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스크린

영화와 스크린

아침 내내 밥을 먹었지만 어찌 먹은 적 있으며 밤새도록 잠을 잤지만 잠을 잔 것 아니라네.

지금 고개 숙여 연못 아래 그림자만 보느라고 밝은 달이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모르네.

- 동계경일(東溪敬一, 1636∼1695) 조선 중기의 승려.

종조끽반하증반(終朝喫飯何曾飯)  경야침면미시면(竟夜沉眠未是眠) 

저수지간담저영(低首只看潭底影)  부지명월재청천(不知明月在靑天)

영화관의 영사기가 돌아가는 앞쪽에 있는 스크린 위에 수많은 影畵가 상영되지만, 상영된 영화의 어떤

한 場面도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시간, 어떤 공간, 어떤 인물, 어떤 사건도, 어떤 상황도 그냥

그저 텅~비어 있는 스크린 위에 비춰진 빛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일 뿐입니다. 텅~비어 있는 스크린 

위에 펼쳐지고 있는 빛의 그림자인 影像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또한 역시 텅~비어 있는 이 스크린 

위에 등장하고 있는 또 다른 빛의 그림자, 影像들일 뿐입니다. 

온갖 現象들로 現示되어 있는 이 세상의 모든 모습들은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와 똑같습니다.

영화의 장면들이 텅~비어있는 스크린과 결코 떨어져 있지 않듯이 온갖 현상들로 현시되어 있는 세간의 

모든 모습들과 그 모습들을 드러내는 本來의 性稟은 둘이 아닙니다. 온갖 현상들로 나타나 있는 이 세상 

모습 있는 이대로가 變함없는 本來의 性稟이고, 本來의 性稟이 그대로 千變萬化하는 온갖 현상들로 현시

되어 있는 이대로의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모습을 떠나서 본래의 성품이 따로 없고, 본래의 성품

을 떠나서 세간의 모양이 따로 없습니다. 

영화 속 텅~빈 스크린 위에 등장하는 場面에서 불에 타고 물이 흘러도 스크린이 타거나 젖지 않듯이, 

온갖 현상들로 나타나 있는 세간의 온갖 모습들이 이런저런 對相 境界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더라도 

本來의 性稟에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이 일어났었지만 結局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티끌만큼도 얻을 수 있는 일이 없고, 남아있는 일이 없는 겁니다. 

이 事實을 確實하고 分明하게 깨닫지 못하면 영화 속 장면과 똑같은 허망한 이 세상의 모습들에 속아서

편안히 앉아 있는 眞正한 自己 자리, 本來의 성품를 忘覺하고 온통 幻想일 뿐인 이 세상  속을 헤매게 

되는 겁니다. 세간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는 사실이 그대로 이 본래의 성품이 드러나 있는 것인데, 그 속

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본래의 성품을 찾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겁니다. 

깨달음의 달은 바로 지금 눈앞에 휘영청 밝게 떠 있습니다. 온갖 현상들로 현시되어 드러난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이 깨달음의 달빛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뜰 앞의 잣나무도 깨달음의 달빛의 그림자로 드러나고, 

마른 똥 막대기도 깨달음의 달빛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영화 속 모든 장면이 스크린을 떠나지 못하듯,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현상들이 깨달음의 달빛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이 하나의 사실을 절대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 몽지님 /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