우리를 낳아 기르듯, 어머니 大地가 우리를 낳고 기른다는 것이지요. 동학의 2대 교주였던 해월 최시형 선생은 이러한 思想을 '天地父母'라는 말로 풀어낸 적이 있습니다. 사실 大地가 없으면 이 世上에는 나무나 植物도 없고, 動物도 없고, 물도 없습니다. 우리는 全的으로 地球生命에 依存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가 어머니에게
의존하듯….
그래서 그들은 大地를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어머니라는 것은
얼마나 崇高한 것입니까? 우리는 다 커서도 어머니를 生覺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境遇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같이 딛고 서 있는 이
땅이 바로 어머니의 살갗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걸어 다닐 때도 조심해서 걸어 다닙니다. 결코 뒤꿈치를 쿵쿵거리며 걷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인디언들은 끊임없이 自身의 行動을 돌아봅니다.
혹시 自身의 生覺과 行動이 다른 存在들에게 나쁜 影響을
미치지는 않나 하고 말입니다. 그들은 特別히 아이들을 몹시 위합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치는 법이 결코
없습니다. 또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일도 없습니다. 필요할 때는 부드럽게 알아듣도록 說明합니다. 그들의 靈魂이
다치지 않도록 말이지요.
또한 그들은 女性을 매우 尊重합니다. 여성을 구타하는 남자는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습니다.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그 사회의 각종 모임으로부터 쫓겨납니다. 왜냐하면 女性은 生命을 낳고 기르는 '神性한 存在'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日常的인 삶과 靈的인 生活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分離되어 있지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日常生活 따로, 宗敎生活 따로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不完全하지요.
인디언들의 경우에는 兩者가 언제나 一致해 있습니다. 그들의 日常的 삶이 곧 宗敎요, 祈禱인 것입니다.
철나고부터 머리 속에 社會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갖고 살던 저는 이런 인디언들의 삶과
그들의 精神世界를 깊이
理解하면서, 그 동안의 쓸 데 없는 苦憫과 煩憫들을 모두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고(故) 무위당 선생님을 모시고 있을
때도 풀리지 않던 疑問들이 인디언을 알게 되면서 눈 녹듯 녹는 것이었습니다. 제 內面의 虛具意識도 바로 보게 되었고요. 물론 오랫동안 都市生活을 하며 몸에 쌓인 習이야 하루아침에 털어지지 않겠지만, 이젠 더 以上 비틀거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 神話에 보면 人類의 黃金시대가 있었고, 그 뒤에
銀의 시대가 있었고, 靑銅時代가 있었고, 鐵의 시대가 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 神話가 아니더라도 過去에 黃金時代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많은
民族 神話에 등장합니다.
저는 北美 인디언들이야말로 人類의 黃金時代를 산 사람들이라고 주저 없이 말합니다.
人類學者들에 의하면, 中東地方에 1萬여 年 前 實際로 黃金時代가 있었다고 합니다.
수렵채집시대에서 農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바로 그러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유골들의 건강상태를 보더라도 그 뒤의 농경시대보다 더 健强했고요.
하지만 그 시기는 불과 500여 년으로 끝나고 맙니다. 인류가 노력해서 만들어진 황금시대가 아니라 自然的으로 주어진 膳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北美 인디언들의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광활한 숲과 풍부한 물, 그리고 다양한
수렵 동물들과 채집식물들이
많았던 점도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이룩한 文化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人類 歷史上 人間이 가장 사람답게 산 歷史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위해주고,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天地萬物을 모시고 언제나 眞實 되게 살고자 했습니다.
요즈음 生態共同體 비슷한 것들이
이곳저곳에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現在의 資本主義의 主流文化에서 벗어나
代案을 찾는 것은 매우 重要한 試圖라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뚜렷한 方向과 指標와 目標가 있어야 한다고 生覺합니다.
그렇지 않을 境遇 방황하거나 실패할 危險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으는 過程에도 남다른
智慧가 필요하겠지요. 저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答을 北美 인디언 속에서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完全한 答은 아니더라도 그 精神과 方向만은 말입니다.
앞으로 代案을 찾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조금씩 써보려고 합니다.
같이 생각하고 나누는
그런 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서정록: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나왔으며
한살림운동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고대 동북아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글쓴이는
인디언의 삶과 정신세계에 크게 감명받아 지인들과 조그만 인디언 모임을 가지며 현재 거제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백제금동대향로-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학고재)가 있고, 역서로는 『지혜는 어떻게 오는가』(나무심는사람)가 있습니다.
** 생태공동체를 일구는 「이장」, 2003년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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