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그 길을 묻다 - 세계 지성과의 대화](3)
하워드 가드너 미국 하버드대 교수
한국, 경제적으로 성공했는데… ‘전쟁터 사회’ 벗어날 때도 돼<br/>
바른 사람· 바른 노동자· 바른 시민이 되도록 아이들 가르쳐야경향신문 글 |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사진 | 김아람 재미 사진작가 입력2014.01.27 21:48 수정2014.01.28 09:56
기사 내용
한국 사회에서 입시 경쟁이 세대가 바뀌어도 느슨해지지 않는 이유는 그동안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한 반면 분배가 공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력별 소득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고 학벌에 따라 기회가 제한되는 관행들도 개선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존엄을 갖출 만큼 기본소득이 주어지는 복지가 이뤄진 것도 아니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취업 때문에 불안은 커지고 경쟁은 점점 과열된다. 어른의 불안과 불만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쏟아지면서 우울한 어린이를 양산하고 있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나마 아직 열려 있는 보험 같은 문이라는 명문대 입시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 길에는 돈과 희생이 쌓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덫이 하나 있다. 공정하다는 평가시험 자체가 인간 능력에 대한 차별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갖춘 여러 능력 가운데 수리능력과 언어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만 유리하도록 제도가 짜여졌다. 논리적 추론이 정교하고 셈이 빠르며 잘 외우는 능력만을 우대해 기회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25년 전, 하버드대 교육심리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는 인간의 능력을 가늠하는 單一知能 우대 시스템에 반론을 제기했다. 인간의 두뇌는 8가지 다중지능을 갖고 있다는 이론이다.
그의 이론은 급속히 학계에 퍼졌고, 연구와 임상 그리고 뇌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견고한 틀을 갖추게 되었다. 전 세계 대학과 연구소가 다중지능이론을 존중하며 현실에 적용시켜 나간다. 21세기 들어와서는 대중적으로도 확산됐다. 앞서 2회에서 제러미 리프킨은 21세기를 '공감의 시대'라고 했다. 우리의 지능 가운데 인간 친화 지능과 자기 성찰 지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며, 사회경제적으로도 교류 양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닥쳐올 위기들 또한 협업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소통과 협력의 시대를 맞아 한국 교육 역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수업과 평가를 통해 문명의 지속성을 단단히 지켜내야 할 때다. 우리 교육에서 무엇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지 조언을 듣고자 하워드 가드너 교수를 만났다. 지난 7일 하버드대 그의 연구실에서 나눈 이야기다.
▲ 언어·수리 능력 재는 시험이
"왜 죽나" "왜 싸우나" 같은 思惟 能力 측정하진 못해
▲ 제도 안의 '학벌 편견' 문제
남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라
안희경 = 요즘 대학 입시 발표가 나고 있습니다. 결과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한국은 대학이 마치 교육 레이스의 결승점처럼 됐어요. 대학을 가야 하고, 이름 높은 학교를 가야
남은 인생이 보장된다는 안도감을 얻습니다.
하워드 가드너 = 왜 부모들이 자식을 그렇게도 명문대에 보내고 싶어 할까요?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적 높은 학생들이 모인 학교에 가면 그들과 어울릴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죠. 물론 그 네트워크를 무시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시험 점수로 사람들을 1등부터 꼴찌까지 줄세우는 것을 반대합니다. 왜냐면 똑똑하다고 칭찬할 만한 능력은 성적이 좋은 경우뿐 아니라 여러 다른 재능들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어느 특정한 능력에만 찬사를 보내고 미화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수학과 언어 능력 중심으로 사람들한테 영광을 얻게 해준 거예요. IQ(지능지수) 검사를 보다 정교하게 보완한 검사 중 하나가 미국 고등학생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치르는 SAT입니다. 한국 시험도 이와 비슷할 거 같은데요. 언어 점수와 수학 점수를 중시하는 일종의 단일지능 위주의 테스트죠. 20세기 산업 패턴에 맞춰진 테스트입니다. 이런 시험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자기를 바로 보는 능력, 예술적인 자질, 창의력은 평가할 수 없습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매우 필요한 능력인데도요.
안 = 시험 잘 못 봐서 기죽고 머리 나쁘다 실망하고, 또 IQ 낮아 열등감에 빠졌던 시간들이 결국은 단일지능 중심으로 만들어진 제도 때문에 자기비하를 한 거였군요. 억울해집니다.
가드너 = 본인의 IQ를 압니까? 저는 모릅니다. 미국에서는 다들 몰라요. 안다 해도 IQ를 대화에 거론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을 평가틀로 끼워넣는 거니까요.
