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길을 본다
오랜 옛날 어느 나라에 왕과 왕비가 살았습니다. 왕과 왕비는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둘 사이에 자식이 없다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이었습니다. 왕과 왕비는 나이가 들어
그들이 바라던 예쁜 공부를 낳았습니다. 공주가 태어나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싸였습니다.
공주가 세례를 받는 날, 일곱 명의 초대받은 요정들이 와서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각각의 요정들은 공주가 아름답고, 고운 마음씨를 가지며, 지혜롭고, 춤과 노래를 잘 하며,
악기도 잘 다루는 사람이 되는 선한 마법의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초대받지 못한 늙고 추한 마녀가 나타나 화를 내며 공주에게 저주 마법을 주고 달아났습니다.
"나를 우습게 보았군. 아무리 좋은 마법을 걸어도 소용없다. 공주는 물레의 가락에 찔려 죽을 거니까."
왕과 왕비는 비탄에 잠겼습니다. 마침 커튼 뒤에 숨어 있던 일곱 번째 작은 요정이 나타났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아직 어려서 마녀가 건 마법을 풀 수는 없지만, 마법을 가볍게 만들 수는 있어요."
그리고는 공주가 물레가락에 찔려 죽는 대신 백 년 동안 잠들게 하는 마법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왕은 온 나라의 물레를 다 태워버리도록 했습니다. 공주가 물레에 찔리는 일이 없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의 이야기는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공주는 열다섯 살이 되던
어느 날 늙은 마녀의 물렛가락에 찔려 잠이 들었습니다. 온 나라가 잠이 들었습니다. 백 년이 지난
어느 날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이야기를 들은 한 왕자가 이곳으로 옵니다. 성은 가시덤불과 나무로
우거져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칼로 가시덤불을 베지만 베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요정이
나타나 십자가 문양이 박힌 칼을 줍니다.
이 칼로 덤불을 자르니 쉽게 잘려나갑니다. 그렇게 공주가 잠들어 있는 방까지 들어간 왕자는 마침내
잠든 공주를 발견하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키스를 합니다. 그러자 공주가 깨어나고 뒤이어 공주의
시종들, 하녀들, 신하와 병사들, 온 성이 다 깨어난다는 이야기입니다.
-----------------------------------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서양에서 전래된 동화입니다. 어릴 때 한 번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겁니다.
아름다운 공주가 역경을 딛고 행복을 얻는 이야기쯤으로 읽힐 수 있지만 깨달음 공부의 여정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좋은 선물만 받고 싶어 합니다. 아름답고, 지혜롭고, 생기롭고, 행복하고,
예쁘고, 잘하고, 재주가 많은 것을 선호하며 이것을 取하려 듭니다. 그 대신 늙고, 추하고, 어둡고, 무례하며,
죽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어느 하나를 취하거나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들은 아름다움에는 추함이 함께 하고, 지혜로움엔 어리석음이 함께 하고,
젊음엔 늙음이, 행복엔 불행이, 태어남엔 죽음이 등으로 항상 두 얼굴이 한 쌍으로 드러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事實을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좋은 것, 선한 것만 취하고 악한 것, 나쁜 것은
내 삶에 등장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왕이 온 나라의 물레를 다 불태워버리듯이, 미리 대책을 세운다고 마음이 바쁩니다.
마치 석가모니가 어린 시절 석가모니의 아버지 정반왕이 어린 석가모니에게 좋은 것만을 경험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입니다.
