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누가 생각이 없으며 누가 생멸이 없는가.

장백산-1 2015. 8. 2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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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 누가 生覺이 없으며 누가 生滅이 없는가. 만약 진실로 生滅이 없으면 不生滅도 없다.

나무로 만든 사람을 불러서 물어보라. 부처가 되기 위해서 공덕을 베푼다면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를.

 

誰無念 誰無生  若實無生無不生

수무념 수무생  약실무생무불생

喚取機關木人問  求佛施功早晩成

환취기관목인문  구불시공조만성


- 『증도가

 

증도가(證道歌)는 깨달음의 노래다.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 스님이 『유마경』을 보다가 깨달음을

얻고 조계산의 6조 혜능 스님에게 가서 그의 깨달음을 인가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깨달음에 대한 내용을

노래로 지어서 천하에 알렸다. 그 후 수많은 조사들이 모두 증도가를 수지 독송하며 법문이나 저술에 많이

인용하였다. 세존에게 깨달음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펼쳐 보인 화엄경이 있다면 영가 스님에게는 이 증도가

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수행자들의 안목이 되며 부처가 되려는 불자들의 바른 길을 안내한다. 선시의

백미(白眉)로서 특히 선자(禪者)들이 애송한다. 그래서 증도가의 가르침으로서 바른 견해로 삼는다.

 

 

흔히 일반적인 불교 상식으로 부처가 되려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生覺을 除去하여 無念의 境地에

이르러야 하고, 生滅과 生覺, 分別心이 들끓는 現在의 意識狀態에서 不生不滅의 경지를 터득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영가 스님의 말씀은 다르다. 어느 누가 佛法의 窮極을 무념(無念)이며 무생(無生)이라

했던가. 實로 生覺이 없고 生滅이 없다면 그것은 나무로 만든 로봇이다.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부처가 언제 木石이던가. 부처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生覺과 生과 滅이 活發發하게 작용하는

大機大用의 存在다. 만약 어떤 과정을 거쳐서 生覺과 生滅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된 공부라면 生과 滅만 없는 것이 아니라 不生滅도 없다. 不生滅이 없다는 것은 왕성하게 생멸

한다는 뜻이다. 생각이 많고 생멸이 왕성해야 부처, 즉 사람이라는 뜻이다.

 


만약 無念과 無生이 불교 궁극의 경지라면, 無念 無生은 나무로 만든 로봇과 같은 존재이니 그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하고 있다. 무념 무생이 되기 위해서 공을 닦고 수행을 하며 좌선을 한다.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이른 경지가 저 나무로 만든 로봇과 같은 존재라면 로봇에게 물어보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다.

 

 

부처란 本來로 그렇게 存在하는 것임을 알면 그것으로 끝이다. 부처란 사람마다 수행하기 以前부터 本來로

갖추고 있는 것이며, 개개인이 가만히 있어도 모두 완전무결한 것이다. 달리 무슨 방법이 필요치 않다. 방법

을 쓰면 오히려 어긋나는 것이 이 도리다. 이것이 불자의 견해며 선자의 안목이다.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에서


[출처] 나무로 만든 사람을 불러서 |작성자 몽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