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화가와 같은 마음은 온갖 것을 그려낸다

장백산-1 2016. 9. 4. 21:23

화가와 같은 마음은 온갖 것을 그려낸다...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   

2015.06.27. 15:04  복사http://blog.naver.com/dis030/220403146378


心如工畵師 畵種種五陰(심여공화사 화종종오음) 一切世間中 無法而不造(일체세간중 무법이부조)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여심불역이 여불중생연)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


마음은 화가와 같아 이 세상 만물 온갖 것들을 그려내나니 

이 세상 모든 것들 중에 그려내지 못하는 것이 없구나.

부처님도 마음 화가와 같이 이 세상 모든 것들을 그려내고

중생도 부처님과 같이 이 세상 모든 것들을 그려내나니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조금도 다르지 않아 차별이 없구나.


오늘은 華嚴經에 있는 말씀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마음(心)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이 세상 

일체의 사물을 그려내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도 마음과 같이 그러하고, 중생도 부처님과 

같이 역시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전혀 차별이 없다고 말합니다.

 

가을이 짙어 갑니다. 금년에는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아서 단풍이 예년만 같지 못하다고들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바야흐로 전국의 산야는 가을 색으로 가득하고 각각 그 수려한 색채를 한껏 뽐내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 망해사의 경내에 있는 단풍나무들도 지금 붉은 빛이 한창입니다. 하루에도 아

침 저녁으로 색깔이 변한다고 할까요. 아침에 보이던 잎들의 푸른 빛이 저녁이면 노랗게 변하고, 또 

새로운 아침이 되면 어느새 붉은 빛을 뜁니다. 저는 하루에도 몇 번을 경내를 돌아봅니다. 그리고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듯한 주위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곤 합니다. 

 

물론 마음 한 편으로는 나뭇잎들의 붉음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것은 바로 그 잎들이 떨어질 때가 되었

다는 신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리고 그 나뭇잎들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낼 

때 쯤 이면 문득 겨울도 어느새 함께 와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도 예상합니다. 세월의 빠름, 시간의 

흐름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느낀다고나 할까요.

 

떨어지는 낙엽은 염라대왕이 보내는 소환 예고장이라는, 우스개 같기도 하면서도 문득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고사가 생각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단풍 들었다고 그 아름다움만 칭송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는 조급한 마음이 일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어떻게 自然은 이렇게 한 치의 빈틈도 오차도 없이 自己 本來의 모습

을 보일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비록 오늘날 기상이변이니 하고 말들을 하지만, 이런 이변조차도 

原因이 있는 곳에 結果가 있다는 因果의 法則을 벗어나는 것이 아닌 바에야 무엇을 그렇게 이변이라고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겠습니까. 因果의 法則이 作動되는 그것이 自然이요, 必然이 아니겠습니까. 이러

하듯이 因果의 法則, 自然의 순환 과정은 몰인정하게  엄격한데, 그것을 얕은 眼目의 사람으로서 이해

하기에는 벅찬 존재가 自然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에는 우리 절 불자들이 전라북도 馬耳山으로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유명한 마이산도 유람하고 

거기에 있는 탑사도 참배하면서 가을이 짙어가는 산야를 한껏 즐기고 돌아 왔습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신심으로 쌓아올린 탑사의 돌탑에 대해서는 오늘날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돈 냄새 풀풀 풍기는

대규모 불사현장의 돈 냄새와는 다른 외경심을 느꼈습니다. 외곬의 노인이 한 개 한 개 돌을 쌓아 올렸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탑들이 오랜 풍우를 견디어 온 이면에는 바로 그분의 정성이 그 돌마다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다시 화엄경의 말씀을 새겨 봅시다. 아무런 煩惱도 執着도 없는 텅~비어 맑은 온전한 마음을 가진 중생

은 바로 부처마음을 가진 중생입니다. 중생의 온전한 마음처럼 부처도 역시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

의 온전한 마음도 역시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러한 온전한 마음을 갖추지 못한 중생으로 넘쳐 납니다. 아니 비록 알음알

