迷心萬行未免輪廻(미심만행미면윤회) 선문촬요 禪門撮要
迷心萬行未免輪廻(미심만행미면윤회) -미한 마음으로 만행을 해도 윤회는 면치 못한다-
[학인] 만일 分別하고 運動하는 온갖 時間이 모두가 本來 마음일진댄 色身이 죽을 때엔 어찌 하여 本來 마음이 보이지 않을까요? [달마] 本來 마음이 恒常 앞에 나타나 있으되 그대 스스로가 보지 못할 뿐이로구나.
[학인] 마음이 이미 보고 있는 곳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제가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달마] 그대는 꿈을 꾼 적이 있던가?
[학인] 있습니다. [달마] 그대가 꿈을 꿀 때에 그것이 本來 그대의 몸이던가?
[학인] 예, 제 本來 몸이었습니다. [달마] 그대가 말하고 分別하고 運動하는 것이 그대와 다르던가? 같던가?
[학인] 다르지 않았습니다. [달마] 이미 다르지 않다면 이 몸 그대로가 그대의 本來 法身이며, 이 本來의 法身 그대로가 그대의 本來 마음이니라.
이 마음이 끝없는 廣大 劫 前부터 지금과 더불어 조금도 다르지 않아 전혀 나고 죽은 적이 없는지라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오지도 가지도 않으며, 옳고 그름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의 모습도 없으며, 승(僧)과 속(俗), 늙고 젊음도 없으며, 성인도 없고 범부도 없으며, 부처나 중생도 없으며,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으며, 인(因)도 과(果)도 없으며, 힘쓸 것도 힘 자체도 없고 모양도 모습도 없는 것이 마치 虛空과 같아서 取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느니라.
山이나 江이나 石壁이라도 障碍하지 못하며, 나오고 들어가고 왔다 가는데 神通 自在하여, 오온(五蘊)의 山을 벗어나 生死의 바다를 건너리니 온갖 없이 이 法身을 拘束할 수 없느니라. 이 마음은 微妙하여 보기 어려우니라 이 마음은 物質의 모습과는 같지 않아서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
사람들은 모두가 보고자 하거니와 이 光明 가운데서 손을 흔들고 발을 움직이는 일이 항하의 모래 같되 물어보면 전혀 對答치 못함이 마치 허수아비 같나니, 모두가 自己의 수용(受用:活動)이거늘 어찌하여 알지 못하는가?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온갖 衆生은 모두 迷惑한 사람이라 이로 因하여 業을 지으므로 生死의 바다에 빠져서 나오려 하다가도 도리어 빠지나니 오직 性稟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시니 衆生이 迷惑하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물은 즉, 한 사람도 아는 이가 없는가? 自己의 손과 발을 움직이는 것을 어찌하여 알지 못하는가? 그러므로, 聖人의 말씀은 틀리지 않건만 사람이 迷惑하여 스스로가 알지 못할뿐임을 알겠도다.
그러기에 이 마음은 밝히기 어려우니 부처님 한 분만이 能히 아시고 그 밖의 人間, 하늘 등의 무리는 아무도 밝히지 못하는 줄 알지니라.
만일 지혜(智慧)로써 이 마음을 分明히 알면 비로소 법성(法性)이라 부르며, 解脫이라고도 하나니, 生死가 拘碍하지 못하며 온갖 法도 拘束하지 못하므로 대자재왕여래(大自在王如來)라 이름하며, 부사의(不思議)라고도 하며 聖人의 本體 라고도 하며, 장생불사(長生不死)라고도 하며, 큰 선인(大仙)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體는 곧 하나이니라.
聖人들의 갖가지 分別이 모두가 自己의 마음을 여의지 않았나니, 마음의 기량(機量)이 廣大하여 應用에 끝이 없느니라. 눈에 應하여 빛을 보고, 귀에 應하여 소리를 들으며, 코에 應하여 냄새를 맡으며, 혀에 應하여 맛을 아며, 나아가 온갖 活動이 모두가 自己의 마음(自心)이며 언제든지 다만 言語의 길이 끊어진 것이니, 이것이 自己의 마음이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如來의 형색(形色)이 다함이 없으며 智慧도 그러하다" 하셨으니 形色이 다함 없는 것이 곧 自己의 마음이니라.
