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창] 명상클럽 활동 / 박어진 | |
명상? 그윽하게 눈감고 앉아 정신집중 하는 건 덜렁대기 잘하는 내가 제일 못하는 것 중 하나다. 근데 재작년 가을 친구 따라나선 길에 나는 단박에 꽂혔다.
알고 보니 명상은 눈감고 앉아 있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것이었다. 자아라는 갑옷을 50년 넘게 입고 있는 내 안에 내가 몰랐던 ‘진정한 나’가 있음을 아는 일, 바로 내 안에 천사 있음을 아는 것이었다.
나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 안에 깃들인 천사를 바라보는 훈련을 겸해서 말이다. 살아있는 動植物들뿐 아니라 微生物과 無生物까지를 尊重하고 祝福하기, 그것이 冥想이었다.
우리들의 명상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낳은 갓난아기를 바라보듯” 세상의 모든 존재를 바라보라고. 엄마는 갓난아기와 한 몸이다. 거기에는 나와 對相 간의 境界가 없다. 오직 경이로움과 벅찬 感動으로 엄마는 아기를 본다. 아기가 아파 울면 엄마는 같이 운다. 그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으로 아파한다. 엄마는 또 자신보다 아기가 더 찬란하게 빛나기를 바라며 축복한다.
결국 명상이란 엄마의 눈으로 애틋하게 地上의 모든 生命體와 無生物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생물학적 혈연의 경계를 넘어서 말이다. 나는 깨달았다. 예수와 부처, 그분들이 엄마의 눈으로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存在와 事物을 바라보셨다는 것을. 그 눈은 보이는 모든 것들 안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可能性을 볼 수 있는 눈이며, 그 모든 것들 안에 있는 부처와 그리스도의 씨앗을 싹틔우고 꽃피게 하는 따뜻한 시선이다.
명상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바빠졌다. 동네 나무와 꽃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바빠졌다. 출근길에는 겨우내 추위를 씩씩하게 견뎌낸 산수유나무와 단풍나무, 목련나무를 칭찬하며 아침인사를 한다. 고양이와 까치를 만나면 실실 웃는다. 부엌 냉장고와 책상과 밥그릇에게 감사하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게 아침저녁으로 고맙다고 소리내어 말한다.
生命 없는 事物들도 意識을 지니고 있으며 사람의 生覺과 마음의 波動에 感應하고 共鳴한다고 믿는다.
이제 혼자서도 전혀 심심하지 않다. 내게 툴툴대는 인간들도 그다지 밉지 않다. 지구는 우리 모두의 큰 학교, 성장의 무대다. 얄미울 정도로 몰염치한 행동을 일삼는 이들,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이들을 제각기 다른 성장 단계를 거치고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 아닐까?
그들 안에 잠들어 있는 부처와 그리스도에게 모닝콜을 해주는 게 지금 여기 내가 할 일이다. 내 안의 부처와 네 안의 그리스도를 올바로 볼 수 있다면 어느 宗敎의 옷을 입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불자이며 동시에 크리스천일 테니.
얼마 전 한동안 텔레비전 화면 한 귀퉁이에 자동응답시스템(ARS) 전화번호가 보일 때마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꾹꾹 번호를 눌러댔다. 적은 돈이지만 어떻게든 아이티 사람들에게 가서 닿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구 어느 곳에서, 이 도시의 어느 곳에서 누군가 전쟁으로, 폭력으로, 굶주림으로 울고 있다면 나와 우리는 절대로 괜찮지 않다.
인류는 결국 하나의 대가족이 아닌가?
완전한 정의, 완전한 평화, 완전한 행복은 도달 불가능한 목표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낙관한다. 싸우지 않고 즐겁게, 비장하지 않게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 나 아닌 다른 이들을 보는 따뜻한 시선, 약해 보이지만 그 천진난만한 에너지가 우주를 가득 채울 것 같다.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고 축복을 보내는 엄마의 마음이 갖는 힘이 그렇듯이. 그래, 잊지 말자. 우리 안에 천사 있다.
박어진 서울셀렉션 기획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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