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밖에서 부처를 찾네
배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니 다만 이 수행이야말로 현묘하고 현묘하네.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줘도 모두 믿지 않고 도리어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고 있네.
- 중관해안(中觀海眼, 1567~ ?)
기래끽반권래면(飢來喫飯倦來眠) 지차수행현갱현(只此修行玄更玄)
설여세인혼불신(說與世人渾不信) 각종심외멱금선(却從心外覔金仙)
眞理란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평등하고 차별이
없어야 眞理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능력과 노력 여하에 따라 차별이 있을 수 있는 진리라면,
개인의 지위나 빈부귀천에 따라 소유할 수도 있고 소유하지 못 할 수도 있는 진리라면, 그런 진리는
부분적이고 상대적인 대상 경계로서 절대적인 진리라 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러한 절대적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어떠한 수행을 통해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없는
어떤 새로운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라, 본래 아무 조건 없이 본래 이미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에 주어져 있는 이것을 문득 발견하는 것입니다. 말은 비록 발견한다고 말하지만 발견하는
주체가 바로 발견하는 대상 경계이어서 결국 새롭게 찾은 것이나 얻은 것이 없어야 합니다.
배가 고프면 저절로 배가 고픈 줄 알고 밥을 먹습니다. 배고프면 밥을 먹는 것은 특별히 배우거나
갈고 닦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피곤하면 저절로 잠 잘 줄 압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손으로 물건을 잡고 발로는 땅 위를 걷습니다. 이런 행위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때로 눈 귀 손 발이란 기관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행위 자체에는
조그만 차이도 없고 평등합니다.
이 행위하는 이 자체 이것이 궁극의 수행, 수행 없는 수행입니다. 이것은 억지로 조작하여 하는 것은
없으나 어떤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리 말해줘도
도무지 이것 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숨어 있지 않고 이렇게 만천하에 번듯하게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데 도리어 사람들 스스로 눈을 감고 훤히 나타나 있는 이것 이 사실 이 진리를
보려고 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습니다.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감촉을 느끼고 생각을 하는 이 놈
을 떠나서 달리 마음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고, 부처라고 할만한 것도 따로 없습니다.
눈 한 번 깜빡이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는 이것, 이 사실이 진리입니다.
눈 한 번 깜빡이는 것이 진리이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바탕 이 자리 있는 이대로가 진리입니다.
진리와 나는 둘이 아닙니다. 따라서 진리는 알 것도 없고 모를 것도 없습니다.
참된 나, 본래의 나, 근원의 나, 진짜 나는 앎과 모름의 대상 경계가 절대로 아닙니다.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며) 그저 이러할 뿐입니다.
- 몽지님 / 무진장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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