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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안심하게 하는 것은???

장백산-1 2015. 5. 20. 22:58

 

 

 

 

 

15. 05. 19 - 우리를 안심하게 하는 것은???    

 

 

우리를 안심하게 하는 것은???

 

佛法을 安心法門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마음을 便安케 하고, 安心하게 하는 가르침이란 의미다.

우리는 마음을 便安하게 安心하며 살고 있을까? 우리는 과연 어떨 때 安心을 느끼며 살고 있을까?

 

우리가 주로 느끼는 便安한 安心의 상태는 어디엔가에 依持하고 기댈 곳이 있을 때 安心을 느낀다.

내 스스로 지금 여기 이자리 있는 이대로의 現存 속에서 安心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外部 境界에

大相에, 보이는 것, 들리는 소리, 냄새, 맛, 감촉, 생각의 대상에 依存하고 기댐으로써 安心을 한다.

 

예를 들면 돈, 명예, 권력, 사람, 사랑, 재산, 집, 자동차, 가방, 명품, 외모, 학벌, 가문, 먹거리 등등에

의지하고 기대면서 그 안락함 속에서 편안함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다. 쉽게 말해 未來의 두려움을 解消

시킬 수 있는 두둑한 노후자금이나 아파트, 통장잔고나 연금 같은 것에 依存해서 安心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自身의 知識을 끊임없이 쌓아서 새로운 앎이 가득 채워질 때 安心을 느끼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病 없이 健康한 몸에서 安心을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통해

安心을 느끼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과 약속을 잡고 만나러 다니고 하는 등의 발이 넓은

人間關係에서 安心을 얻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외부의 무언가에 머물러 依存해야지만 비로소 安心을 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성이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가 安心을 얻고자 외부적인 그것들에

依持해서 머물게 될 때 事實은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를 安心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들 마음을

 그것들에게 사로잡혀서 구속을 당하는 結果를 가져온다.

 

돈을 많이 벌어서 돈으로 安心하려고 하면 돈이 나의 삶을 휘두르게 된다. 사랑을 얻음으로써 安心하려

하지만 사실은 사랑에 오히려 구속되고 얽매이기도 한다. 풍족한 노후준비가 나를 安心시키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安心하게 한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그로 인해 나의 젊은 청춘은 노후준비에 사라져버린다. 지식이

나를 安心시킨다고 여기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발명품과 새로운 지식들은 쓰나미처럼 밀려와 나를 잠시도

쉴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그것도 나를 安心하게 하지 못힌다.

 

慰安과 安心을 얻으려고 기대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이처럼 우리의 本然의 삶 그 自體를

옭아매 구속시켜서 나의 삶은 그것들에게 구속당하고 휘둘림을 당하는 것이다.

 

사실은 삶, 세상, 현실, 현상세계에서 내가 安心을 얻고자 하는 그 모든 境界, 對相들은 固定不變하는

獨立的인 實體가 없는 永遠하지 않는 꿈 환상 거품 그림자 같은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世上 모든

것들은 내 마음대로 될 수도 없고, 내 마음대로 가질 수도 없는 것들, 텅~비어 空한 것들이다. 그것으로

인해 安心하고자 하지만, 텅~빈 空한 그것으로 安心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속박당하고

구속당하며, 텅~빈 그것들을 얻기 위해 내 삶, 인생을 통째로 다 바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모든 것들, 내가 원하고 갖고 누리고자 하는 그것들을 내가 갖는다고 해도 텅~빈 그것들은  언제까지고

내게 있어 주지 않는다. 돈, 성공, 권력, 명예, 재산, 학벌, 재산, 집, 자동차, 사람 등등에 人生, 삶, 全切를

걸었지만 하루 아침에 부도가 날 수도 있고, 지식을 쌓느라고 한평생을 다 바쳤지만 어느 순간 교수 직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주었지만 그도 나를 버리고 떠나갈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가 외적인 그것들을 통해 安心을 얻고자 하는 현실적인 그 모든 것들은 진정 우리를 安心시켜

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外的인 이런 것들을 통해 慰安받고 安心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좌절될 수밖에

없다. 外部的인 모든 것은 결코 우리들의 마음을 安心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外部 境界, 對相을 다 소유한다고 해도 결코 安心하려고 하지 말라. 그냥 지금 여기 이 순간 이대로의

存在 그 自體를 받아들여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서 있는 이것들 속에서는 安心할 수 없는지 살펴보라.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있는 이대로의 現存 그 自體에서 安心할 수 없다면, 당신은 이 세상 그 무엇을

소유하더라도 절대로 安心할 수가 없을 것이다. 安心 받기는커녕 오히려 그것들에 구속당하기만 할 것이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이렇게 있는 이대로로써 우리는 世上은 이미 完全한 存在다. 宇宙萬物 우리는

이미 完全한 存在로써 完全한 安心을 부여받았다. 그저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있는 이대로이길 수용하고

이대로 있기를 받아들일 때, 安心하기 위한 그 어떤 外的인 것도 願하지 않을 때, 비로서 우리 마음 意識은 

진정으로 安心하게 된다. 해방되고 해탈하고  자유자재하게 대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