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역경과 좌절을 만나게 된다면

장백산-1 2013. 8. 5. 22:47

 

 

 

역경과 좌절을 만나게 된다면|법상스님 감동어구

담마 | | 조회 82 |추천 0 | 2013.08.05. 06:38 http://cafe.daum.net/truenature/O36K/1142

 

 

 

 

 

 

삶은 언제나 不確實하다.

내 삶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不安定하고, 不安하며, 심지어 危險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逆說的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삶은 아름답다.

 

삶이 안전하고 확실하게 이미 정해져 있고,

안정적인 분명한 미래가 保障되어 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生氣를 잃고 말 것인가.

그런 삶은 언뜻 보기에는 안정되어 보이고 행복해 보이겠지만

그런 삶을 사는 자는 나약하고 속박되어 있으며 틀에 박혀 있고 생기가 없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고, 그것도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면

거기에 나만의 自由意志를 펼칠 空間이 없다.

확실한 삶에 틀어박히고 구속된 채 자유를 잃고 해맬 수밖에 없다.

그런 삶은 얼마나 희뿌옇고 재미가 없는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 달 뒤, 일 년 뒤, 십년 뒤 머언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면

그것처럼 따분하고 기계적인 밍숭맹숭한 삶이 또 있을까.

그것은 삶이 아니다. 그저 機械의 움직임일 뿐.

그것이 아무리 부유한 미래일지라도 그것은 拘束이요 束縛이다.

 

돈과 재물로 가득 찬 부유한 老後라고 할지라도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런 삶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삶에 지쳐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노후를 준비하려 들지 말라.

내 삶의 미래며 노후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가장 분명하고 알찬 미래와 노후준비는

오직 지금 이 瞬間에 주어진 삶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살아내는 일이다.

노후자금을 銀行에 넣어두는 일보다 더 重料한 것은

바로 지금 이 瞬間의 깨어있는 삶으로써

시공(時空)의 法界無量功德貯蓄하는 일이다.

 

삶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정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단 한 순간의 미래도 보장되어 있지 않고 언제나 하기 때문에 驚異롭다.

우리는 그 불확실한 삶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에 나를 얹어 놓은 채 다만 따라 흐를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불확실하고 정해진 바가 없다면 불안할 수는 있다.

그러나 不安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 삶에서 때때로 마주하게 될 混亂危險을 거부하지 말라.

 

 

괴로움, 아픔, 상처, 좌절, 패배, 슬픔, 공포 이런 것들로 아파하지 말라.

삶이라는 것은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좋은 일만 일어나는 곳은 아니다.

내가 하는 일만 일어나는 곳이 아니다.

 

원하는 대로 다 하며 살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그런 삶도 없다.

좋은 일만 일어나며, 원하는 대로 다 하고 살 수 있는 인생이 있다면

그 인생처럼 따분하고 심심하며 불행한 삶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삶에는 生氣가 없고 智慧가 없으며 自由가 없다.

삶은 누구에게나 때로는 힘겹고 때로는 눈물겹다.


지나 온 삶을 돌이켜 보라.

생의 어느 한 순간에 내 존재 위를 스쳐 간

수많은 아픔과 고통과 좌절들이야말로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지금의 나를 나일 수 있게 해 주는 所重甘露였고 同伴者였다.

그 때 그 아픔이 없었다면 어떻게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을까.

 

모든 아픔들, 모든 고통과 좌절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내 삶의 成長成熟을 가져다 준다.

어떤 것들은 내가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성장을 가져다 준 것도 있고,

또 어떤 것들에서는 도저히 그 아픔 속에서 무슨 깨달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지 않은 기억만을 가져다 준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後者記憶 또한 어떠한 방법으로든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분명한 기여를 했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방법으로 나를 도왔다.

 

인생의 어느 때가 되고, 內的으로 어느 정도 삶의 洞察이 깊어지게 되면

그 때의 그 아픔이 나에게 어떤 成長을 가져다주었는지,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아픔 없는 삶, 괴로움 없는 삶, 순탄한 삶,

우리가 꿈꾸는 삶은 그런 삶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그런 삶 속에는

깨우침도, 成熟도, 智慧도, 慈悲도 꽃피어나기 어렵다.

 

願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願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삶이란

고작해야 우리에게 어리석음과 얕은 精神空虛內面을 가져다 줄 뿐이다.


世上根本 理致는 언제나 變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이치와

고정된 것, 확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이치를 따른다.

또한 그러므로 삶이란 언제나 불안전하고 불안정하며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이치에 基礎하고 있다.

그것이 삶의 基本 原則이며 理致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基礎를 거스르려 애쓴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며 끊임없이 變하는 세상을 살면서,

안정적이고 확실하며 불변하는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그런 것은 어디까지는 꿈이고 幻影이며 억지일 뿐,

그런 것은 없다.

없는 것을 찾아 나서봐야 찾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삶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이라.

삶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있는 그대로 受容하고 認定하라.

그랬을 때 삶은 아름답다.

 

아니 사실은 불안하고 불안정하며

삶의 곳곳에 내재된 위험과 혼돈이 있기 때문에

삶은 경이롭고 찬연히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삶의 복잡성과 혼란과

어느 때고 쉴 사이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위험과 근심과 역경들,

그것들이야말로 우리 삶에 가장 要素다.

 

그런 도전들이 없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피폐하고 나약해지고 말 것인가.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라.

느긋하게 삶의 혼란을 즐기라.

 

아수라장처럼, 난장판같이 튀어나오는 삶의 모든 危險들을

그저 한발자국 떨어져 가만히 지켜보라.

다가오는 삶을 전체적으로 느끼고 만끽하고 受容하라.

그리고 그 모든 삶에 感謝하라.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될 수도 있으며,

이것이 될 수도 있고, 저것이 될 수도 있는

모든 可能性이 열려 있는 삶이란 얼마나 生氣로우며 아름다운가.


삶의 모퉁이에서 逆境을, 危險을, 挫折을 만나게 된다면

호흡을 가다듬고 반짝이는 눈으로 눈부시게 지켜보라.

혼란스런 삶도 깊이 바라보면 눈부시게 빛난다.

 

 

 

 법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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