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데 있어서
自己 自身에게 '죄가 있다, 나는 죄진 사람이다' 라는 生覺도 기도 성취를 防害하는 要因이 됩니다. 罪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어느 권능자가 지어놓은 法則을 배반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人間의 本來 참 性稟이 般若波羅蜜이요, 禪이요, 부처님 功德을 갖추고 있는 存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미혹하여 本性 眞理를 모르고 바라밀 공덕을 믿지 않는데서 어두운 生覺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웃 종교의 神처럼 벌을 내리거나 보속(報贖)을 바라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生覺한다면 그것은 당치도 않은 生覺입니다. 그런 生覺은 도리어 自己 처벌이나 自己 속죄의식으로 말미암아 苦難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보속(報贖)이란 神에게 속죄하기 위해서 염소나 송아지 따위 또는 재물을 바치는 것인데 불교에는 이런 행위가 없습니다.
죄를 지었다는 것은 自己가 잘못한 것입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했음을 알고 뉘우쳐서 잘못된 生覺을 고치고
그 잘못된 마음을 쏟아버려 마음을 맑게 하면 그것으로 懺悔가 됩니다. 허물인지 알면 허물을 돌이키고 一心 懺悔하면 마음이 비워집니다. 비워지면 마음에 한 物件도 없는 밝은 마음이 됩니다. 밝은 마음이 될 때 부처님 功德이 가득 넘쳐 오는 것입니다.
自己 處罰意識도 마찬가지입니다. 自身이 과거에 불법을 믿지도 않았고, 그동안 여러가지 불행한 일도 있었고, 이것으로 허물도 많이 지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고통은 받아도 마땅하다고, 自己가 苦難 받는 것을 當然한 것으로 알고 苦難을 받음으로써 通快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정의감일 수도 있고 때로는 결벽이 될 수도 있지만, 이는 마음이 잘못 作用한 것입니다. 정의감도 좋고 결벽도 좋지만, 그것은 그 마음을 어둡게 하고 결박 지우고
어둠을 끌어 들이는 것 같은 意識으로서 作用할 때 不幸이 옵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우리는 마음 속에서 自己를 돌이켜서 懺悔하고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般波波羅蜜을 完全히 實現한 땅을 佛國土라 부릅니다. 眞理功德이 圓滿하다는 뜻입니다. '반야바라밀의 眞理 그대로의 世界다. 무엇이 不足이 있겠는가. 缺陷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을 一心으로 念하여 반야바라밀 功德이 막힘없이 드러난 마음, 거기에 不幸이란 있을 수 없다. 災難이나 不調和나 不幸이나 病苦란 當然히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병고나 재난이나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반야바라밀 眞理는 完全하건만 그릇된 生覺, 그릇된 感情의 구름이 波羅蜜의 밝음을 가렸기 때문이다.' 라고 生覺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現狀世界에 일어나는 일들은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의 表現입니다.
반야바라밀 眞理의 세계는 恒常 嚴然히 지금 이 瞬間에도 充滿해 있지만 사람들이 迷惑하여 반야바라밀 眞理를 믿지 않고 마음에서 認定하지 않는다면
波羅蜜의 圓滿性은 現狀世界에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本來 存在하지 않는 불행이나 고난도 그 사람의 마음, 生覺하기에 따라서 現狀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가르침을 다시 生覺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반야바라밀을 念하고 眞理를 念하여
眞理世界의 完全함과 圓滿함을 우리 마음에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 道理를 모른다면 설사 祈禱하더라도 마음에 般若波羅蜜 淸淨이 縣前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