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과 현대물리학

話頭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 淸華 큰스님

장백산-1 2014. 9. 6. 21:25

 

 

 

 

 

 

 

話頭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  淸華 큰스님

 

 
화두(話頭)란 것이 언제 어디서 나왔는가 하면, 중국 宋나라 때 나왔습니다.
話頭를 지금 놔야 한다는 當爲性이 어디에 있는가를
우리 佛子님들도 깊이 生覺하십시오.

소홀히 生覺할 問題가 아닙니다.


화두를 자기 할아버지가 했다든가, 今生에 자기 스승이 했다든가,
또는 전통적으로 우리 宗團에서 했다든가 하는 이런저런 理由 때문에,
因習的으로 묵수(墨守)해서 덮어놓고 따라갈 그럴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情報化 時代입니다.
情報化 時代는 知的인 情報를 가지고 정사(正邪)를 따져야 합니다.
非判해서 옿고 그름을 가려야 합니다.

 

話頭는 中國 宋나라 때 대혜종고 스님이 비로소 定形化 시켰습니다.
또 송나라 때도 다 화두를 한 것이 아니라,
대혜종고 스님 一派에서만 화두를 定形化시켜 誘道했습니다.
그  當時도 저사(抵死 / 죽음을 각오하고 굳세게 저항함)해서

話頭를 反對한 스님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는 話頭없이
잠자코 마음을 觀照 하자는 曹東宗의 천동정각(天童正覺)이었고,
또 하나는 기왕에 화두를 할 바에는 阿彌陀佛 넉자 話頭를 해라 하시고 나선 분이

대혜종고 스님과 같은 時代의 진헐청요(眞歇淸了)스님 이였습니다.  

 

진헐스님은 기왕에 화두를 할 바에는 阿彌陀佛 넉자 화두(四字名號)를 해라,
阿彌陀佛은 우리 마음의 本來面目이기 때문이고
또한 우리 마음의 本來자리(本來面目)를 깨닫는 것이 불교이기 때문에

參禪을 하는 目的이니까,

기왕에 話頭를 할 바에는 疑心만 主로 하는 화두 쪽이 아니라
부처님을 일백퍼센트 信賴하는 阿彌陀佛 話頭를 하라 하면서,
아미타불 화두 念佛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宋나라를 지나 明나라 때가 되었습니다.

명나라 때는 송나라 때보다 고승이 훨씬 많이 나왔습니다.
바로 화두를 한 그 派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화두를 反對했습니다.

古僧들의 宗派는 같은  話頭派였는데, 그 분들은 다 話頭를 反對했습니다.

 

운서주굉(雲捿株宏), 감산덕청(敢山德淸)스님
지욱우익(智旭우益)스님, 자백진가(紫柏眞可)스님,
이 네분이 명나라 때 四大 古僧입니다.
사대 고승이 다 한결같이 念佛 쪽에다 역점을 두고서
불교를 창도하신 분이란 말입니다.

 

우리 韓國에서는 어찌하여 話頭 아니면 參禪이 아니다 이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宋나라 때가 韓國으로 치면 高麗 때에 해당합니다.

당시 대혜종고 스님이 이끄는 勢力이 第一  强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佛法을 배울 때 그 중 세력이 제일 강한쪽에 가서

배우려고 했겠지요,
그래서 그 話頭하는 쪽에 가서 배워 왔습니다.

그때는 마침 韓國은 高麗 末葉으로 그後 새로운 政治勢力인 李氏 朝鮮이 서고,
李朝 五百年 동안에는 高麗 때  佛敎의 잘못이나, 腐敗한 果報로 배불(排佛)이라, 

儒敎人들에게 핍박을 당해서 스님들이 都城 안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불교가 발전 할수 있었겠습니까.
中國은 元나라, 明나라, 靑나라 때 불교가 가장 旺盛했습니다.
불행히도 명나라 때 불교가 우리나라에 못들어왔습니다.

雪上加霜 으로 日帝 강점기 삼십육년간 이나
또 팔일오 解放 이후 韓國 戰爭을 거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제대로 발전을 못했습니다.

 

어떤 스님네는 話頭를 한번도 안해보고  話頭 아니면 參禪이 아니다고 말합니다.

韓國 禪房의 모습이 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禪房에서도 話頭 아니면 參禪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달마스님이 한 화두도 아니고,
석가모니가 한 화두도 아니고,
육조대사가 한 화두도 아니고,

지금 參禪의 敎科書 같은  六祖檀經에도

話頭란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청화 큰스님 / 2001년 10월 성륜사   법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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