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진리는 없다, 모든 것이 진리다

장백산-1 2014. 3. 11. 14:46

 

 

 

 

 

 

 

 

 

진리는 없다, 모든 것이 진리다 - - - 법상스님
 법상 |2013.08.29. 18:53 http://cafe.daum.net/truenature/7qUb/275 

 

 

 

 

 

 

지금 이 瞬間現在'예스' 라고 말하라.
지금 여기 이 瞬間에서의 現實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 모든 것이 '옳다' 그리고 '아름답다'

 

당신이 과거에 해 온 수많은 잘못들에 대해서 스스로
지금 이 자리에서 '괜찮다'고 말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삶의  瞬間 自體崇高하고 驚異롭고 아름답다.

 

당신은 결코 '잘못'을 하거나, '죄'를 지을 수 없다.
스스로 그렇다고 여기기 까지는.

 

宇宙法界는, 眞理붓다
그 누구도 審判하거나 주지 않는다.
심판하고 벌 주는 唯一存在 '나' 스스로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어떤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함에도 불구하고,남들을 괴롭혔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술을 퍼 마심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매일같이 싸움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이고 나 밖에 모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眞正 당신은 아름답고 경이롭고 온전하다.

 

지금 이 瞬間의 모든 것은 그것 自體로써 穩全'眞理'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당신으로써 살아가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당신의 삶은 온전한 진리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 무엇을 해야 할 필요도 없이,

계율을 지키지 않더라도, 절이나 교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신이나 붓다를 섬기지 않더라도, 종교가 없거나, 직업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그 어떤 이유도 없이, 그저 存在하고 있다는 事實 하나 만으로도

진정 당신은 충분히 아름다우며,  瞬間 眞理로써 피어나고 있다.

 

우리의 삶에 失敗란 없다.

실패처럼 여겨지는 삶의 공부가 있을 지언정, 실패는 없다.

 

社會 속에서, 宗敎 속에서, 속에서, 수없이 말해 왔던,

'이렇게 살아라'  '이것을 하면 안 된다'

'이렇게 살아야지만 착한 사람이다'

'이 계율이나 율법을 어기지 말라'

'이것을 어기면 지옥에 간다'

'이런 行爲神은 싫어한다'라고 말해왔던

그 모든 것들에서 自由롭게 解放되어 놓여나라.

 

그와 같이 나를 制限하고 抑壓하며, 두렵게 만들어 왔던,

모든 로부터 自由로와 지라.

그것이 바로 붓다의 가르침이다. 다르마/眞理의 屬性이다.

 

眞理라는 이름으로, 宗敎라는 이름으로,

어떤 특정한 가르침이나, 律法으로

無限自由制限시켜 놓고,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地獄에 간다거나,

最惡果報를 받는다고 이야기 해왔던

그 모든 도그마를 이제는 놓아버릴 때가 되었다.

 

그러한 方便에 갇혀서 自由抑壓당하며 살아 온

지난 날들을 곰곰히 생각해 보라.

 

方便의 가르침自由롭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歷史를 이어오며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 方便에 스스로 갇힌 채

方便 뒤에 드넓고도 광활한 자유로운 眞理가 있음을 보지 못한다.

 

당신이라는 存在 그 自體야말로 이며 진리自體다.

다른 그 누구에게도,

다른 그 어떤 思想이나 哲學에도

기대거나 구속당하거나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다.

 

그것들을 배울 수는 있을 지언정,

그것들에 속박되어 自身自由를 가두지 말라.

 

自由를 가르치는 學敎/世上에서 自由를 가르치기 위해

학생들을 統制하고 自由롭지 못하게 制限하고 拘束하는

各種法則을 만들어 놓고, 안에서만 수업을 하며,

그러한 수업 속에서 自由에 대해 가르친다고 생각해 보라.

 

이 학교에서만이 올바른 자유를 가르쳐 줄 수 있으며,

이 학교에서만이 진정한 자유를 배울 수 있다고 억압하면서,

만약 이 학교를 벗어나게 된다면,

당신은 자유를 박탈당하게 될거라고 두려움을 조장한다.

