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여래장(如來藏)과 불성(佛性)

장백산-1 2016. 10. 17. 13:35

여래장(如來藏)과 불성(佛性) /  월간 불광/ 글 쓴이 高崎直道


(1) 佛性

  如來藏과 佛性은 다른 것인가. 結論부터 먼저 말하면, 여래장과 불성은 같은 것이다. 대개 여래장이라는 

  말은 많이 쓰이지 않고, 불성이란 말이 많이 쓰인다. 불성은 고래로 널리 쓰여지지만 불성이 무엇인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이것을 알면 깨달았다고 한다. 예를 찾아보면, 중국의 조주의 고사를 들 수 있다.

  

  "개에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하였는데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깨달음에서 見性이 인정된 것이다. 

  열반경에는 '중생 모두가 불성이 있다'고 말씀되어 있다. 여기에서 本覺이라는 가르침이 나온다. 本覺이

  라 하면, 원래부터 이미 완전하게 깨달아 있다는 것을 뜻한다. 태어 나면서부터 깨달아 있었으며 부모가 

  나기 前부터 깨달아 있었다는 말이다. 중생이 無始로 계속하여 原來로 깨달아 있다 하는 것이 本覺이다. 


  이에 對하여 깨달음을 연다고 하는 것은 수행하여서 비로소 깨닫는 거라고 했는데 이것이 始覺이다. 

  본각 이라든가 시각이라는 말은 대승기신론과 그밖의 경전에 많이 문제가 되어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깨달았다 고는 하지만 실지로는 미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혹하여 있을 뿐만 아니라 수행을 하더

  라도 좀체 깨닫기 어렵다. 깨달아서 부처가 되기는 어렵다고 알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에 상관없이 중생의 本性, 나기 전부터의 本性, 本性은 부처님 本性과 똑같은 것이어서, 이것

  을 가리켜 일체 중생 모두에게 불성(본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2) 如來藏

  대개 경에는 여래장이라는 말은 잘 보는다. 열반경 가운데 여래장 법문이 있는데 거기에는 如來 秘密法藏

  이라고 씌어 있다. 여래의 비밀 법장에서 세존은 일체 중생에 여래장이, 또는 일체 중생에 불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大放燈如來藏경이란 경이 있다. 거기에는 佛性이라는 말이 아니고 如來藏이라는 

  말이 쓰인다. 물론 여래장에 관한 말씀이 서려 있는 경이다. 경전을 연구해 보면 여래장이라는 용어가 불성

  보다 오래 된 것으로 보인다. 여래장이라는 말이 먼저 있고, 그것을 설명하는데 있어 如來의 本性이라는 뜻

  으로 佛性이라는 말이 쓰인 것으로 생각된다.

  

(3) 여래와 중생

  여래장은 범어로 바타가타 가르바인데 그 뜻은 如來의 태(胎)를 의미한다. 태는 글자 그대로 어머니 배 속

  의 애기집이다. 아기가 태어나는 그릇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여래장은 여래에 담는 그릇이라고도 

  해석되는 것이다.

  

  如來藏 思想을 정리한 논전으로서 보성론과 불성론이 있다. 보성론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불성론은 

  널리 알려져 있다. 불성론에 여래장이라는 말의 뜻을 여러가지로 해석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지금 말한

  바, '중생이 여래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세가지의 의미를 말한다. 첫째는 소섭장, 둘째

  는 은복장, 세째는 능섭장이다.

  

  衆生 속에 如來가 있다고 한다면, 중생은 큰 것이고, 중생이 그 속에 부처님을 싸고 있는 결과가 된다. 그

  러나 실제를 말하면, 부처님이 보다 큰 존재이므로 如來라고 하는 法身 속에 모두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중생쪽이 오히려 여래에게 싸여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여래를 자신 안에 간직

  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은 그 사실을 중생에게 가르쳐 주어서 자신에게 

  있는 여래가 그 빛을 발하도록 수행을 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여래장경이다. 이런 것을 불성

  론에서 말하고 있다.

