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도 텅~빈 바탕 마음도 인간 마음도 없다
형색을 보지 않을 때에 오히려 성품을 보고, 소리를 듣지 않는 곳에서 도리어 마음을 듣네.
눈으로 않봐도 우주를 다 보니 아나율(阿那律)의 아름다운 이름 옛날부터 지금까지 전해지네.
- 정관 일선(靜觀一禪, 1533~1608)
불견색시환견성(不見色時還見性) 불문성처반문심(不聞聲處反聞心)
불용육안통사계(不用肉眼通沙界) 나율가명파고금(那律佳名播古今)
당장 바로 지금 여기 눈앞을 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 경계가 색깔[色]과 모양[相]입니다.
색깔과 모양은 우주만물의 인연에 따라,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하기에 각각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색깔과 모양 즉,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런 색깔과 모양 말고, 색깔 모양과 둘이 아니지만
색깔 모양과 상관없이 언제나 색깔 모양과 함께하는 변함없는 그 무엇이 색깔과 모양 그 자리에
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눈앞에 컵이 놓여 있는 상황을 보다가 잠시 후 그 컵이 사라진 빈 자리를 볼 때, 보이는
대상인 색깔과 모양인 컵은 나타났다 사라졌지만 컵을 볼 때도 뚜렷했고 컵이 사라진 자리를 볼 때도
변함없이 분명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이 마음의 본래성품입니다. 마음의 본래성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컵을 보는[見] 놈이 마음의 본래성품[性]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보이는 대상인 색깔과 모양 즉, 컵이 컵을 보는 이 놈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보이는 대상과 보는 놈과 보는 행위가 사실 따로 따로 서로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대상이 그대로 대상을 보는 놈이고, 대상을 보는 놈이 그대로 보이는 대상입니다.
보는 행위가 그대로 대상을 보는 놈이고 보이는 대상입니다. 이와 같이 늘 마음의 본래성품이
자기자신인 마음의 본래성품을 보았을 뿐이므로, 아무리 보았다고 해도 본 것이 없는 겁니다.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리는 나타나서 들리다가 사라지지만 소리를 듣는 그 곳, 소리가 나타나는
바탕인 텅~빈 마음 즉,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는 영원히 나타나지도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그놈은 늘 영원히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모든 소리가
텅~빈 바탕 마음 즉,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인 겁니다. 듣는 놈도 텅~빈 바탕 마음, 들리는
소리도 텅~빈 바탕 마음, 즉 텅~빈 바탕 마음이 텅~빈 바탕 마음을 듣고 있으니 아무리 들어본다고
해도 들은 바가 없는 겁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온 우주만물이 그대로 하나의 마음의 본래성품, 하나의 텅~빈 바탕 마음입니다.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감촉을 느끼고 무언인지를 인식해서 아는 성품, 텅~빈 바탕 마음을
떠나서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우주만물은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우주만물이 텅~빈 바탕 마음이고,
텅~빈 바탕 마음이 우주만물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우주만물이고 텅~빈 바탕 마음입니다. 우주만물과
텅~빈 바탕 마음 즉,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와 인간의 마음은 서로서로 따로따로가 아닌 겁니다.
그렇다고 하나조차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주만물도 없고, 텅~빈 바탕 마음도 없고 인간의 마음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며) 이것은 무엇입니까?
- 몽지님 /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상인 가짜 나와의 싸움 (0) | 2016.06.09 |
---|---|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0) | 2016.06.09 |
부분 분리 분별이 없는 전체로서의 하나 (0) | 2016.06.07 |
부처 밖에서 부처를 찾네 (0) | 2016.06.07 |
根本知, 근본적인 앎, 진정한 앎 (0) | 2016.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