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연기법경(緣起法經)

장백산-1 2015. 4. 13. 13:21

 

 

 

잡아함경 > 잡아함경 제 12 권 > 298.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 299. 연기법경(緣起法經) >

 462 - 471쪽 K.650(18-707), T.9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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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고 하는가? 이러저러한 중생들이 이러저러한 종류로 사라지고, 옮기며, 몸이 무너지고, 수(壽)가 다하며,

따뜻한 기운이 떠나고, 명(命)이 소멸하여 음(陰)을 버릴 때가 이르면 이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이 죽음과

앞에서 말한 늙음을 합해 늙음과 죽음이라고 한다. 이것을 緣起의 뜻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經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99. 연기법경(緣起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류수의 조우라고 하는 마을에 계셨다. 
  이 때 어떤 비구가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연기법(緣起法)은 세존께서 만든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만든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緣起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요, 또한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緣起法은 如來가

世上에 出現하시거나 世上에 出現하시지 않거나 法界에 恒常 머물러 있다. 如來는 이 緣起법을

스스로 깨달아 等正覺을 이루고, 모든 중생들을 위해 緣起法을 분별해 연설하고 드러내어 보이신다.

緣起法 그것은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고

하는 法이고, '無明을 因緣하여 行이 있고 ……(내지)…… 완전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고 ……(내지)…… 완전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한다'고 하는

法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經을 말씀하시자, 그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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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타경(他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류수의 조우라고 하는 마을에 계셨다. 
  이 때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와 세존을 뵙고 서로 경하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제 自身이 짓고 제 自身이 깨닫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것을 무기(無記)라고 말한다. 제 자신이 짓고 제 자신이 깨닫는다면 이것은 곧 無記이니라."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그러면 다른 사람이 짓고 다른 사람이 깨닫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짓고 다른 사람이 깨닫는다는 것도 곧 無記이니라."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왜 제가 '제 자신이 짓고 제 자신이 깨닫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도 無記라고 말씀하시고, '다른 사람이

짓고 다른 사람이 깨닫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도 無記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제 자신이 짓고 제 자신이 깨닫는다고 하면 곧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다른 사람이 짓고 다른 사람이

깨닫는다고 하면 곧 단견(斷見)에 떨어진다. 뜻에 대한 설명과 法에 대한 說明은 이 두 極端을 떠나 中道에

처하여 說法하는 것이니라. 말하자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卽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經을 말씀하시자, 그 바라문은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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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가전연경(迦旃延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리(那梨)라고 하는 마을 깊은 숲 속에 있는 대빈사(待賓舍)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산타가전연(陀迦旃延)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바른 소견[正見]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을

  바른 所見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세존께서 시설하신 바른 所見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산타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세간 사람들이 依持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유(有)와 혹은 무(無)이다. 취함[取]에 부딪히고,

取함에 부딪히기 때문에 혹은 有에 依持하고 혹은 無에 依持한다. 만일 이 取함이 없다면 마음과 境界를

얽어매는 煩惱를 取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으며, 헤아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괴로움이 生起면 생겼

다고 보고, 괴로움이 消滅하면 소멸했다고 보아 그것에 대해 疑心하지 않고, 迷惑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依持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것을 바른 所見이라고 한다. 이것이 如來가 施說한 바른 所見이니라. 


  왜냐 하면 世間의 發生을 事實 그대로 바르게 알고 본다면 世間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世間의 消滅을 事實 그대로 알고 본다면 世間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이것을 두 極端을 떠나

中道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卽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고 ……(내지)……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經을 말씀하시자, 존자 산타가전연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煩惱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解脫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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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아지라경(阿支羅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기사굴산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기사굴산에서 나와 왕사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셨다.  이 때 아지라가섭(阿支羅迦葉)이 작은 볼 일이 있어 왕사성을 나와 기사굴산으로

  향하다가 멀리서 세존을 뵙게 되었다. 세존을 뵙고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瞿曇)이시여, 여쭐 일이 있는데 혹 한가하다면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나는 지금 걸식하러 城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걸식하고 돌아오면

  그 때 그대를 위해 설명해 주리라."  두 번째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는 세 번째로 다시 물었다.
  "구담이시여, 어찌하여 저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을 미루십니까? 구담이시여, 무엇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 제가 지금 물을 것이 있습니다. 저를 위해 해설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아지라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대로 물어라."
  아지라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괴로움은 自己가 지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괴로움은 自己가 지은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무기(無記)이니라."
  가섭이 또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괴로움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괴로움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또한 無記이니라."
  가섭이 또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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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로움은 자기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괴로움은 자기와 남이 지은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또한 無己이니라."
  가섭은 다시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괴로움은 자기도 남도 아닌 인(因)이 없이 지어진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괴로움은 자기도 남도 아닌 因이 없이 지어진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또한 無記이니라." 
 