 

이제 그런 學敎/삶/세상에서 自由롭게 과감하게 뛰쳐나와야 할 때다.

學敎 밖에 眞正한 自由가 있다.

 

아니, 학교에서 배울 필요도 없이,

이미 라는 存在 自體,

내가 살고 있는 이 宇宙法界라는 存在 自體가

이미 穩全한 眞理現顯(현현)이었다.

 

당신은 그 학교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할지라도,

그 학교가 가르쳐 준 抑壓되고 制限도그마에 갇힐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眞理라고 믿게 될 수밖에 없다.

 

왜 그럴까?

事實眞理가 없기 때문이다.

固定眞理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眞理 그 自體眞理는 없다.

다만 나의 眞理가 있을 뿐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이 세상 모든 것은 自己 規定이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規定하는 나의 眞理가 있을 뿐,

나의 眞理 그것 自體로써 穩全客觀的 眞理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眞理다'라고 할 만 한 것이

없다는 事實이야말로, 佛法核心 가르침이다.

 

내가 眞理라고 規定하는 나의 眞理가 있을 따름이다.方便의 眞理가 있을 따름이다.

 

그동안 世上에서 이야기 해 온 眞理라는 모든 말들은, 眞理가 아니었다!

 

붓다 입멸 후 500여 년 경 나가르주나(용수)라는 제2의 석가라는 보살은,

그러한 事實勝義諦, 第一義諦라고 이름함으로써,

말로 表現되지 못하는 眞理라고 설했다.

 

우리가 眞理라고 말하며,절에서 가르칠 수 있는 眞理

그저 世俗諦,즉, 方便眞理밖에 없음을 역설하였다.

 

'낙서금지'라고 벽에 씀으로써 낙서를 금지할 수 있는 方便은 될 수 있지만,

낙서금지라는 그 말 자체가 이미 낙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낙서금지라는 말을 方便으로 받아들일지언정,

그 말을 따라 너도 나도 벽에다 '낙서금지'라고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歷史가 해 온 일,

宗敎思想家가 해 온 일, 眞理라고 들어온 모든 가르침이

'낙서금지'라는 말위의 덧칠에 불과했다.

 

이제 낙서금지라는 그 말을 분석하고, 따라 쓸 것을 생각하지 말고,

그저 그 텅~ 빈 벽에 어떤 낙서도 하지 말라.

 

그저 텅~ 빈 채로 있으라.

그저  瞬間存在하고 있을 뿐,

어떤 方便의 글씨도 쓰려고 하지 말라.

 

宇宙法界는 그저 每 瞬間 이렇게 그냥 存在하고 있는 그것이다.

 

붓다는 그저 每 瞬間 온전히 存在한다.

은  그저 每 瞬間 온전히 存在하고 있음이다.

 

宇宙法界眞理붓다는 아무런 判斷도 없고,

그 어떤 眞理라는 生覺도 없으며, 그저 그냥 存在自體다.

'낙서금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면, 그저 텅~ 빈 바탕 本質만이 남게 될 것이다.

 

'떠들지 마!'라고 소리치지만,사실은 그 말 자체도 소음에 불과하다.

이제 그런 말도 따라하지 말고, 그저 沈默으로 存在하라.

떠들지 않게 하기 위한 그 어떤 말도 사실은 다 소음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기에 그 어떤 말도 眞理自體일 수는 없다.

소음일 뿐, 眞理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眞理는 없다.

眞理가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이 眞理라는 것을 의미한다.

眞理는 없지만, 그렇기에 당신이라는 삶은 그 自體로 眞理인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어떤 行爲를 하든, 당신의 은 하나의 崇高眞理이다.

그렇기에 眞理는 없으며,自己 規定, 自己 眞理가 있을 따름이다.

 

모든 人間 自體로 옳다.

自己 眞理에서는 언제나 옳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眞理다.

 

붓다는, 은, 眞理는,宇宙法界

우리에게 完全한 自由意志를 賦與해 주었다.