온갖 통제를 하고 대비를 하지만 結局에는 누구도 어느 무엇도 生死法, 生滅法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공주가 물레에 찔려 잠에 빠져들듯이 말입니다. 잠이란 마음공부에서 무의식적으로 시비분별 비교 판단
해석 분석 구분하는 생각 번뇌 망상 즉, 분별심 분별의식이 짓는 相에 사로잡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백 년 동안의 잠이란 바로 인간사 백 년, 인간이 태어나 시비 분별 생각 망상에 사로잡혀 사는 생애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시비분별 비교판단 해석분석 구분하는 생각 번뇌 망상 마음 즉, 분별심 분별의식이 짓는 허망한 相에
사로잡힌 삶을 살다 보면 늘 고통스럽고, 자유롭지 못하며, 생사의 물결에 출렁이는 스스로를 불만족
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이들 중 소수는 이 불만족스러운 삶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이 없는가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속의 염원을 갖게 되면 마치 잠자는 공주의 곁으로 왕자가 다가오는 것처럼 스승과 인연이
닿게 됩니다. 스승은 잠든 공주를 깨우는 왕자처럼 道의 칼을 가지고 시비분별망상을 조복시키는 쪽으로
이끌어 들어갑니다. 감정을 고양시키고, 생각을 정밀하게 구조화시키며, 신비한 능력을 가중시켜 망상의
덤불을 덧씌우는 행위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시비분별비교판단하는 생각 번뇌 망상 즉, 분별심 분별의식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지경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다 문득 왕자의 키스처럼 스스로의 본바탕을 체험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제 깨어나기 시작하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백 년 동안 사로잡혀온 분별망상은 단 한번 왕자의 키스처럼 찾아온
달콤한 체험으로 모두 해소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에 너무도 익어서 마치 본래의 내 몸이고 마음인
것처럼 달라붙어 있습니다. 이때 바른 안내를 받지 않는다면 달콤한 키스의 추억만 되새김질하며
헛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늘 항상 깨어 있어 아무런 생각과 감정 상태, 기억을 통하지 않고 곧바로 확인 되는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이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달콤하고 안락한 키스의 추억에만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체험 이후
눈밝은 선지식을 찾아가라고 하는 것은 자칫 분별경계를 체험으로 잘못 알고 이것을 잡으려는 마음의
습관을 경계하기 때문입니다.
백 년 동안 시비분별 비교 판단 해석 분석 구분하는 相, 對相, 境界만을 따라 취사선택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체험을 하더라도 體驗의 本質이 아니라 체험에 동반되는 現象에만 관심을 두기 쉽습니다.
이때 선지식은 체험의 경계는 놓아버리되 늘 항상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만 관심을 두라고
일러줄 것입니다.
진정한 체험은 특별한 이벤트, 감정 상태, 얻어진 이치가 아니라, 어떤 현상이나 생각, 감정에 상관없는
늘 이대로의 텅~빈 마음 바탕입니다. 그러니 체험도 놓아버리라고 하는 것은 체험적 현상을 놓아버리
라고 하는 말입니다.
진정으로 텅~빈 마음 바탕은 내려놓으려고 해도 결코 내려놓을 수 없고, 잡으려고 해도 결코 잡을 수
없는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텅~빈 이 마음입니다. 여기에 관심을 두고 모든 드러나는 대상 경계의
허망한 모습을 뚜렷이 자각할수록 깨어남의 시야가 넓어지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추게 됩니다. 마치
공주가 깨어나고 ,시종이 깨어나고, 신하와 병사, 그리고 온 성이 깨어나는 것처럼, 이 작은 불씨에서
나를 비롯한 온 세계가 깨어나는 것입니다.
활짝 깨어나고 보면 텅~빈 마음의 본바탕은 내가 잠이 들었을 때나 지금 밝게 깨어나 있을 때나 한결같았
음을 알게 됩니다. 이 한 개의 빛이 온 세상에 가득하고, 이 한 개의 빛이 온 세상 자체임을 뚜렷이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참된 행복이란 바로 이렇게 아무런 조건도, 변화도 없는 무한한 밝음일 것입니다.
- 릴라님 /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쉬는 자리 (0) | 2016.05.13 |
---|---|
찬란한 마음의 중심 (0) | 2016.05.12 |
사랑이란??? (0) | 2016.05.11 |
이 세상 모든 것이 佛法이 아닌 것이 없다 (0) | 2016.05.10 |
한국불교에 바라는 열가지 제안 (0) | 2016.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