안 = 인종차별처럼 통용되는군요. 우리의 경우는 '머리가 좋다'는 표현이 대화에서 자주 오고갑니다.
가드너 = 그렇다고 논리적 사고를 평가하는 IQ 테스트가 그 사람의 미래를 잘 맞추는 것도 아닙니다. 한 가지에 초점을 둬서 검사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조건들을 더해서 검사를 하면 예측성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사람의 미래를 뭐라 예측한다는 것이 참 부질없음을 알게 하죠. 성적이 좋으니까 법대 가면 잘할 거라는 기대감도 IQ 위주로 평가해서 나온 건데, 법은 논리와 언어 능력이 동등하게 요구되기 때문에 수학 잘한다고 법대 교수가 될 거라는 기대는 틀린 겁니다. 의사도 그렇습니다. 과학과 의학에다 환자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환자의 얼굴을 보며 상태를 읽어내는 능력은 IQ가 아니라 人間 親和 知能에 더 가깝죠. 바로 이 人間的 交感 때문에 우리는 機械가 아닌 사람 醫士를 찾아가는 것이고요. 누가 훌륭한 판매능력을 갖춘 마케터인지 알려면 시험 성적에 중점을 두면 안됩니다. 그 사람이 당신한테 물건을 팔 수 있는지 보는 것이 마케팅의 기본이니까요. 또 새로 발명품을 만들어야 한다면, 이때는 그 어떤 시험도 미리 줄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안 = 성적 좋은 학생을 칭찬할 때는 학습 능력뿐 아니라 그 誠實함까지 높이 사서 그런 건데요.
이도 특정한 재능과 연결되어 있기에 그런 이들이 조금 쉽게 참아낼 수 있었겠다 싶습니다.
가드너 = 여러 사람이 평가받는 시험은 우선 치르기 편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부터 언어·수리 능력 위주로 출제해온 겁니다. 그런 시험지에는 큰 질문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죽는가' '사랑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싸우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천 년 넘게 흐르는 긴장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런 사유하는 질문들은 답하는 데도, 점수를 주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요. 하지만 이런 질문에 쉽게 몰두하는 능력을 갖춘 이들이 있습니다. 실존지능(Existential intelligence)이라고 논문을 발표할까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런 큰 질문들은 종교와 철학 그리고 때로는 문학으로 승화되죠. 이런 능력은 테스트로 알 수 없죠. 수리능력, 언어능력이 독창성, 창의력, 공감력보다 더 중요하다고 평가되어서는 안됩니다. 21세기는 協力하는 作業이 훨씬 중요해요. 이것도 우리가 종이에다 연필로 적어서 테스트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죠.
▲ 대부분 아이들이 학원 가는 한국 교육의 현재 상황은
매우 심각한 병리적 증상
▲ 한국서 다중지능이론 인기
아이의 흥미·자질 측정 아닌 8가지 지능 개발로 왜곡돼
안 = 이달 초 한국 언론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진행한 '노동시장 선호와 선별에 기반한 입시체제의 분석과 평가' 보도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학벌에 따라 받는 차별이 성별이나 연령, 출신지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어요. 같은 대졸자라도 출신 대학에 따라 임금, 승진, 조직 내 관계에서 차별을 경험했는데 그 비율이 50%에 육박합니다.
가드너 = 엘리트 학교를 다녔고 지금도 엘리트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 맞춤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한마디하고 싶은데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보다 나의 목표, 나의 능력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평가하는 겁니다. 남의 평가에 위축되는 분위기가 참 슬퍼요. 저는 아이가 넷인데 평판이 좋기를 바라죠.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어떤 중요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주목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무룩해지면 이렇게 말해줍니다. "애야, 너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사람의 문제란다." 한국의 제도 안에 있는 학벌에 대한 편견이 문제입니다. 그 때문에 당하는 불이익, 몹쓸 일이죠. 그래도 우리 눈으로 스스로를 진단해야 해요. 미스터 김이, 미스 박이 生覺하는 대로 휘둘리면 안됩니다. 이럴 때 제도의 협조가 있다면 상황이 훨씬 쉬워질 겁니다.
안 = 사회 제도를 바꾸느냐 교육 제도를 바꾸느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라기보다 두 가지
모두 아우르면서 偏見을 깨는 認識의 확장이 이뤄져야겠습니다.
가드너 = 내가 매우 관심을 기울이는 두 개의 사회가 있어요. 핀란드와 이탈리아 북부입니다. 이곳은 중국이나 싱가포르보다 훨씬 균형감을 갖추고 있죠.
