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선(禪)으로 읽는 복음] 32. 아버지와 나는 하나

장백산-1 2016. 10. 17. 14:41

유당 2016.10.17.  http://cafe.daum.net/yourhappyhouse/F9lO/2071 


[선(禪)으로 읽는 복음] 32. 아버지와 나는 하나


때는 겨울이었다. 예루살렘에서는 봉헌절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성전 구내에 있는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는데 유다인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조이게 할 

작정입니까?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내가 이미 말했는데도 너희는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

하는 일들이 바로 나를 증명해 준다. 그러나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 온다.


나는 그들에게 永遠한 生命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

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 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한복음, 10:22~30]


대부분의 사람들과, 영적 구도자들도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의 自身의 存在 自體

가 眞理라는 事實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여기 있는 자신은 너무나 평범하고 아무것

도 아닌 것 같다고 여기는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 의식 때문입니다. 그들의 求道가 바로 이 평범하고 아

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자신에게로부터 도피하려고 하는 行爲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모든 

구도는 정확히 자신이 출발했던 바로 그 지점,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돌아와야 끝나게 

됩니다.


원래 영적인 구도 행위와 수행은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기 위한 手段과 方便

으로 企劃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手段과 方便에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아닌 未來의 언젠가 

저기,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꿈꾸는 理想的인 모습의 나가 되기 위해 그것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

에게서 일어난 分別하는 生覺에 의지합니다. 判斷과 分別에 의지해 모든 것을 재단하고 확인하고 증명 받

으려 합니다. 그러나 본래 이원적인 속성, 상대적인 속성을 가진 生覺으로는 절대적 확신에 도달할 수 없

습니다. 강박증 환자처럼 끝없이 변하는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고 신경을 쓰느라 마음이 편안할 수 없습니

다. 이원성 상대성에 기반하는 생각은 불안의 원인이 자기 자신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끝없이 불안해

합니다.  바로 이러할 때 깨달음, 신앙의 도약이 필요합니다.  (잠시 묵상)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십시오. 어떤 對相인 있는 그대로의 나을 보는 것

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고 있는 이것이 보라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입니다. 

보는 자가 곧 보려는 대상입니다. 보는 자, 보려는 대상, 보는 행위 이 셋이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 눈앞의 진실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원적 분리가 전혀 없기 때문에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

을 하는 순간 보는 자와 보려는 대상, 보는 행위 셋으로 분열됩니다. 그러면 보는 일과 보지 못하는 일이라

는 분별 차별이 생겨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 진리와 나는 하나입니다. 깨달음과 나는 하나입니다. 왜, 어째서 하나

인지 分別을 일으키는 순간 셋이 됩니다. 그 하나를 인식하고, 체험하고, 확인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셋이 

됩니다. 그러나 그 셋 역시 하나입니다. 진실로 하나뿐이라면 그 하나를 알 수 잇는 다른 하나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우치는 그 순간 그 하나뿐인 하나마저도 사라져버립니다. 이것이 깨달음이고

신앙의 완성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없지만 있는 나가 참나입니다.

(잠시 묵상)


천신만고 끝에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로 돌아오는 순간, 단 한 순간도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

로의 나에게서 벗어났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였습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전일 뿐입니다. 따라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로 돌아왔지

만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至至發處).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떠났지만 사실은 지금 여기를 떠난 것도

아니듯이(行行發處) 말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요, 은총의 신비, 구원의 신비입니다.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진실로 모든 비범한 자리, 무시무종으로 상주불멸 불생불멸 불래불거의

영원한 생명(영생), 하나님 나라, 천국, 극락, 천당, 부처, 진짜 나, 본래의 나, 근원의 나, 본래면목 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