붓다 神 眞理 宇宙法界는 나를 眞理드러낸다.

은 꽃 한 송이를 眞理피어난다.

 

산과 들, 꽃 한 송이, 당신과 나를 빼고,

별도의 이나 붓다가 있다고 生覺지 말라.

아무리 水準이 낮거나,이 없거나, 階級이 낮거나,

能力이 없거나,性格이 나쁘거나, 를 지었을지라도

그러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라.

 

그는 그 어떤 높은 자리에 있는 그 어떤 고귀한 자리에 있는 성스러운 사람과

티끌 만큼도 다르지 않다.그는 그 自身眞理를 꽃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높다거나 낮다거나,잘났거나 못났다거나,선하거나 악하다는 등의 分別

無明에 휩싸인 人間行하는 差別心일 뿐, 眞理는 그런 分別을 모른다.

 

오직 眞理는, 붓다는, 은,宇宙法界

一切 모든 存在를 完全同等하게 사랑하며, 尊貴하게 여기며, 찬탄할 뿐이다.

 

내가 남들보다 잘난 부분에 대해 認定받기를 하고 있다면

당신은 工夫를 통해 마음에 苦痛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은 없다는 事實結局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나보다 높지 않고, 낮지도 않으며, 나보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의 사랑을 더 많이 받거나 적게 받지도 않으며, 더 많이 깨달았거나 덜 깨달은 것도 아니다.

 

모든 存在저마다 온전한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自己 自身의 眞理의 길을 아름답게 걷고 있는 중이다.

우리 모두는 神이고,붓다이고,우주법계이고,眞理 그 自體로써 同等하다.

 

설사 나쁜 짓을 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은 그 行爲을 배워나가고 있다.

加害者被害者 모두 아름답다.

가해자는 가해자의 삶의 몫을 통해 깨닫고,

피해자는 피해자의 삶의 몫을 통해 깨닫는다.

그 둘의 관계는 원한과 복수의 관계가 아닌

서로를 깨닫게 해 주는 아름다운 스승이요, 사랑스런 관계다.

 

마음 깊은 곳에서 被害 받음을 통해, 핍박 받음을 통해

무언인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었던 사람이,

혹은 被害 받는 것을 스스로 했던 사람이

世上이라는 演劇 속에서 被害者役割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

가해자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피해자 가해자 양쪽 모두는

저마다 각자 自身의 眞理를 하고 있을 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完全容恕받고 있다.

물론 自己 스스로 容恕하지 못하는 경우를 빼고.

 

處罰이나, 罪의 果報는 언제나 나 自身했을 때만 온다.

 

만약 내 안에서 온전히 그 모든 것을 容恕했고,

그 모든 것이 다 完全했음을 理解하게 된다면,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自己 自身을 사랑하고,

理解하고, 容恕하게 된다면 당신은 果報를 받을 必要가 없다.

業報果報機械的으로 無條件的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絶對的인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根源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存在다.

그저 存在하고 있는!

그러니, 더 以上 自己 自身을 抑壓하고 制限하지 말라.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지도 말라.

 

당신은 完全히 安心해도 좋다.

世上삶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다.

죽음 以後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宇宙의 根源은 자비와 사랑의 波動波長, 그 波長 안에 넘실거릴 뿐이다.

宇宙의 根源 거기 그 본래 텅~빈 바탕 공간 자리에는

악, 두려움, 근심, 걱정, 죄 그 어떤 槪念/觀念도 붙을 자리가 없다.

 

지금까지, 이 世上에서, 歷史에서, 宗敎에서, 수도 없이 많은 各種學敎에서

가르쳐 온  모든 것을 넘어서서 自由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넘어서서 眞正自己 自身에게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모든 존재根源으로 歸依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穩全한 存在함,

그저 '있음(being)'으로 每 瞬間에 現存는 것이다.

오로지  瞬間에 幸福하게 存在하고 있으라.

完全히 安心한 채,두려워할 것 없이,

每 瞬間 自己 自身으로 存在하기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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