가섭이 다시 물었다.
  "왜 因이 없이 지어진 것이라고 하십니까? 구담이시여, '괴로움은 自己가 지은 것입니까?' 하고 물어도

無己라고 대답하시고, '남이 지은 것입니까? 자기와 남이 지은 것입니까? 자기도 남도 아닌 因이 없이

지어진 것입니까?' 하고 물어도 모두 無己라고 대답하시니, 그러면 저 괴로움은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 괴로움은 없는 것이 아니다. 이 괴로움은 있는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구담이시여, 이 괴로움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위해 설법하시어

 저로 하여금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을 보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느낌이 곧 自己가 느끼는 것이라면 '괴로움은 自己가 짓는 것이다'라고 나는 당당하게 설명하리라.

만일 남이 느끼고 남이 곧 느끼는 이라면 그것은 곧 남이 짓는 것이다. 만일 그 느낌이 자기도 느끼고 남도

느끼는 것으로서 다시 괴로움을 준다면 이러한 것은 자기와 남이 짓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자기와 남을 因하지 않고 因이 없이 괴로움이 생긴다고도 나는 또한 말하지 않는다. 이 모든 極端을

떠나 중도(中道)를 설명하나니, 如來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고 설법하느니라. 이른바 無明을 因緣하여 行이 일어나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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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아지라가섭은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이 때 아지라가섭은 緣起法을 보고, 緣起法을 얻고, 緣起法을 알고, 緣起法에 들어가 모든 疑心에서 벗어나

남을 依持하지 않고 알고, 남을 依持하지 않고 濟度되어, 바른 緣起法과 율(律)에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濟度되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부처님께 歸依하고 法에 歸依하고 僧家에

歸依하여 목숨을 마칠 때까지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저를 증명하여 알아주소서." 
아지라가섭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이 때 아지라가섭은 세존을 하직하고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송아지를 保護하려는 암소한테 떠받쳐

죽었는데, 목숨을 마칠 때 모든 感覺器管[六根]이 淸淨하고 얼굴빛은 밝고 깨끗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城에 들어가 걸식하고 계셨다. 많은 비구들도 또한 왕사성에 들어가 걸식을 하다가

'아지라가섭이 세존에게서 緣起法을 듣고 하직하고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소한테 떠받쳐 죽었는데,

숨을 마칠 때 모든 六根이 淸淨하고 얼굴빛은 밝고 깨끗하였다'는 所聞을 傳해 들었다. 모든

비구들은 걸식을 마치고 다시 城을 나와 가사와 발우를 두고 발을 씻은 뒤에 세존께서 계신 곳에

나아갔다. 그리고는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이시여, 저희 많은 비구들은 오늘 이른 아침에 城에 들어가 걸식하다가 '아지라가섭이

부처님에게서 緣起法과 律을 듣고 하직하고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송아지를 保護하려는 소한테

떠받쳐서 죽었는데, 목숨을 마칠 모든 感管(六根)이 淸淨하고 얼굴빛은 밝고 깨끗하였다'고

들었습니다. 世尊이시여, 그는 어떤 世界로 가서 어느 곳에 태어났으며, 무엇을 얻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이미 緣起法을 보고, 緣起法을 알고, 緣起法에 나아가, 緣起法에서

 다음 生을 받지 않이미 반열반(般涅槃)하였다. 너희들은 마땅히 가서 그 몸에 供養하라."
  그 때 세존께서 아지라가섭을 위하여 第一의 기별(記)을 주셨다.
  
  
303. 점모류경(玷牟留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에 들어가 걸식하시다가, 조그만 볼일이

있어 기사굴산으로 와서 유행(遊行)하고 있던 외도 출가자인 점모류(玷牟留)를 길에서 만나셨다. 그는

멀리서 세존을 보고는 그 곳에 나아가 서로 반가워하며 위로하였고, 서로 반가워하며 위로한 뒤에 한쪽에

서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물을 것이 있는데 혹 한가하시면 해설해 주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외도(外道)인 出家者 점모류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먼저 城에 들어가 밥을 빈 뒤에 돌아와 그대를 위해 설명하리라."
  두 번째 말씀도 또한 이와 같았다. 그는 세 번째로 다시 청하였다.
  "사문 구담이시여, 어찌하여 저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을 미루십니까? 묻고 싶은 것이 있으니 저를

