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나'라는 착각, 이보다 세상에 더 우스꽝스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장백산-1 2014. 8. 23. 00:57

 

 

 

 

 

'나'라는 錯覺, 이보다 세상에 더 우스꽝스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명상의 세계

 

 

'나'라는 錯覺, 이보다 세상에 더 우스꽝스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分離되지 않은 全切 그대로인데,

原來의 狀態에서는 내가 存在한다는 事實조차 알지 못하는데,

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태어났고, 特定한 몸이 나이며,

特定한 夫婦가 내 父母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後 나는 나날이 나에 對한 情報를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되었고,

또 태어나기 前에 태어나는 것에 同意한 적도 없었고,

肉體가 억지로 떠맡겨졌다는 것을 確實히 알면서도

오로지 내가 태어났다는 事實을 받아들인 것 때문에,

完全한 하나의 假想 人格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假想 人格體로 條件 지어짐은 점점 實體性으로 굳어져서,

내가 어떤 肉體的 存在로 태어났다는 것뿐만 아니라 어느 날 나는 죽을 것이고

따라서 죽음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무시무시한 말이라고 生覺하게 되었습니다.

世上에 이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스승의 恩惠로 나의 참모습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내가 엄청난 조롱을 받고 있었다는 事實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진짜 錯覺은 時間이라는 槪念 안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 事件이 일어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槪念的 事件을 '내가 實際로 經驗하는 客觀的 眞實' 이라고 받아들인 점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錯覺을 可能하게 하는 더 根本的인 錯覺은,

空間이라는 槪念과 空間에서 對相이 認知될 수 있게 하는 時間의 槪念입니다.  

 

이제 삶은 어릿광대가 나와서 떠들다가 사라지는 코미디 같다고 한 내 말이 이해됩니까?

한발 더 나아가서 여러분 意識 스스로가 만든 槪念的인 存在들이

어떻게 이 코미디에 登場하게 되었는지 살펴봅시다. 

 

演劇에서 個人이란 하나의 役割을 擔當한 캐릭터에 불과함을 알면서도,

여러분은 미리 쓰인 脚本(각본)에 따라 正確히 역할을 해야만 하는 演劇 속에서도,

여러분 스스로 그 演劇을 企劃하고 演出하고 배역을 決定하고 行動하는 存在라고 錯覺합니다.


미리 定해진 脚本대로  배역 역할을 하고, 어떤 事件이 일어났음에도,

여러분은 스스로를 演劇 속 그 役割에 결부시켜놓고 스스로 苦痛을 自招합니다.

그러고는 '拘束'이니 '自由'니 一喜一悲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自由란 무엇일까요?

삶이라는 世上, 現實이 한낱 코미디일 뿐이라는 事實과 여러분의 眞正한 實體는

어떤 모양, 이름, 性質을 가진 存在일 수 없다는 事實을 아는 것입니다.

 

自由란,  知覺있는 個體的 存在라는 것은 全切性이 顯現된 一部分임을 아는 意識입니다.

自由란, '나'는 意識이며 모든 對相에 存在하는 '知覺力'임을 아는 意識입니다.

自由란, 나는 絶對的이며, 現象的으로 表現된 世上 現實 삶이라는 現象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생각하는 작용, 그 以前의 存在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제 왜 당신이 苦痛스러운지 아시겠습니까?

당신이 당신 自身을 잘못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는 이렇게 잘못 알아온 당신을 당신 自身이라고 錯覺했기 때문입니다.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 담배가게 성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