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본마음과 분별심

장백산-1 2014. 12. 12. 16:01

 

 

 

 

본마음과 분별심  |♣ 월호 스님

은빛물결 |2014.05.12. 09:42   http://cafe.daum.net/geumeum/PRTg/40 

 

 

 

 

***본마음과 분별심***

 

‘참나’로서의 본마음은 불생불멸 거짓 마음에 불과한 분별심은 윤회의 주체이자 생멸의 원인

 

 

마음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참마음이요, 둘째는 거짓 마음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平常時에 나다, 남이다, 맞다, 틀리다, 좋다, 싫다고
分別하고 區分하는 이 마음들은 어떤 마음일까? 分別하는 이 마음들은 모두가 거짓 마음에 불과하다. 본래 나의 마음이 아닌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分別하는 이 마음들이 自身의 참 마음인 줄 錯覺한다.
 
이러한 거짓 마음이 할 줄 아는 것은 딱 한가지 뿐이다. 是非 分別 比較 判斷 解釋하는 일이다. 善과 惡을 가르고, 利益과 損害를 가르며, 나와 남을 가르는 일에 몰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分別心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능엄경〉에서는 이러한 거짓 마음,分別心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는다. 도적을 섬멸하기 위해서는 도적이 있는 곳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과 밖, 중간 그 어디에도 이 分別하는 마음은 없었다. 分別하는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 分別하는 마음인 거짓 마음의 所在를 찾을 수가 없었을까? 그 理由는 分別하는 마음은 固定된 實體가 없었기 때문이다. 固定된 實體가 없는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답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이것은 마치 허깨비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꿈이, 헛개비가, 물거품이, 그림자가, 이슬이, 번갯불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거짓 마음인 分別心은 因緣 따라서
느닷없이 생겼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까닭에
定해진 處所가 있을 수 없다. 存在 自體가 虛妄한 것이다. 이 虛妄한 마음, 分別心을 固執하여 ‘나’로 삼는 까닭에
輪廻가 거듭 되는 것이다. 因果를 주고 받고, 받고 주면서,
끊임없이 왔다가 가고 갔다가 오는 것이다. 結局, 이 虛妄한 分別心이야말로
輪廻의 主體이며, 生滅 生死의 原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닦는다는 말을 하지만, 사실 마음은 닦을 것이 없다 닦을 마음이 어디에도 없다.
마음은 고정된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실체가 없는 것을 닦을 수는 없는 법 아닌가. 虛空을 닦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마음은 다만 쉬어줄 수 있을 뿐이다.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分別心 生死心을 쉬어주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마음工夫이다. 그래서 ‘분별심을 쉬는 일이 곧바로
깨달음(歇卽菩提)’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거짓 마음인 分別心을 쉬면 본마음이 드러난다. 파도가 쉬면 本來의 바다가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本來 맑고 잔잔한 바다에는 온갖 모습들이 있는 그대로 찍힌다.
파란 하늘은 파랗게, 하얀 구름은 하얗게, 둥근 것은 둥글게,
모난 것은 모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各者 나름대로의 分別心이라는 色眼鏡을 끼고 世上을
바라보았지만, 색안경을 벗어던지면 있는 그대로의 世上을
바라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본마음은 變化하지 않는다. 예컨대 어려서 섬진강을 바라보던 性稟이나,
나이가 들어서 섬진강을 바라보는 性稟은 다를 바가 없다. 몸은 쭈그러져 늙었을지언정, 섬진강을 바라보는 性稟 그 自體는
결코 쭈그러들거나 늙지 않았다.
 
또한 左右를 돌아 본다고 하자. 그럴 때 얼굴이나 눈은 돌아 볼지언정,
보는 그 性稟 自體는 움직이지 않는다. 듣는 性稟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종소리를 듣는다 치자. 종을 치면 종소리가 생겨났다가 이윽고 사라진다. 하지만 종소리를 듣는 性稟 自體는

종소리와 함께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종소리는 生滅 生死가 있지만, 종소리를 듣는 性稟에는 生滅 生死가 없다. 나아가 몸은 잠이 들어도 이 性稟은 잠들지 않는다. 그러기에 꿈 속에서도 보고 듣고 다닐 수가 있는 것이다. 듣는 性稟이나 보는 性稟이나 모두 한 性稟으로 본마음이다. 이러한 ‘본마음 참나’로서의 性稟은 不生不滅이다.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항상 하며, 즐겁고, 불성인 ‘나’가 있으며, 청정하다.(本心常樂我淨) 쌍계사 승가대학 강사 /월호스님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