  위해 해설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外道인 출가자 점모류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대로 물어라.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外道인 출가자 점모류가 곧 여쭈었다.
  "사문 구담이시여, 괴로움과 즐거움은 自己가 지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外道인 출가자 점모류에게 말씀하셨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가 지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무기(無記)이니라."
  "사문 구담이시여,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외도인 출가자 점모류에게 말씀하셨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無記 
 
[469 / 2145] 쪽 
  이니라."  또 물었다.  "구담이시여,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외도인 출가자 점모류에게 말씀하셨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無記이니라."
  또 물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도 아니요 다른 사람도 아닌 인(因)이 없이 지어진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외도인 출가자 점모류에게 말씀하셨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도 아니요 다른 사람도 아닌 因이 없이 지어진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것은 곧 無己이니라." ……(이 아래의 자세한 내용은 위의 아지라가섭경(阿支羅迦葉經)과 같다.)……

세존께서 外道 出家者 점모류에게 第一의 記別을 주셨다.
  
 
[470 / 2145] 쪽 
  
잡아함경 제 13 권  宋 천축삼장 구나발타라 한역
  
  
304. 육륙경(六六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류수의 조우라는 마을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설법하리라. 그 내용은 처음·중간·마지막이 다 좋으며, 좋은 뜻과 좋은

맛으로써 순수하고 한결같으며, 원만하고 깨끗하여 범행이 맑고 깨끗한 것이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여섯 가지 6법[六六法]이 있다. 어떤 것을 여섯 가지 6법이라고 하는가?

6내입처(內入處)·6외입처(外入處)·6식신(識身)·6촉신(觸身)·6수신(受身)·6애신(愛身)을 이르는 말이니라. 

어떤 것을 6내입처(內入處)라고 하는가?

안입처(眼入處)·이입처(耳入處)·비입처(鼻入處)·설입처(舌入處)·신입처(身入處)·의입처(意入處)를 말한다. 
 

어떤 것을 6외입처(外入處)라고 하는가?

색입처(色入處)·성입처(聲入處)·향입처(香入處)·미입처(味入處)·촉입처(觸入處)·법입처(法入處)를 말한다. 
 

어떤 것을 6식신(身)이라고 하는가?

안식신(眼識身)·이식신(耳識身)·비식신(鼻識身)·설식신(舌識身)·신식신(身識身)·신식신(意識身)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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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6촉신(身)이라고 하는가?

안촉(眼觸)·이촉(耳觸)·비촉(鼻觸)·설촉(舌觸)·신촉(身觸)·의촉(意觸)을 이르는 말이다. 
 

어떤 것을 6수신(身)이라고 하는가?

眼觸으로 생기는 느낌· 耳觸으로 생기는 느낌· 鼻觸으로 생기는 느낌· 舌觸으로 생기는 느낌·

身觸으로 생기는 느낌· 意觸으로 생기는 느낌이니라. 
 

어떤 것을 6애신(身)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眼觸으로 생기는 愛欲· 耳觸으로 생기는 愛欲· 鼻觸으로 생기는 愛欲·

舌觸으로 생기는 愛欲· 身觸으로 생기는 愛欲· 意觸으로 생기는 愛欲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눈이 곧 나[我]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눈은 생겨나고

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눈이 곧 나라고 말한다면 나는 응당 태어남과 죽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눈은 곧 나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이와 같이 빛깔[色]이나 혹은 안식(眼識)·

안촉(眼觸)으로 생긴 느낌에 대해 만일 '이것이 나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眼觸으로 생긴 느낌은 곧 나고 滅하는 法이기 때문이다. 만일 眼觸으로 생기는 느낌이 곧 나라고 하면

나는 응당 태어남과 죽음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眼觸으로 생긴 느낌이 곧 나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眼觸으로 생긴 느낌은 나라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눈.귀·코·혀·몸·뜻

(六根)이 六境과 接觸함으로 생긴 느낌은 나라는 것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의촉(意觸)으로 생긴 느낌은 생겨나고 消滅하는 法이기 때문이다. 만일 生겨나고 消滅하는

法인 그 느낌이 곧 나라면 나는 다시 응당 태어남과 죽음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意觸으로 생긴

느낌을 나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意觸으로 생긴 느낌은 나라고 할 것이 못되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 반드시 눈이 하는 일· 智慧가 하는 일· 적멸(寂滅)이 하는 일을 事實 그대로 알아

신통(神通)을 나타내고 바르게 涅槃으로 向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눈이 하는 일을 事實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인가? ……(내지)…… 바르게 涅槃으로 向하는 것인가? 이와 같이 비구들아, 눈은

나다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빛깔이나 眼識· 眼觸· 眼觸을 因緣하여 생긴 느낌, 卽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眼의 感覺, 그것도 또한 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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