안 = 두 곳 모두 경쟁보다 협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네요. 이탈리아 북부는 協同組合에서 태동한 레지오 아밀리아 교육을 떠올리게 합니다. 핀란드는 敎育 以前에 福祉와 富의 分配가 어느 先進國보다 잘된 곳이고요. 平等한 社會가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機會를 준다고 生覺합니다.
가드너 = 그렇죠. 내가 투표장에 가서 선거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걱정만 늘어놓을 것인지 바꿀 것인지 여러분이 결정해야 합니다. 제도를 바꾸고 싶다면 나서야죠. 출마도 하고 선거운동도 해서 도전하는 겁니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모두 명문대를 나왔다면 국민한테 아주 특별한 메시지를 주는 겁니다. 모두 좁은 구멍 속으로 자식을 밀어넣게 만들 거예요. 정부 요직에 있는 이들이 모두 같은 대학 동창생이라면 한국 사회의 긴장은 느슨해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학교를 나온 남녀가 정부 부처에 모여 뜻을 펼친다면, 사회로 퍼지는 의미는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안 = 協力을 깨는 것은 누군가 利潤을 獨食할 때입니다. 敎室 속 問題도 결국은 民主主義를 지켜내는 것이 관건인 것 같습니다.
가드너 = 사회가 더욱 다양성과 다원적인 문화를 가질 때 서로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싸움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한국이야말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회가 됐는데 "긴장 풀자"고 여유 좀 부려도 되지 않나요? 이제는 돌볼 때입니다. 제가 묻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요. 한국에서 저의 다중지능이론이 인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가요?
안 = 중국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같습니다.
가드너 = (웃음) 아이의 흥미와 자질을 알아보려고 이용하기보다 8가지 지능을 다 개발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는군요.
안 = 본뜻과는 다르게 입시 경쟁, 출세 경쟁에서 남보다 뛰어나도록 키우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교육 시장이 커져서 그런데요. 유아교육 시장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죠.
가드너 = 정말로 사회 구조를 바꾸고 싶다면 부모를 먼저 교육시켜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은 모두 다른 자질을 갖고 있고 그 다양한 능력이 존중받도록 지켜줘야 한다고 인식할 때 사회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안 =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이 고생하지 않고 잘살기를 바랍니다.
가드너 = 물론이죠. 단, 무엇이 잘사는 삶인가 물어야 해요. 편안하려면 돈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일단 돈을 갖게 되면 금방 불행해져요. 늘 다른 사람이 더 많이 갖고 있는 걸 알게 되니까요. 많은 연구 결과가 그래요. 幸福의 意味가 무얼까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생산적일 때, 그리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되도록 도울 때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삶이 잘사는 것 아닐까요?
안 = 학교에서 幸福을 經驗하고 스스로 幸福해지는 법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수업을 도입하면 어떨까요.
가드너 = 나는 학교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 해야 합니다. 어른들이 자기 일을 즐기고, 조금 더 나아지려 애쓰고, 또 서로 나누며 기뻐한다면, 그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의 미래가 또 그렇게 될 겁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을 절대로 듣지 않습니다. 다만 부모가 하는 行動을 봅니다. 부모가 "나는 정말이지 네가 幸福하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돈에 더 關心을 가지면, 아이는 '세상에서 第一 重要한 건 돈이구나'라고 배워요.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어른들이야말로 가장 많이 影響을 미치는 要素입니다. 책에서 뭐라고 하는가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자기가 보는 어른의 모습으로 자랍니다.
안 =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어른들 말씀이 생각납니다. 한밤에 우는 아기를 염려하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안전을 살피는 마을이라면 그곳에서 자라는 아이는 느긋하고 너그럽겠죠. 그런데 한국의 어린이들은 바쁩니다. 지금 방학인데도 학원 가느라 놀 틈이 없습니다. 다들 선행학습을 하기에 미리 배우고 학년에 올라가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조바심이 있어요.
가드너 = 솔직히 말하면, 제게는 매우 병적 증상으로 들립니다. 아이들한테서 어린 시절을 빼앗는 강도짓이에요. 더 좋은 성적을 내라고 몰아치는 건데 그 시험은 어떤 누군가가 만든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해야 하는가 보다 생각한다면, 이건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쥐가 된 겁니다. 거기에서 꼼짝 못하고 계속 달리고 있는 거예요. 틀에 갇혔어요. 내가 만약 한국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라면 이렇게 외칠 겁니다. "좋아, 이제 그런 시험은 없어. 다 걷어내는 거야." 그럼 큰 變化가 일어납니다. 아이들에게 또 어른들에게도 자기가 무엇에 關心을 갖는지 發見하도록 機會를 줄 겁니다. 그런 시험 없이 우리는 훨씬 더 잘 해나갈 수 있어요. 그리고 모든 8살짜리가 같은 수학을 배운다는 것은 옳지 않아요. 사람마다 수리능력이 다르니까요. 어떤 8살 아이는 10살이 배우는 걸 해볼 만합니다. 그럼 기회를 줘야죠. 하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방과후에 학원으로 간다는 것은 병리학적 신호입니다. 알아차려야 합니다.
