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화의 원인을 알아가는 명상이 주는 자유

장백산-1 2014. 1. 27. 13:28

 

 

 

 

 

화의 근원을 알아가는 명상의 자유

다 양보해도 ‘이것은 아니야’ 라고 '하나' 정도는 마음속에 뭉뚱 그려 놓습니다.
그리고 그런 대상을 만나면 이성이 있으니 격한 대응은 안하지만 그와 반대의 온유한 저항인
‘말을 안하기’ 또는 ‘無視하기’ 또는 의도적으로 ‘無關心하기’와 같은 現象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內向的인 忿怒입니다.

外向的인 분노가 知性과 理性이 弱한 敎育이 낮은 層에 일어나는 反應이라면
內向的인 분노는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학력이 높은 층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反應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幸福하지 않고 苦痛스럽다는 것입니다.

밖을 제어하는 것까지가 지성과 지식의 限界 입니다.

내 內面의 뿌리를 끊을 수 있는 힘은 오직 智慧로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경전의 내용을 보자면 빠짠차(思念의 擴散)에는 세 種類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세 종류의 煩惱가 있을 때 빠빤차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집니다.

그것은 渴望, 我慢, 見解입니다.

갈망은 무엇인가를 원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 내가 배가 고프다. 명상을 하는데 자꾸 밥만 생각난다.
아무리 주시를 해도 사라졌다가는 다시 또 나타난다.

妄想의 原因은 갈망입니다.

나는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는데 직장 상사나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오늘 직장 상사와 있었던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아무리 망상, 망상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아만입니다.

나는 이러한 사람이고 내 생각은 이러한데 이런 경우는 이래야한다.
그런데 회사나 사회,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않다.
어떤 상황에 대해 자꾸 생각이 이어집니다. 자신도 때때로 알고 자각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그 생각에 말려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견해입니다.

生覺이 이 세가지에 묶여 있다면

아무리 ‘망상, 망상’하고 생각을 지켜보아도 그것만으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그 생각의 뿌리를 보십시오. 갈망인지, 아만인지, 견해인지.

그리고 그 생각의 뿌리를 自覺하십시오.

아,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밥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나는 지금 내 주장을 하고 있구나.
나는 세상을 바꾸려 하고 있구나.
이런 自覺만으로 자신이 그 생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명상이 주는 자유입니다

知識과 智慧는 큰 差異가 있습니다.
지식은 자신 이외의 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지혜는 자신을 해결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나의 괴로움입니다. 그것 하나만 보십시오. 그 괴로움의 原因을 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놓으세요. 무슨 높은 철학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괴로움은 준 대상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나의 마음입니다.

중생는 항상 괴로움을 준 대상을 고통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대상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이 계셨던 그 당시에조차도 부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데와닷타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붓다인데 내 말을 안듣고 저렇게 행동하다니, 저것은 진정 옳지 않다..’
이러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보호하고 지키고 행복하게 하는 일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또는 사회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 하나, 하나가 바뀌면 사회가 바뀝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일어나면 지혜로서 그 생각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나의 에고(나라고 여기는 마음)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내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에(그 사람이나 그 상황이 아니고). 에고의 포기가 곧 자유입니다.
나를 묶고 있는 모든 것을 놓아주세요. 그 곳이 자유와 평화가 일어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바로 그 자리에 자비가 일어납니다.

내면의 갈등이 사라진 다음에는 상대에게 어떻게 하든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그 때는 그저 인연따라, 상황따라 반응하게 됩니다.

(내면에 미움없이) 굳이 잘 해줄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하면 됩니다.



아눌라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