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주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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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理學에 '범주의 오류' 라는 용어가 있다. 철학자 길버트 라일이 데카르트를 비판하고자 사용한 용어인데
비트겐슈타인도 즐겨 차용했다고 한다. 이 용어는 어떤 범주에 속한 定義나 說明을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
정의나 설명으로 바꿔서 말을 할 때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어떤 수학자가 수학 문제를 칠판에 풀고 있는데 전혀 쌩뚱맞게 미술가가 나타나 저 싸인과 코싸인
기호들은 미적 감각이 없다고 하면서 싸인 코싸인 기호를 미술적인 범주로 바라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전혀
말도 안 되는 것이지 않은가? 이처럼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해 있는 것을 같은 범주로 바라보게 되면 큰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음공부나 불법공부에서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범주의 오류를 흔히 접하게 된다. 불교공부는 이 世間을
뛰어넘어 出世間이 이르는 공부다. 세간과 출세간은 전혀 다른 범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出世間의 涅槃
을 단 한 번도 經驗을 해보지 못하다보니, 이 世間에서 살고 있는 衆生의 視線으로 出世間의 眞理나 法을
理解하려고 하기 때문에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世間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들, 귀에 들리는 소리들, 마음에서 생각되는 것들이 우리 삶의 主된 對相이 된다.
그러나 出世間의 眞理, 法, 本來面目, 본래마음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귀에 들리는 것도 아니며, 더욱
知識이나 머리나 生覺으로 이해되는 헤아림의 對相이 전혀 아니다. 世間과 出世間은 그 범주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出世間의 眞理를 世間的인 生覺과 分別, 論理的 言語 등으로 꿰맞추어 理解를
하려고 하다 보니 거기에서 범주의 오류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불법공부를 世間의 知識이나 머리를 써서 理解하려고 하면 전혀 出世間의 眞理에 가 닿을 수가 없다.
出世間의 眞理를 아무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世間의 言語로 說明을 하려고 해도 도저히 온전하게 설명
되어지지 않는다. 이를 두고 용수는 中論에서 世俗諦와 勝義諦라는 두 가지 方式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즉, 出世間의 眞理라는 승의제는 전혀 세속적인 世間의 방법으로는 接近을 할 수 없는 범주이다 보니
그렇다고 해서 말로 설명하지 않으면 出世間의 眞理라는 승의제를 알 수도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世間에서 사용하는 言語라는 세속적인 方便을 빌어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꿈과 같다. 世間은 꿈 속의 세상이고 出世間은 꿈 속의 세상인 世間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꿈 속의 세상인 世間과 꿈 속의 세상에서 깨어난 세상인 出世間은 전혀 다른 세상이고 전혀 다른 범
주다. 그럼에도 우리는 世間인 꿈 속의 세상에서 더 좋은 꿈을 꾸고 싶어 하고, 더 좋은 삶 더 좋은
세상만을 살고 싶어 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난 세상인 出世間의 불법공부에서는
더 좋은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본다면, 어떤 이는 世上이 바뀌지 않는다고 세상을 바꾸려고 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에 뛰어
들지만 불법공부에서는 世間인 꿈 속의 세상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네가 먼저 꿈에서 깨어나라고 한다.
꿈 속의 세상인 世間을 바꾸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꿈 속의 세상인 世間을 먼저 바꾸려는 것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꿈 속의 세상에서 더 좋은 꿈을 꾸려는 것과 같은 것일 뿐이다. 그러나 불법공부는
꿈 속의 세상인 世間에서 더 좋은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중요하
다고 하는 것이다. 즉, 전혀 다른 범주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떤이들은 불교공부는 꿈 속의
세상에서 깨어난 세상인 出世間의 깨달음만 강조할 뿐 꿈 속의 세상인 世間의 문제에는 적극 나서지 않는
다고 불만을 표출하곤 한다. 불교에서 꿈 속의 세상에서 깨어난 세상인 出世間의 깨달음을 강조하는 理由
는 우리가 살고 있는 꿈 속의 세상인 世間에서 곧바로 깨어나도록 이끌기 위함이다.
꿈 속 세상에서 고통 받는 많은 이들을 일일이 전부 쫒아다니며 구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방법
은 있다. 그 꿈 속 세상에서 깨어나도록 하면 된다. 내가 꿈 속의 세상에서 깨어나면 同時에 꿈 속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꿈 속의 세상에서 깨어나서 구제되는 것이다. 卽, 내가 깨달으면 온 宇宙萬物이
함께 깨닫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이 이해가 잘 안 될 것이다. 出世間의 말은 世間에서 理解의 對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불교가 世間에서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出世間에 이른 사람은 "내가 깨달으면 온 宇宙
萬物이 함께 깨닫는 것이다" 라는 말의 뜻을 혼자서 알 것이다.
-법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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