안 = 미래를 위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가드너 = 이야기 하나 해줄게요. 일 년 전이었어요. 한 학생이 찾아와서 말하더군요. "저는 왜 학교가 필요한지 더 이상 모르겠습니다. 모든 질문의 답은 이 스마트폰 속에 들어 있잖아요." 그래서 학생 말이 맞다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모든 質問의 答은 아니죠. 한 種類는 없습니다. 바로 우리들 存在에 관한 질문들이죠. 나는 아이들이 자라나서 뭔가 새로운 것을 創造하고 家庭을 이루어 慈悲로움, 보살핌이 중요하다는 것을 식구들과 나누며 살면 좋겠어요.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애쓰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살아있는 단 한 가지 이유입니다.
저는 지난 20년 동안 '굿 프로트'(www.thegoodproject.org) 일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사람들한테 세 가지 善을 이야기합니다. 바른 사람, 바른 노동자, 바른 시민이 되자고요.
바른 사람은 당신이 도움이 필요할 때 바로 달려가 돕는 사람입니다. 바른 노동자는 훌륭하고 참여적이며 도리에 맞게 살아가면서 공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며 충만하게 사는 이들이죠. 바른 시민이 되는 것은 규칙과 법을 알고 보살피며 윤리적으로 활동하는 겁니다. 자기만 성장하지 않고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는 거예요. 이 셋을 함께 이룰 수 있다면 바른 사회가 되겠죠.
신자유주의 속에서 돈이 제일이 됐고 세상이 없어질 때까지 그 돈을 쥐려고들 애씁니다. 참으로 멍청할 뿐 아니라 아주 위험합니다. 멍청한 이유는 그 누구도 충분한 돈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고요. 위험한 것은 이 세상에 쓸 수 있는 자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죠. 지혜와 지식을 동원해서 잘 사용해야 합니다. 농작물도 물고기도 광물도 그 양이 정해져 있기에 아끼고 또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눈을 부릅떠야 해요. 지금의 엄청난 소유 격차로는 이 세상을 지켜나갈 수가 없습니다. 과학도 수학도 우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오직 깨달음뿐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깨닫고 이 세상을 모두와 공유하며 살겠다는 인도적
가치를 깨달아야 生存할 수 있어요. 자유, 정의, 평등에 대해 일어났던 우리 문명의 혁명을 이해하며 편가르기보다 함께하도록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眞實해야 한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하워드 가드너(71)는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육심리학과 교수이자 하버드대 心理學科 겸임 교수이다.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ce)의 창시자로, 그의 교육심리 이론은 여러 나라에 도입됐다. 또한 다중지능이론을 교육 현장에서 실천하는 학교와 연구소가 세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인간의 예술적·창조적 능력의 발달 과정을 분석하는 '프로젝트 제로' 연구소의 책임자로서 20여년간 지능과 창조성, 리더십, 교육방법론, 두뇌개발에 관한 연구 결과를 꾸준히 발표해 왔다. 1981년 맥아더 펠로십, 2000년 구겐하임 펠로십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윌리엄 데이먼과 함께 '굿 프로젝트' 활동을 하면서 바른 사람, 바른 노동자, 바른 시민을 길러 사회를 변화시켜나가는 데 열정을 기울여왔다.
그동안 < 열정과 기질 > < 체인징 마인드 > < 마음의 틀 > < 다중지능: 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 < 진선미 > 등 29권의 책을 출판했고 32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최근 저서로는 작년 10월 영어로 출간된 < 앱 세대(The App Generation): 오늘날 젊은이들이 디지털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친밀감 그리고 상상력을 펼치는 방식 > 이 있다.
인간의 지능은 그동안 IQ 위주로 단일하게 평가돼 왔지만, 실상은 8가지 다양한 능력으로 이뤄진 다중지능이다. 8가지 지능은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논리수학지능, 언어지능, 공간지능,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 자연친화지능이다.
각각의 지능이 드러나는 정도를 조합하면 개인이 갖는 잠재력과 개성은 무한하다.
가드너 교수가 제시한 8가지 인간 지능은 시간이 지날수록 뇌과학으로 더욱 풍부하게 증명되고 있다.
사고로 두뇌의 일부가 손상되면서 각각의 지능이 급격히 줄어드는 임상을 봐도 각 지능이 독립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글 |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사진 | 김아람 재미 사진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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