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마음이 머무는 순간 진리를 등진다

장백산-1 2014. 8. 2. 17:14

 

 

 

마음이 머무는 瞬間 眞理를 등진다 / 본각스님


 부처님의 제자들은 언제나 깨어 있고
밤이나 낮이나 冥想으로 그 마음이 즐겁다 

                            『법구경』



위의 게송에서 冥想이라고 하는 것은, 곧 마음 닦는 수행을 의미한다.
부처님의 참다운 제자들은 명상으로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음으로써

마음속에 항상 충만한 즐거움을 누리며 생활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불교만큼 自己 自身의 명상, 마음 수행, 마음의 힘을 강조하는 종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종교들이 無條件 絶對者를 信奉하고 全知全能의 奇蹟을 강조하는 것은

불교적으로 보면 우상숭배이고 미신에 가까운 맹목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으로 세상의 이익에 편승하고
으로 남에게 지옥에 간다는 험담을 일삼으며
생각마음으로 불확실한 대상에 사로잡혀서
非理性的인 盲信에 젖어서 산다면
이는 분명 세상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일생을 통하여 언제나 강조하신 것은,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自身이 하고 있는 行爲를
면밀히 觀察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미신이나 맹신이 아니라, 깨어 있는 分明한 精神으로

觀察者 意識이 되어 
자신의 몸이 하는 일을 살피고,
입이 하는 말을 다시 듣고,
생각마음이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리라

말씀한 것이다.
잔잔히 흐르고 있는 강둑에 올라앉아서 강이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듯이
자신의 마음이 흐르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깊이 살펴보라고 늘 우리를 깨우쳐주시는 것이다.

 
마음이 혼탁하고 악행을 일삼으면
흐린 물을 맑히려고 애를 쓰듯이
혼탁한 원인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맑은 물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발견했다면
강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강 주위를 잘 보호해야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악에 물들어 있음을 알아차린다면
곧 바로 악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해주기를 막연히 기다릴 필요가 없다.
마음이 비옥한 대지처럼 공덕의 종자를 품고 있음을 알아차렸다면

곧바로 북을 돋구고 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갈 일이다.

이 두 가지를 결단하고 바로 실천해 나아간다면
세상의 공기는 맑고 무척 살기 편한 나날이 이어질 것이다.
신의 나라에 전쟁이 난무하고 부처님의 고향에 차별이 만연한 것은

 인간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데서 비롯하고 있다.
이에 깨어 있어야 하고 명상으로 스스로를 가다듬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금강경』에
‘응당히 머무는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應無所住而生其心)’는 경문이 있다.

마음이 머물러 있음은 곧 하나의 事物에 마음이 정체(停滯)되어 있음이며,
이 머무는 마음은 온 宇宙에 시시각각으로 살아 움직이는 眞理의 참 모습을 등지는 것이 된다.
어느 한 瞬間, 어느 한 곳에, 그 어떠한 個體에도 制限되거나 執着하는 바 없이

이 마음을 두루 운용(運用)할 수 있을 때,
宇宙의 感覺으로 每 瞬間을 살아가는 것이 된다.
이러한 마음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때 ‘지혜의 완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새벽 샛별을 본 그 순간부터

온 宇宙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한 眞理에 合一되어

일생을 사신 분이다. 그리고 그 理致를
宇宙生命의 연기법(緣起法)이라고 깨달으셨던 것이다.

이 宇宙生命의 緣起의 理致를 깨닫고
우리 日常의 삶 속에 演出해 내는 것이, 곧 지혜자가 그 마음을 내는 每 瞬間이 된다.

계곡의 물이 강을 따라서 바다에 이르고  태어난 삶이 흘러서 죽음에 이르듯,
宇宙生命은 잠시도 머물지 않으면서 變化無常하게 眞理를 演出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치를 알아차리고 다시는 어리석거나 놓치지 않는 삶을

지혜자의 삶이라고 찬탄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어느 하나에 固定될 때 全切를 보지 못하고 어리석게 되는 것이다.
이루어 진 것은 무너져 가고, 태어난 자는 사멸(死滅)해 간다.
어느 하나를 붙잡고 執着을 키워서는 안 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봄의 꽃은 가을의 결실을 예견하게 하며,
강물은 바다에 이르고 다시 氣流를 타고 하늘에 오른다.
瞬間은 永遠에 이어지고
만겁(萬劫)은 한 찰나(刹那)도 놓치지 않고서
비로소 永遠을 이루어 간다는 理致이다.

석가모니는 순간에 반짝이는 새벽 샛별을 보고서 永遠의 이어짐을 깨달았던 것이다.
永遠의 이어짐 속에는 宇宙萬物의 生成과 消滅이 함께 소용돌이 치고 있음도 분명히 보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感覺을 한 瞬間도 놓치지 않고서 일생을 살아간 분이

곧 眞理로부터 오신 분(如來)이며, 眞理에 잘 合一되어 가신 분(善逝)이시다.
오늘날 佛敎의 生命은 이 眞理를 우리 모두가 日常生活 속에서 깨닫고,

그리고 단절됨이 없이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다.

生死, 去來, 陰陽, 善惡, 時空, 貧富, 自他 등등의 二元性의 모든 相對 槪念 속에서
석가모니가 깨달은 絶對平等의 價値를 發見해 내는 것이
불교에서 강조하는 중도(中道)의 삶이며 平和로 나아가는 첫 關門이 된다.

부처님의 참다운 제자들은 언제나 깨어 있고,

모든 대립을 통하여 絶對平等을 直觀하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다.
이는 곧 冥想을 즐기는 삶이며,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不可思議한 宇宙의 힘과 合一되는 境地이다.
이러한 眞理에 눈뜰 때, 모든 生命은 同一한 가치(天地同根)로 다가오고,

함께 어우러지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이는 宇宙의 眞理를 直觀하는 冥想의 힘임과 同時에
마음수행의 神秘로운 結果인 것이다.


                   

                                                   
                                                           曲 : 명상곡 / 고향에 내리는 눈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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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해솔|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