  

(4) 여래장경의 아홉가지 비유

  여래장경은 매우 짧은 경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모든 중생이 여래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아홉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한번은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데 많은 보살들이 모였다. 그런데 별안간 신기

  한 상서가 벌어진 것이다. 주위에는 무수한 연꽃이 피어 보였다. 그리고 그 연꽃은 우주의 저 끝까지도 덮

  혀 있는 듯 보였다. 거기 모여 있는 보살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고 지켜보고 있을 때, 놀랍게도 피어

  있던 연꽃들은 하나 둘 시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꽃은 한 둘 지고 만다. 그런데 연꽃이 진 자리에는 작

  은 부처님이 앉아서 좌선을 하고 계셨다. 그리고 찬란한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거기 모인 보살들은 부처

  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 여쭈어 본다. 여기에서 부처님의 법문은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 이 상서 가운데서 보이는 연꽃은 한 사람 한사람 중생을 나타낸 것이다. 중생 가운데는 꽃이 피었다

  가 지는 것처럼 대개는 거칠은 형상에 아름답지 못한 향을 피우고 있다. 그러나 연꽃이 진 그 자리에는 실

  로는 금색이 찬란한 부처님이 앉아 있는 것이다. 연꽃 자리에는 부처님이 앉아 계신데 그 위에 온갖 꽃들

  이 덮혀 있고 싸여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생의 탐욕심, 성냄, 무지 등 3毒 煩惱에 싸여, 꼼짝 못하리만

  치 온갖 첩첩 고뇌 속에 있는 것이 중생이나, 실로는 중생 속에 여래의 몸, 여래의 지혜, 광명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중생들은 여래를 안에 간직하고 있는 여래장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法門은 지금 여래가 처음 설하는 것이 아니고, 如來가 이 世上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그런데 

  상관 없이 永遠한 眞理다"라고 선언하셨다. 말하자면 부처님의 말씀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

  씀 이전에 원래로 있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중생몸에 여래장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여

  래장경은 설명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지금 비유한 연꽃 가운데의 부처님을 시작하여 차례로 아홉가지 비

  유가 열거되어 있다.

  

  (1) 연꽃 가운데의 부처님    (2) 꿀벌에 둘러싸인 꿀    (3) 껍질에 싸인 쌀 보리   (4) 부정한 곳에 떨

  어진 금괴   (5) 가난한 집 땅 속에 묻힌 보배   (6) 나무의 종자   (7) 걸레에 싸인 불상    (8) 빈곤녀

  가 잉태한 전륜왕자   (9) 주형 속의 보상  이상 아홉가지를 차례로 간단히 설명해 보자.

  

  첫째의 연꽃 속의 부처님은 이미 설명한 그것이고,

  

  둘째의 벌에 싸인 꿀이라고 한 것은 벌꿀을 잘 따는 어떤 사람이 꿀벌이 가득 붙어  있는 벌집을 능란한 

  솜씨로 벌들을 쫓아내고 그 속에 있는 꿀을 따는 것처럼, 부처님은 훌륭한 방편으로써 중생의 덕을 덮고 

  있는 벌의 침과 같은 번뇌를 없애고 안에 있는 꿀과 같은 여래를 드러내 보인다. 여기서 벌은 성이 나면 

  쏘므로 성냄과 같은 번뇌에 둘러싸인 중생 속의 여래를 말한다. 여래는 선교방편으로서 저들 번뇌를 잠

  재우고 없애어 여래가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그 세번째의 비유는,   쌀이나 보리와 같은  곡식으로써 비유가 된다. 곡물은 겉에 두꺼운 껍질에 싸여 

  있고, 또한 까락이 나 있다. 그대로는 먹을 수 없다. 그것을 털고 벗기고 다듬어서 비로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래장도 번뇌의 껍질을 벗겨내고 중생의 마음을 밝혀야 한다. 그래서 여래가 

  나타난다.

  

  네 번째는,  부정한 곳에 떨어진 금덩어리다. 부정한 곳이란, 거름통을 생각하면 된다. 부정한 것이 가득 

  담긴 구덩이에 금덩어리가 떨어졌다고 하자. 몇십년, 몇백년, 몇천년을 떨어져 있다 해도 건져내면 그대

  로 눈부신 빛을 낸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생에게 있는 여래의 본성도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 현재는 

  비록 더러운 분노 속에 빠져 있어 더럽게 보이지만, 그 본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여

  래성이 라든가 불성은 영원불변의 부처님의 본질로서 절대로 변치 않는 것을 여기에서는 금으로 비유하

  고 있는 것이다.

  

  다섯번째는 가난한 집 땅속에 묻힌 보물이다. 어떤 곳에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집 땅속에는 큰 보물

  이 묻혀 있었다. 그렇지만 그 가난한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보물 또한 말할 수 없으므로 가난하게만 지냈

  다. 그런데 그 일을 아는 어떤 지혜 있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에게 가르쳐 주어 집안의 땅을 파서 보물을 꺼

  내어 그를 돕고 행복하게 해 주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땅속의 보배라고 비유할 만한 여래와 같은 本性  이 

  중생 가운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쌍하게도 중생은 그것을 모르고 생사 윤회의 세계를 헤매는 것이다. 

