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깨어있는 의식에 담긴 우주적인 힘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렇듯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意識이 完全히 깨어
있게 되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宇宙的인 힘이 붙는다는 점입니다. 의식이 완전하게 깨어 있는
순간,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 상대방과 교제를 할 때 혹은 상대방과 일을 추진할 때, 어떤 글
을 쓸 때, 무언가 일을 하나 할 때, 내 의식이 온전히 그 일을 注視하고 몰입해서 일하게 되면 그 일을
하는 행위에 성스러운 에너지가 붙게 됩니다. 生覺이라는 實體가 없는 虛妄한 幻想이 만들어 내는
번잡스러운 산란한 에너지가 사라지고 대신 내면의 더 깊은 次元, 내면의 더 깊은 불성(佛性)의 次元
에서 일어나는 부처님, 宇宙大光明의 엄청난 에너지가 붙기 때문에 그 일의 흐름이 아름답고도 강력
하게 바뀌게 됩니다. 이처럼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완전히 깨어있는 의식은 아주 자연스럽
게 법계(法界)의 에너지 흐름과 一致를 이루는 宇宙的인 힘으로서 그 일이 저절로 진행되게 합니다.
二分法的인 生覺, 분별심, 분별의식, 알음알이(識)라는 에너지의 덩치를 키우게 되면 그것은 我相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삶일 뿐입니다. 아상의 노예로 사는 삶은 執着과 我執과 欲望에 휘둘리는 삶이기에
사사로운 '가짜 나' 에 갇혀서 사는 삶이기에 그런 삶에는 根源의 나, 참나, 眞理, 本性, 깨달음의 힘이
붙지 않습니다. 그러면 삶이 自然스러움에서 벗어나 매우 힘들어지고, 껄끄러워집니다. 그러나 二分法
的인 生覺, 분별심, 분별의식, 알음알이(識)을 놓아버리고, 我相과 我執을 놓아버리고, 한 발자국 떨어
져서 分別하는 생각 마음 없이 이 세상을 지켜보는 삶을 살게 되면 根源의 나의 힘이 솟구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本質的인 우주법계의 자연스런 에너지 흐름과 一致를 이루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나의 힘이 아니라 우주법계의 힘이 붙기 때문에 그 어떤 일을 할 때에도 어렵지 않게 자연스러우면서
도 강력한 힘을 끌어내 쓸 수 있게 됩니다.
예전에 도반 스님께 이런 아름다운 아야기를 들었습니다. 군법당 주지 스님들은 군대에 있는 절에서
장병들을 위한 포교를 하고 지내다 보니, 장병들 중에 신심 깊은 군종병(軍宗兵)을 뽑아 함께 군사찰
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부대에 아주 문제를 많이 일으킨 문제 사병이랄까, 관심 사병이 있
었단 말입니다. 군에 들어오기 전부터 아주 사고도 많이 치고, 전과도 있고, 가만히 놔두면 큰 사고를
칠 것 같고, 동료나 후임 장병들을 괴롭히고 부대에서도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장병이 있었는데 이
스님이 상담을 해 본 뒤에 그럼 내가 거두어 사람을 만들어 보겠노라고 했단 말입니다. 그러면서 법당
에 데리고 와서 그 장병 법우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장병이 전에 부대에서 어떻게 했든
전혀 상관하지 않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고 사귀
면서 지내는 겁니다. 처음에 그 장병을 데려와 같이 살겠디고 했을 때 주위에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스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무리 스님이라도 얘가 하도 교묘한 아이라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세
상 그 어떤 사람도 믿지 못하고, 심지어 부모님도 포기했을 정도라는데 스님이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군종병이 스님에게 말했던 결정적인 이
야기가 무엇인지 아세요. 며칠을 같이 살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도 나를 眞心으
로 대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내가 나쁜 놈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왜
이런 나쁜 짓을 하는지 眞心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와 어머니조차 나를 조금 멀
리 하려는 것을 감지했을 정도라는 거예요. 자신을 얼마나 부담스러워 하고 미워하는지 스스로 느끼면
서 이 친구의 좌절감은 거의 극에 달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그 어떤 사람이 나를 살펴주고
사랑해 줄 수 있겠느냐 자포자기 한거지요. 그야말로 사람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너무 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주지 스님이 그 군종병에게 眞心으로 자비롭게 그렇게 대접해준 것입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바라볼 때 내 내면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마음
으로 상대를 바라보면 그 사람은 내게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마
음 내면에서 그 사람을 아무 分別하는 마음 생각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바라보면 그 사람은
내 내면의 마음에서 볼 때 맑고 아름답고 투명한 좋은 因緣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나 고통은 내 내면 마음의 문제이지 마음 바깥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
와 사귀는 친구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내면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것이고,
내 내면 마음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면 마음 바깥의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日常
생활을 하는 속에서 모든 매순간순간을, 내가 불평이 있을 때를, 불만이 있을 때를, 무언가 고통이 있
을 때를, 그때를 아주 생기로운 마음공부의 機會로 삼아야 합니다. 내 마음을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좋은 機會로 삼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차!' 하고 뒤로 한 발 물러나야 합니다. 내 몸뚱이가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의 마음이 그 문제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그 문제를 조용히 지켜보는 마음으로 뒤로
물러나 내 마음의 내면을 조용히 지켜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 법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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