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장애 없으면 대보살의 길이 저절로 열린다
우리는 宇宙萬物은 이미 眞理의 世界에 살고 있다. 우리는 宇宙萬物은 空하므로 모든 것이 이미 完璧한 길이다. 이것을 知的으로 혹은 學文的으로 理解하려 하면 안 된다.
修行을 通한 어떤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實際로 宇宙萬物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絶對이고 境界가 없으며, 나의 모든 行動이 瞬間瞬間 宇宙萬物을 向한 큰 사랑과 慈悲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事實, ‘나’라는 것은 本來부터 없었으므로 다른 衆生 宇宙萬物을 위한다는 말조차 어긋난 말이다. ‘나’와 ‘남’의 境界가 本來부터 없었으니 말이다.
本來부터 境界가 없는 그 空의 길에는 生覺도 苦痛도 없다. 그 길에서 우리를 防害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렇게 되면 매瞬間 瞬間의 할 일이 明確해진다. 순간 순간의 모든 行動은 眞理이며 완벽하게 다른 중생 우주만물의 고통과 닿아 있다.
“어떻게 내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그를 도와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우주만물을 도와줄 수 있을까! 이것이 眞正한 人間의 길이며 完璧한 길이며 眞理의 길이다.
이런 慈悲心 어린 行動은 어떤 觀念이나 特別한 行動이 아니다. 本來 그 自體이며, 이것이 菩薩의 길이다. ‘나’라는 것은 本來 없기 때문에 宇宙萬物과 나는 둘이 아니다.
그들의 苦痛은 나의 苦痛이며 그들의 幸福이 나의 幸福이다. 나는 단지 모든 사람들과 우주만물을 위해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대자대비심’, 위대한 사랑과 자비를 가진 마음, 즉, 絶對의 길이다.
이제 大乘佛敎의 가르침을 整理해 보자.먼저 우리는 宇宙萬物 모든 것이 平等하게 똑같이 宇宙의 本體이며 基本的으로 空하다는 事實을 깨달아야 한다.
그 다음 이 宇宙萬物의 수많은 이름과 모양이 空하므로 ‘나’라는 것이 本來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이 사실이 바로 中道이며 眞理의 길, 바른 길이다.
여기서부터는 어떤 法則, 어떤 이름, 어떤 모양이든지 모두 眞理여서 더 이상 우리를 防害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런 무애(無碍)의 마음을 얻으면 우리의 모든 行動은 있는 그대로 眞理이며 부처의 行動이다.
瞬間 瞬間의 行動이 모든 存在와 事物과 함께 나누는 宇宙的 本質 根源에 닿아 있다. 더 이상 ‘너’와 分離된 ‘나’는 없다. 이미 우리의 行動은 大慈大悲이다.
어느 날 제자 한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대승불교의 주요 가르침 중 모든 것이 空하다는 것과 모든 것이 그대로 眞理라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어떻게 모든 것이 空한데 그게 眞理란 말입니까?”
아주 좋은 質問이다. 答은 쉽다. 집에 가서 거울을 한번 봐라. 거울 속엔 아무 것도 없다. 완벽하게 空하다. 거울 앞에 붉은 종이를 갖다대면 붉은 종이가 나타나고, 하얀 종이를 갖다대면 하얀 종이가 나타난다. 山을 갖다대면 山이 나타난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비출 뿐이다. 붉은 종이를 치우면 거울에는 더 이상 붉은 종이가 없다. 거울은 오로지 그것을 비출 때만 상(像)이 나타난다. 맑은 거울은 언제나 完璧히 空해서 어떤 것에도 執着하지 않는다. 어떤 것도 아무런 障碍 없이 비춘다.
모든 것은 이 空한 宇宙라는 거울 앞에서 있는 그대로 왔다갔다하며 비춘다. 우주거울은 아무 것도 덧붙이지도, 빼지도 않는다.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도 空하고, 거울에 비친 像 역시 ‘공(空)’하므로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眞理이다.
그러나 우리 人間의 마음은 이렇지 못하다. 마음의 거울에 붉은 것을 갖다대면 우리 마음의 거울 역시 붉은 것을 비출지도 모른다. 하지만 붉은 것을 치운 뒤 하얀 것을 갖다대면 우리 마음의 거울은 여전히 ‘붉은 것’을 ‘生覺’하고 있다.
‘붉은 것보다는 하얀 것이 낫지 않을까?’ 혹은 ‘다음에 다시 붉은 것이 나타날까?’ 혹은 ‘지금 앞에 있는 하얀 것은 좋지 않아. 붉은 것이 더 좋아. 아니야, 하얀 것이 더 좋아… 아, 잘 모르겠다’하고 우리 마음의 거울은 ‘生覺’한다.
하얀 것이 앞에 있지만 우리 마음의 거울은 언제나 그것을 ‘제대로’ 혹은 ‘있는 그대로’ 비추지 않는다. 다른 것에 執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의 거울은 이처럼 언제나 世上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 않는다. 마음의 거울은 아주 强한 欲心이나 執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순간순간 다른 사람을 위해 자비롭게 행동하는 대신 이 世上을 둘로 나눠서 좋고 나쁨에 執着한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마음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우리는 宇宙萬物은 있는 그대로 모두 부처이다. 모든 것이 空해서 結局 모든 것이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으면 우리가 사는 삶은 모두 중생을 위해서 사는 삶이며, 그것이 바로 부처의 삶이다. 이런 상태에서 慈悲心은 저절로 나온다.
大菩薩의 삶이란 特別한 무엇이 아니다. 우리는 宇宙萬物은 있는 그대로 모두 부처다. 宇宙萬物이 ‘공(空)’하여 結局 우리 宇宙萬物 모두가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으면 우리 삶은 모두 중생을 위한 삶이다. 그것이 바로 부처의 삶, 대보살의 삶이다. 자비심은 저절로 나온다. ‘나’가 있으면 欲心이 나오고 모든 것과 내가 分離된다. 그러나 ‘나’가 사라지면 宇宙萬物과 分離는 일어나지 않는다.
參禪受行을 通해 이런 眞理를 깨달으면 우리 마음에는 아무런 障碍도 없다. 마음에 障碍가 없으면 慈悲로운 大菩薩의 行動은 저절로 나타난다. 般若心經에 나오듯 ‘얻을 바도 없으며, 얻을 것도 없다.’ 瞬間 瞬間 宇宙萬物인 衆生을 돕는 일만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