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 완릉록 17-6 沙門이란 바보 같은 것이다

장백산-1 2014. 12. 12. 23:37

 

 

 

 

 

◈ 완릉록 17-6   沙門이란 바보 같은 것이다

 

 

종일토록 둥둥 떠오르는 氣運대로 내맡겨 둔 것이 마치 바보와도 같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를 모른다 하여도, 일부러 알리거나 모르게 할 필요가 없다.
마음이 마치 큰 바위덩이와 같아서 도무지 갈라진 틈이 없고,
一切 法이 너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여 兀然히 어디에도 執着함이 없어야 한다.
이와 같아야만 비로소 조금은
相應할 분(分)이 있다 하리라.

 

 

********원오당 한소리******** "종일토록 둥둥 떠오르는

 

氣運대로 내맡겨 둔 것이 마치 바보와도 같은 것이다." 앞 단락에서 황벽스님이 修行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다.

有爲的 수행이 아니라 無爲的 수행이 바로 참다운 수행이요 조사선(祖師禪)의 길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고불께서 설하신
法華經에서 '菩薩 聲聞 緣覺을 모두 方便으로 설하였다.
오직 길은 한가지 일불승(一佛乘)이 있을 뿐이며, 이 길을 가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공덕도 없고
평생 동안 행한 수행이 부질없이 다시 輪廻로 떨어져 六途를 유랑한다'고 하신
法華經의 설법처럼.
이 一佛乘이 바로 사문(沙門)이며
납자(衲者)의 길인 것이다.

바로 말해 부처(佛/깨달음/眞理/法)를 찾아가는 길 부처를 깨달아야 되는 當爲性을 설하셨으며,
이들이 바로 불자(佛子)이다.
불자(佛子)란 내가 부처님 種子다라고 하는 것이니
예수께서 내가 하느님 아들이라고 한 말과 무엇이 다른가.
하느님 아들이면 성인이 되면 다 부처가 되어야 하고 하느님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게 되였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은 부처님의 아들인 佛子도 하느님의 아들인 神子도 아니지 않은가.
사법(邪法)을 행한
사마외도에 불과 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흔히들 절에만 나가면 불자라는 말을 스스로 한다.
과연 스스로 불자라고 할 수 있는 말인지
회광반조해 보시길 빈다.


최소한 자신(自神)만은 속이지 말자! 아무리 속이려도 自神만은 속일 수 없다.
世上을 다 속여도 自神만은 못속인다. 그런데 어찌 스스로 속이고 거짓으로 만들면서
어디서 神이 있고 하느님이 있고 부처님이 있겠는가. 오직 스스로 혼침속에 속여 虛像을 보고 섬기고 받드니
그러면서도 스스로 복을 받고 공덕장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란다면 정말 코메디 중에 코미디 일 것이다.

게그맨이 그 바보짓을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어하고 좋아한다. 왜 그럴까 그대 자신이 가짜이기 때문에
가짜와 거짓과 속이는 것이 재일 좋고
또 따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스스로 에게 뭍고 또 물어라.
그래서 바보들의 천국이요.
바보들의 세상이 되어가는 것이다.그러나 진정 그대들이 바보를 아시는가?


정말 바보는
모든 것을 보면 보는대로 즐거워 웃는다. 욕을 해도 선택도 없이 그게 무슨말이냐며 재미있다며 웃는다.
하는것도 꺼리낌이 없다.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냥 하고 있을 뿐이다. 절대 울지 않는다.

그냥 즐겁다. 그냥 행복하다. 바로 극락에 사는 것이다.

왜 그럴까? 바로 分別 是非하는 揀擇心을 모르는 사람이라 그렇다.
感覺이 바로 作用하지 않는다.
장애로 인하여, 심하면 미쳤다고 한다. 그러나 미친 사람과는 다르다.

이처럼 수행자가 이 바보처럼 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세상을 다 버리고, 보지 않기 위하여 산을 찾는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거리로 나와서 하심(下心)의 극치인 구걸(탁발)을 한다.
그래서
스님을 보고 비구라고 하는데 이 비구라는 말이 梵語로 거지인 것이다.
거지 구걸 이것이 수행의 첫 걸음인데
이제 한국에서는 탁발을 못하게 하였다.

누가? 저 부자집의 뭐같은 분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수행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스님이란 승가라마인 범어인데 화합하는 집단이란 뜻이다.
여기서 승을 승님 승님하다 스님이라하고 가라마를 가람이라하여 절이라는 도량이 된 것이다.
절도 원래는 중국의 백양사(寺)라는 국빈접대소였는데 승님들이 있고부터는 백양사가 되여 지금까지
절사(寺)로 바뀌였지만
사원. 정사. 원이라 해야  옳을 것이나 그 이름을 어떻게 부르던 그것은 虛名일뿐

그 속에 정말 人天의 스승이신 스님(살아있는 부처)가 있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각설하고 황벽스님은 참~修行이란 바로 밖에서 구해 貯藏한 남의 觀念을 내 것이라 자랑하고 이 것으로 먹고 살지만
그 觀念과 希望이라는 스스로 이렇게 해야겠다  저렇게 해야 겠다는 妄想을 쉬는 것 이것을 지(止)라고 하고

廻光返照하여 내 스스로 한 生覺  일어나고 滅하는 것을 스스로 비추어 알아서 이것이 萬生의 波浪을 일으킬
妄想임을 感覺하는 것 이것을 관(觀)이라하여 止觀을 行하는 것을 廻光返照라 하며
꿈쩍도 않고 누가 뭐라해도 바보같이 말이 없고 무엇을 보아도 바보처럼 대꾸가 없고 누가 날 욕해도 무심해 지는

정말 남이 보면 바보처럼 그 어떤 틈도 없는 바위처럼 묵묵히 수행해 나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신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를 모른다 하여도, 일부러 알리거나 모르게 할 필요가 없다.
마음이 마치 큰 바위덩이와 같아서 도무지 갈라진 틈이 없고, 일체 법이 너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여
올연히 어디에도 執着함이 없어야 한다."
이렇게 行하는 것이 바로 無心으로 가는 길이며
一佛乘의 수행이며, 一乘法을 듣는 것이며, 一心道를 행하는 것이며. 成佛道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험하고 어렵다.

왜냐, 하심(下心)하여 땅속의 벌래같아야 하고, 바보같아 바위처럼 굳건해야 하고, 바깥 境界에 끌려가지 말아야 하니,
다른 사람이 보면 이상하고 괴상하고 희한하겠지만 이것이 수행이고 바로 스스로 부처(佛)이 되는 길이니 어쩌겠는가.

납자의 길을 말씀하셨지만 과연 스님들이 이 길을 가는 자 몇명인지 그런 분을 보았는지 뭍고 쉽다.

 

마지막으로 황벽스님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와 같아야만 비로소 조금은 상응할 분(分)이 있다 하리라."
相應할 分이라 함은
깨달음으로 가는 조금의 功德이 있고, 마침내 成佛의 길을 얻을 것이라고 힘내라고 이렇게 이끌고 계신다.

부디 부디 살펴 가시길!

 
***본불본락(本佛本樂) 하옵소서! ()()()***   ***화엄동산에서 원오스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