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륜스님 즉문즉설 -
▒ 문
저는 부산에서 대학교를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지방대를
다닌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것도 싫고..
그런 학벌 컴플렉스를 극복하고 自信感을 가질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답
이 컵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듯이
우리들 存在는 優等한 것도
아니고 劣等한 것도 아니고
다만 그것일 뿐입니다..
전국에서 전교 1등하는 애들만 모아놓고 반을 편성하면, 그 중에 꼴찌가
나오고
전국에서 꼴찌하는 애들만 모아놓고 반을 편성하면, 그 중에 1등이 나오고..
그러니까 相對的 評價라는 것은 이 컵과
똑같습니다.
그냥 그 因緣에 따라서 크다고 불리기도 하고, 작다고 불리기도 한다.
전국에 꼴찌들만 모아놓은 반에서 1등했다고 자랑스러울
일도 없고
전국에 1등들만 모아놓은 반에서 꼴찌했다고 열등하다 할 일도 없다.
各各의 存在는,
存在 그대로 完成된 完全한 겁니다.
그러니까 本人이 劣等한 存在가 아니라,
本人 意識에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또 本人이 優等한 存在가 아니라, 본인 의식에 '優等意識'을 가지고 있는 겁니니다.
이건 幻想입니다. 이런 幻想에 휩싸여 살기 때문에 人生이 피곤한
겁니다.
그래서 교만해지기도 하고, 비굴해지기도 하고..
부처님께서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아,
너희들은 교만해서는 안 된다. 겸손해라.'
자기가 우월하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어요..
'너희들은 비굴해서는 안 된다.
당당해라.'
교만과 당당이 비슷하고, 겸손과 비굴이 비슷한 게 아니라
교만과 비굴이 같이 가는 거예요.
卽, 劣等意識과 優越意識은 함께 움직이는 짝입니다.
뭔가 우리가 執着하는 게 있기 때문에 이런
問題 意識이 생기는 겁니다.
내가 만약 돈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긴다 하면,
나보다 돈 많은 사람 만나면 비굴해지고
나보다 돈 없는 사람
만나면 교만해집니다.
그러나 내가 돈에 대해서 價値를 안 두면
나보다 돈 많은 사람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고
나보다 돈 없는 사람
앞에서도 교만해지지 않게 됩니다.
자기는 지금 대학을 다니면서도 劣等意識이 있는데
스님은 고등학교 1학년 다니다가 그만뒀는데도
열등의식이 없어요.
그러니까 자기도 대학을 안 갔으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그러면 지방대니 어쩌니 하는 열등의식이 없을 텐데..
ㅎㅎ
그러니까 이건 '意識'이지 '存在'에는 아무 變化가 없습니다.
이게 첫 번째이고.
이렇게
根本을 꿰뚫어 버리면 벗어날 수 있는데
학생이 지금 그 根本을 꿰뚫기는 좀 어려울 것이고..
두 번째, 지금 우리 사회는 아직 학벌과 스펙이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20년, 30년 후에..미래의 사회에서도 이렇게 스펙이나 학벌이
중요하게 작용할까?
그때도 남아있는 건 남아있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적을 겁니다.
그럼 未來社會는 무엇을
重要視할까? 實力입니다.
가면 갈수록..
예를 들면, 베트남 노동자들이 한국에 이민을 왔을
때
그 중에는 사이공대 출신도 오고, 하노이대 출신도 오고, 어디 지방대 출신도 오고..그런데
그 사람들이 건축 공사장에서 노동을
할 때 그 사람이 어느 대학 나왔는지 중요시 여깁니까?
實力을 중요시하지 어느 대학 출신이냐를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넓은 세상에 나가면 내가 서울대 나왔냐 지방대 나왔냐..
이거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니가 능력이 어떠냐?' 이게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실력이 없으면 실력을 쌓아야지 실력 없음을 자꾸 지방대 나왔음으로 핑계를 대고
지방대라는 이름 뒤에 숨는 건 비겁한
일입니다. 실력으로 대응을 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 우리 사회는 실력보다 학벌을 중시하는 건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점점 더 실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해갈 겁니다.
나는 북한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북한문제 전문가들을 가르치고 있고,
상담심리를
전공한 것도 아닌데 상담심리 교수들 모아놓고
그들이 못 푸는 문제 해결해 주잖아요?
그리고 내가 과학을 좋아했는데, 그러다가
意圖하지 않게 승려가 됐는데
그렇다고 해서 과학을 포기하고 종교인이 된 게 아니라
科學的 眼目을 가지고 宗敎를 보았기 때문에 宗敎에
있는 90%의 허황된
얘기를 걷어내 버리고 거기에서 眞實한 면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여러분과
대화를 할 수 있잖습니까?
어떤 宗派를 떠나서, 불교와 다른 종교를 넘어서 종교와 과학도 넘어서
우리가 이렇게 自由로운 對話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이건 어디 가서 배운 것도 아니고,
대학 가서 배운 것도 아니고..
스스로 探究한 겁니다.
洞察力이라는 智慧는 자기가 자발적으로 '이게 뭐지?' 하고 疑心을 낼 때 가능합니다.
남이 주는 지식만 쌓아가지고 지혜는
안 생깁니다.
통찰력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 '이게 왜 이렇지? 왜 이래?' 하고 자발적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굉장히 硏究를 해야
합니다.
연구를 한다는 것은 창조성이 있다는 것이고,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굉장히 몰두를 해야
합니다. 집중을 해야 해요.
마치 볼록렌즈가 햇빛을 모으면 불을 피우듯이..그렇게 집중을
하면 어느 순간에,
전체의 전모를 파악하는..한 눈에 확 알아버리는 그런 洞察力이 생깁니다.
이걸 智慧라고
합니다.
화두에도 사구(死句)가 있고 활구(活句)가 있어요.
사구는, 아무리 탐구해도 깨치지 못하는 게 사구이고
活句는,
그것을 探究하면 깨닫는다..
마치 죽은 씨앗은 심어도 싹이 안 트고 살아있는 씨앗만 싹이 트는 것과 같다..
남의 문제을 갖고 탐구하는 건
죽은 씨앗, 死句이고
자기 문제를 갖고 탐구하는 게 살아있는 씨앗, 活句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서울에 올라와서 무슨 스펙이니 학벌이니
이런 거 논하지 말고
정말 뭘 하려고 한다면, 그것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있어야 하고
탐구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자기 실력이
쌓아져야 자기가 한 분야에 일가견이 생긴다..
노가다를 하면 노가다에 일가견이 생기고, 음식을 만들면 요리에 일가견이 생기고,
농사를
하면 농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 즉 專門家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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