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현각 證道歌
11.지금까지 때낀 거울을 닦은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분명하니 낱낱이 밝혔도다. 比來塵鏡未曾磨, 今日分明須剖析. 차래진경미증마 금일분명수부석
거울은 때가 끼었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거울에는 때가 낄 자리가 없고, 때 또한 때가 없기에 서로가 서로를 간섭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의식이 모양을 따라 그러한 게 있다고 여기니 때로 보이고 거울로 보이지만, 모양이 본래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본다면 거울도 따로 없고 때도 따로 없습니다.
거울을 닦으려면 본래 닦을 게 없음을 닦아내시고, 제대로 볼 것같으면 봄이 봄이 아님을 볼 것입니다.
거울과 때만 그러한 게 아니라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경험되는 모든 것,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 지금 사로잡혀 있는 모든 형상들이 그러한 게 아니라 모양 흔적 느낌 성질 방위 시종이 없는 텅~빈 바탕 공간의식 하나일 뿐임을 환히 볼 뿐입니다.
환히 볼 수 있다면, 거울은 거울이고 때는 때일 것입니다. 분별은 분별이고 번뇌는 번뇌이며 보리, 열반 또한 보리 열반 그대로일 뿐이지요. 그러나, 텅~빈 바탕 공간의식 하나는 어떠한 머뭄이나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나에게는 다른 일이 없으니, 오늘도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한다. 하늘은 우중충하고 밖은 여전히 여름의 후텁지근함이 남아 있다. 아이들은 가방을 메고 가기 싫은 걸음을 떼며 학교로 향하고 어른들은 오늘도 어제처럼 먹고 사는 일을 염려하며 일터로 나간다. 온갖 일들이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이냐? 하늘은 늘 하늘이고, 땅은 늘 땅일뿐. 그냥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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