마음(心議)이 能히 一切를 分別하며, 나아가 온갖 動作을 쓰는 것이 모두 智慧이니, 마음은 形相이 없으며 智慧도 또한 다함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如來의 형색(形色)이 다함이 없으며 智慧도 그러하다"하시니 사대(四大)로 된 形色이 煩惱의 몸으로 生滅이 있거니오, 법신(法身)은 恒常 머무르매 머무는 바가 없으므로 如來의 法身이 恒常 變해 바뀌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經에 말씀하시를 "중생이란 마땅히 佛性이 本來 있는 몸임을 알아야 한다"하시니 가섭은 다만 本性을 깨달았을 뿐이요, 딴 일이 없느니라.
本來의 性稟이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本來 性稟이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마음과 같느니라. 앞 부처와 뒷 부처가 오직 이 마음을 傳하셨을 뿐 이 마음 外에 따로이 부처를 볼 수 없느니라.
뒤바뀐 衆生이 自己의 마음이 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밖으로 求해 달리되 종일토록 설치며 부처를 염(念)하고 부처에게 예배한다니, 부처가 어느 곳에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은 所見을 짓지 말지니라. 다만 自己의 마음을 알기만 하면 마음 밖에 다시 다른 부처가 없느니라.
經에 "무릇 形相 있는 것은 모두가 虛妄하다" 하시고 또 "있는 것이 있는 곳에 부처가 있다" 하셨으니, 自己의 마음이 곧 부처인지라,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예배(禮拜)하지 말지니라. 만일 부처와 菩薩의 모습이 홀연히 나타나더라도 절대 禮敬 하지 말지어다. 내 마음이 공적(空寂)하여 本來 이러한 모습이 없나니 만일 形相을 取한다면 곧 魔에 포섭되어 모두가 삿된 道에 떨어지리라. 만일 허깨비가 마음에서 일어난 줄 알면 예경할 필요가 없나니, 예배하는 이는 알지 못하고, 아는 이는 예배하지 않느니라. 예경하면 곧 魔에 포섭되리니 學人이 행여나 알지 못할까 걱정되어 이와 같이 밝혀 두노라.
부처님들의 根本 性稟 바탕 위에는 도무지 이런 안팎의 모습이 없나니 懇絶한 마음으로 새겨 둘지어다. 特異한 境界가 나타나거든 결단코 取하거나 끌리지도 말고 또 두려워하거나 겁내지도 말고 의심하거나 헛갈리지도 말지니라. 내 마음이 本來 淸淨하거늘 어느 곳에 이러한 모습이 있단 말인가?
나아가서는 하늘, 龍, 야차, 鬼神, 梵王 等의 상(相)에라도 恭敬하는 生覺을 내지 말 것이며, 두려워하지도 말지니라. 내 마음이 本來 空寂한지라 저들 모습이 모두 虛妄한 형상(形相)이니, 결코 形相을 取하지 말도록 할 것이니라.
만일 부처나 法이라는 見解를 일으키거나, 또는 부처나 菩薩의 모습에 恭敬할 生覺을 낸다면 스스로를 중생의 축에 집어던지는 格이라 하리니 만일 바르게 알고자 할진댄 다만 온갖 形相에 執着하지 않기만 하면 되리니 따로이 할 말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經에 "무릇 形相 있는 것은 모두가 虛妄하다" 하신 것이니, 도무지 一定한 實體랄 게 없으며, 환(幻)에 一定한 相이 없는지라 이것이 無常한 法이니 다만 形相을 取하지 않으면 거룩한 뜻에 부합되리라. 그러므로 經에 말씀하시기를 "온갖 形相을 여의면 곧 부처라 한다" 하셨느니라.
|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빠사나란? (0) | 2013.08.02 |
---|---|
위빠사나는 어떤 수행인가? (0) | 2013.08.02 |
인류화합 / 우주평화 (0) | 2013.08.02 |
나는 누구인가? (0) | 2013.08.02 |
마음을 빛으로 채우자 - - -광덕스님 (0) | 2013.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