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골목에 관하여

장백산-1 2015. 6. 19. 08:54

 

 

 

 

나눔뉴스님(www.nanumnews.com) 향기메일입니다.

 

골목에 관하여

확 트인 큰길, 훤히 들여다보이는 빌딩들이 시원합니다.
콘크리트 벽에 갇힌 답답함을 날려줍니다.
그런데 가끔은 숨고 싶거나 가리고 싶을 때도 있지요.
그럴 때 우리는 뒷골목을 찾아 들어갑니다.
대로변에서는 조심스러웠던 일들이 골목에서는 용감해지는 것도
음밀함과 편안함 때문입니다.

낯가림이 심한 골목은 안쪽 깊숙한 곳에 이르러야
내밀한 속사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밀이 많은 사람은
마음 뒤에 골목을 숨기고 있는 듯 합니다.
오래 묵힌 반골叛骨기질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는 골목은,
평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조용한 사람이려니 생각했던 이가
어느 날 의외의 성깔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다고,
골목도 우리처럼 골목을 벗어나고 싶지는 않을까요.
들어온 싱싱한 입소문에 반색하지만 가끔은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겠지요.
낡은 배관으로 흐르는 下水로 목을 축이는 골목.
허드렛물은 성큼성큼 집집마다 걸어 들어가 하수냄새며 비린내를 풍기고
사람 사는 온갖 냄새를 엎지릅니다.
문을 열고 나온 수다들이 풍선처럼 부풀리는 소문에도,
늦은 밤 흔들리는 발자국에도 귀만 세우는 골목입니다.

오늘 하루도 큰길과 무수한 골목이 내 안에서
나의 방향을 지시할 것 같네요.


- 최선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