이(知識), 분별심, 분별의식, 지견, 견해, 이해로는 화엄경의 이 구절을 들어서 알고 있다하여도 그의 마

음이 온전하지 못해서 아직도 중생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더 이상 나아갈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인간들과 세상만물이 어울려 사는 이 세상에는 교만하여 남과 나를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생각 의식 마음을 갖고 있는 아수라도의 인간들이 엄존하고 있으며,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하지 못하고 자신이 나아갈 길을 알지 못하는 축생도의 삶을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나아가 무한한 탐욕심에 한없이 인색하여 나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아귀도의 삶을 사는

인간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온갖 참혹한 범죄를 저지르며 業報의 엄정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옥도의 삶

을 사는 인간들이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그의 ‘참회록’에서 “내 젊은 시절은 공명심, 권세욕, 사욕, 애욕, 

자만심, 분노, 복수심, 쾌락 등의 부정적인 마음으로 불탔었다.”라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들

의 삶을 사는 마음은 그의 젊은 시절의 마음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法華經에는 現實世界를 불에 타고 있는 집, 화택(火宅)이라고 표현합니다. 화택이 의미하는 세상의 불길

은 ‘인간 마음의 불길’에서 비롯됩니다. 불교에서 ‘세 가지 독이 들어있는 마음(삼독심 三毒心)’이라는 

‘탐욕을 부리는 독이 들어있는 마음, 화내고 성내는 독이 들어있는 마음,  어리석음의 독이 들어있는 마음

’은 모두 다 불타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바로 인간의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와 조사의 

화두가 이 마음의 문제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야운스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고 계십니다.


人我山崩處 無爲道自高(인아산붕처 무위도자고) 凡有下心者 萬福自歸依(범유하심자 만복자귀의)

 

나와 남을 분별하고 차별하는 분별심이 무너져버리는 곳에는 공부하지 않아도 道가 저절로 높아지네

자기를 한없이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는 모든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 오리라.


야운스님의 마음공부는 無分別心 즉, 無心과 하심(下心)입니다. 하심이란 스스로를 낮춤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도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은 합니다만, 여기서 저는 이 말씀을 ‘모든 분별하는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방하착 放下着)’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모든 분별하는 마음을 놓아버려야 마음을 낮

추는 것도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집착도 고집도 가지지 않고, 나라고 하는 相 아상도 내지 않

고, 일체의 교만, 자만도 털어버리고 모든 분별하는 마음을 탁 놓아버릴 때 한없이 스스로를 낮출 수 있

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불평불만이 찾아들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능엄경에는 비사여래가 지지보살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當平心地卽 世界地一切皆平(당평

심지즉 세계지일체개평) 마땅히 마음자리를 평안히 하면 세상이 모두 평안하게 될 것이다.


여기 평(平)이라는 글자가 나옵니다. 平 이 글자에는 무사(無私)라든가, 정직, 고요함, 화목함, 공평함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수행이나 선정이 다 무엇이겠습니까? 모두 ‘平’ 입니다. 사사로움이 없으며, 정직

하고, 그 마음이 고요하며, 화목하며 그리고 공평하다면 거기에 평화가 있으며 행복이 있지 않겠습니까?

 

중국의 승조 스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기고 계십니다.

 

心淨卽國土淨 心平卽國土平(심정즉국토정 심평즉국토평) 邪正由心 淨穢在我(사정유심 정예재아)

 

마음이 깨끗함이 곧바로 이 세상이 깨끗함이요, 마음이 평안함이 곧바로 이 세상이 평안함이다.

삿되고 바름이 분별하는 마음에서 비롯됨이요, 깨끗하고 더러움이 모두 내 마음 속에 있음이더라.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평안도 인간들의 마음의 평안에서 비롯됩니다. 북한의 핵실험이라든가, 

그에 대비한 육자회담의 향방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환경은 언제나처럼 어수선하고 한편으로 복잡하

기 그지없습니다. 이 세상의 평화가 어디서 올 것인가. 바로 인간 모두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때가 되었음을 알고 스스로 털어버릴 것을 다 털어버리는 나무들에게서 인간은 ‘마음 놓음’을 배우고, 

더러움과 깨끗함의 본질이 우리들 인간 마음에 있음을 배웁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 시대, 우리나라의 평화도 기대해 봅니다. 성불합시다.

                        

불기 2550년 10월 초하루, 망해사 주지 혜학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