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법계관(一心法界觀) 영원한 나를 찾아서
코스믹 붓다
일심법계관(一心法界觀)
이 一心法界觀法은 한 번 生覺하거나, 意識하거나, 마음 쓰거나 잠시 듣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無限히 넓은 我量과 理解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生覺/마음/意識을 텅~빈 虛空같이 만들고 드넓은 바다같이 키울 수 있는 뛰어난 功德을 지닌 놀라운 觀法이다.
어떤 生覺/마음/意識을 하던 어떤 觀念을 가졌던 착하던 악하던 바르던 그르던 지혜롭던 어리석던 이 世上을 시비 분별 따질 것 없이, 生覺 마음 意識을 굴리는 대로 現實로 造成되는 게 그 本質인데, 自己 內面에서 무엇을 못 부수고 무엇을 創造하지 못하겠는가?
이렇게 生覺하면 비록 싸우고 다툴 일이 자주 생겨도 實相 내 안의 生覺/마음/意識은 별로 苦痛스럽거나 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無形의 生覺/마음/意識은 스스로 바라보는 方向과 基準에 따라 얼마든지 삶/현실/세상의 그 궤도를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生覺/마음/意識의 性稟에는 習性도 있고, 業도 숨어있고, 바탕 根機도 있고, 環境에서 오는 無言의 制約的인 틀도 숨어있어, 맑은 붓다의 性稟과는 달리 모든 衆生의 生覺/마음/意識의 性稟은 限界的으로 그 生覺/마음/意識의 性稟대로 作用한다.
허나 生覺/마음/意識 속에 숨은 텅~빈 空間 根源 바탕만은 전혀 固定된 게 아님으로 어느 方向으로나 제멋대로 噴出될 수 있다. 卽, 生覺/마음/意識은 품기 나름이고,일으키기 나름이며, 다스리기 나름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生覺/마음/意識이 갖고 있는 本來의 힘이며, 制約없는 無限 能力의 本性이다. 또 어떤 思念體도 念想體도 다 生覺/마음/意識이라는 한 틀 속에서 뿜어내지는 結果物이다.
위와같은 見解를 一心法界觀法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알면 어떤 生覺/마음/意識도 分別없이 세상/삶을 바라보는 힘이 생긴다.
어떤 修練法도 마음의 눈을 키움에는 이런 一心法界觀法의 姿勢를 따라잡지 못한다. 自己 나름대로 수십 년 마음을 닦아온 修行者들도 하찮은 일로 쉽게 對立하고 흥분하는 것을 보면 이 一心法界觀法의 所重함을 바로 알게 된다.
그래서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 데는 觀心法 중에 第一 큰 觀法이 바로 一心法界觀法이다. 참 마음/참 나를 깨친 거룩하신 붓다들이 바로 이 같은 一心法界觀法으로 修行해서 모든 分別心을 執着心을 버리고, 生覺/마음/意識의 칸막이를 즐기는 衆生心을 가볍게 調伏하고 계신다. 이 一心法界觀法은 生覺/마음/意識이라는 내 안의 사나운 分別心 執着心을 간단하게 허물어버린다.
因果가 무섭다지만 生覺/마음/意識은 限量없는 自由性을 가진 공(空) 卽, 生覺/마음/意識은 大自由! 生覺/마음/意識으로 解脫을 求하기에 오히려 束縛이 생기는 것이다. 解脫性을 알면 피곤함이 없는데도 말이다.
ㅡ <삼계를 벗어나는 최상의 해탈법>(송상섭 편역/ 여시아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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