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찾아서!!!

[스크랩] 한글창제는 세종대왕이 아닌 신미대사

장백산-1 2013. 7. 18. 17:42

한글창제는 세종대왕이 아닌 신미대사


인류역사는 항상 힘을 가진 지배자들에 의해 기록되었고 그만큼 왜곡된 부분이 많다는 것은 상식이다.

기독교인들이 늘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스라엘과 그리스 역사는 거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화이며 그리스와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식민였다는 사실도 천년동안 숨겨오다가 밝혀진지가 얼마 안되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인접한 초강대국 중국이 동북공정과 신라를 제외한 고구려 백제가 중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일본이 고대사 임나부설과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것도 그렇고 우리역시 역사 속에서 진실을 은폐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고대사는 물론 근세사 1백년도 아직 제대로 규명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몇 년 전부터 정부와 학계가 입이 마르도록 칭송하고 있는 한글의 우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훈민정음 한글이 민족의 글자를 넘어 세계적인 문자로 발돋움하려면 이제는 과학적 역사적으로 한글의 창제동기와 필요성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규명되어야한다. 그냥 세종대왕이 혼자 만들어서 집현전 학자들에게 한글분포를 명했다는 것으로는 국민과 세계가 믿어주지 않는다.

언어학자 강상원 박사와 충남대 사재동 명예교수 영산김씨 족보 속리산 복천암 현판 등에 의하면 세종대왕 당시 한글의 창제필요성을 느끼고 천재언어학자요 집현전학자출신인 신미대사(본명 김수성)에게 밀명을 내려 만들게 했다.

한글을 만든 동기도 그냥 아녀자와 백성들을 위한다고 되어 있지만 오늘날 전문 학자들은 승유억불이 원인이 된 불교부흥의 목적을 위해 불교 언어를 만든 것이 한글이라 고한다.

그 증거로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당시 명나라의 속국과 다름없는 조선조가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자를 정사에 바쁜 임금이 만들었다는 것이나 중국사대주의가 국정지표인 나라에서 집현전학자들이 한글을 만들고 협력했다는 것은 우스운 코메디다.

그 당시 한글창제는 요즘의 핵폭탄제조와 맞먹는 엄청난 기밀사항이다. 한국의 상전인 미국이 모르게 또는 미국이 기술협력하지 않고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말이나 5백 년 전 절대상전인 명나라가 모르게 그것도 밤낮 친명 유교정책으로 자기 민족문화 역사 자체인 불교를 핍박 탄압하던 학자 선비들이 비밀리에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둘째 조선조 5백년 구한말 망국 때까지 유교경전이 전부 한문투성이며 반대로 월인석보 용비어천가 및 온갖 불경등을 한글로 만들었는가. 자기 민족 글자인 한글을 당시 양반들은 언문 상글 통시글로 조롱해서 쓰지 않았고 오직 중국한문만을 쓴 것이 증거다. 쌍놈글 여인들의 글 화장실 휴지용 글로 천대했다. 어떤 국수주의자들은 한극의 중요성은 알지 못하고 한문이 본래 한민족의 글이라는 역사 왜곡의 말만 늘어놓고 있다. 한문이 본래 한민족 문자라면 유네스코에 등록을 중국이 아닌 한국이 해야 마땅하지 않는가.

셋째 신미대사는 보통승려가 아니다. 승유억불로 시작된 조선조이지만 초기에는 불교문화와 역사가 살아 있었던 탓인지 세종은 두 왕자. 문종과 세조를 첩첩산중인 속리산에 몇 번씩이나 보내었을까. 정책적으로 불교를 탄압했지만(이명박 정권도 동일) 정승의 집안인 최고 명문이요 대학자인 신미대사를 만나 한글창제의 밀명과 과정, 그리고 불심이 깊은 세종과 왕실의 안위를 가르침받기 위해서 일 것이다. 
실제로 신미대사는 문종과 세조의 스승인 왕사(王師)였고 세종역시 스승으로 모실만큼 학덕과 인품이 출중했다. 신미대사는 수미 학조대사를 실무자로 삼아 3년 동안 산속에서 한글을 만들었다 한다.

신미대사는 본래 고대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몽골 만주 중국 일본 등 5개 국어에 능통한 천재어학자요 유학과 불교에 통달한 대학자였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말속에 산스크리트어(현재 티베트문자)와 팔리어(현재 동남아 글) 만주 몽골 알타이가 섞여있는 것을 필자는 오랫동안 연구와 현지답사로 수수깨끼를 풀었다.

조선조 최고의 위대한 군주인 세종대왕과 세조대왕(비록 왕위를 찬탈했지만 세종의 두 번째 적자) 그리고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 양녕대군 및 왕실의 극진한 불심에 의해 사실상 유교인이 전혀 쓰지 않았던 한글을 주로 부인네 천민 불교승려들이 주로 썼을까 답은 나온다. 유생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것은 불교와 승려 한글이다. 친일친미사대주의 제국주의자들처럼 자기민족 문화를 멸시함으로서 얻는 정치적 이득이다.

한글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젊은 학자들 특히 언어학 인류문화학 차원에서 다뤄져야한다. 5백 년 전 신미대사의 한글창제는 21세기 스티브잡스의 IT혁명과 맞먹는 인본주의의 혁명이요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인본주의인 불교를 이단과 악마라고 거짓 선전하는 정치유교 기독교의 찌꺼기를 제외하고.
soam2005@hanmail.net

 *필자/시인, 정치평론가


출처 : (사)동이문화원 www.siddham.kr
글쓴이 : 훈민정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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