  부처님은 그것을 아시고 땅속의 보물을 꺼내어 그를 구해 주신다.

  

  여섯번째는 나무 종자의 비유다. 나무 종자는 흙 속에 묻쳐서 물과 햇빛과 거름이 적당히 주어지면 싹이 

  트고 성장하여 마침내는 큰 나무가 된다. 중생에게 갖추어져 있는 佛性도 거기에 온갖 힘으로 돕고 키우

  면 如來라는 큰 나무가 된다.

  

  일곱번째는, 걸레에 싸인 불상인데 어떤 장삿군이 사막을 지나 먼 나라로 여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

  의 목숨보다 소중한 부처님을 등에 업고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상인은 사막에서 죽게 된다. 

  그래서 사막모래 속에 불상도 걸레에 싸인채 묻히기를 백천년이 된다. 비단으로 싸면 도적맞을 염려가 

  있으므로 걸레에 쌌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어떤 눈을 가진 사람이 그를 알고 뒤에 온 여행자에게 그러쳐 

  준다. 그래서 그는 땅을 판 결과, 부처님을 얻는다. 부처님은 오랜 동안 땅 속에 묻혀 있었는데도 불구하

  고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이와같이, 아무리 긴 동안 생사 윤회의 세계를 방황하더라도 중생은 반드시 성

  불 할 수 있다. 그 안의 如來性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는 것이 이 비유의 가르침이다.

  

  여덟번째는, 가난한 여자가 잉태한 왕자의 비유다. 양로원과 같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집에 기탁하고 

  있는 여자가 아기를 가졌다. 그런데 그 아기는 왕자이다. 만약 그 왕자가 태어나면, 그리고 국왕에게 인정

  을 받으면 그 여인은 국모가 될 것이고, 아들 또한 그 신분이 천하에 드러난다. 비록 오늘 가난하여 빌어 

  먹고 살 망정 그 아기는 전륜왕의 왕자인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비록 오늘 생사고를 헤매더라도 그 종

  자는 여래가 될 종자이다.

  

  끝으로 주형속의 보상이다. 주형은 쇠물을 끓여 부어서 형상을 만드는 형틀을 말하는 것이고, 부상은 부처

  님의 형상이다. 불상을 조성할 때에 주형에 금을 녹여 붓는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면 존상이 된다. 여래장

  도 그러한 금부처와 같다. 주형을 부수고 그 안의 존상을 꺼내듯이 겉에 단단히 있는 듯이 보이는 번뇌들

  을 부수면, 그 안에 찬란한 금빛을 나타내는 존상이 나타나는 것을 비유한다. 이상 아홉가지늬 비유로써 

  여래장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5) 빛나는 마음

  여래장경에는 이와같이 설한 다음에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이것은 내가 설한 것이 아니다. 이 경을 최초로 설한 것은 常放光如來이다. 저 옛날, 상방광여래께서 출세

  하시어 법을 설하셨을 때에 그 때에 석가세존도 그 자리에 열석해서 들었었다. 거기서 들었다는 것이다. 

  상방광여래는 어떤 부처님이었을까? 어렸을 때, 어머니 배 안에 있을 때도 광명을 놓았다. 태어나면서도 

  광명을 놓았고, 성장하면서도 광명을 놓았고, 출가하였을 때도 광명을 놓았고, 깨달음을 이루었을 때도 

  광명을 놓았으며, 법을 설할때도 광명을 놓고 있었다. 열반하신 다음에도 광명을 계속 놓았다. 그래서 

  상방광여래이다.

  

  아기가 배 안에 있을 때부터 광명을 놓아 계속 광명을 노았다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말한 여래장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거이다. 중생안에 있는 여래라든가 여래의 태아가 그렇게 광명을 놓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원시 불경에서 찾아보면 自性淸淨心이다. 맑은 마음, 빛나는 마음, 이것이 중생 안에 있어서 부

  처가 되고, 이 본래로 청정하게 빚나고 있는 것이 중생의 마음이다. 그래서 중생에게는 누구에게나 보

  장이 있다. 누구든 그것을 믿고 노력하면 마침내는 보리를 이루는 것이다. 보리를 이루는 종자는 누구

  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여래의 지혜이다. 중생이 가지고 있는 빛나는 마음은 여래의 지혜와 본래 같은 것으로서 

  언젠가는 여래의 지혜로써 광명을 놓게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는 중생이 발심하여 보리심을 일으켜 

  보리를 향하여 수행해 나가야만 한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여래장경은 광명

  의 비유로써 가르쳐 주고 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일체 중생이 이렇게 하여 구원을 받게 된다.*

  

  이 글은 일본 "재가불교" 제 271, 272에서의 초역이다.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