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지금 여기 이순간 이 자리에 존재하라

장백산-1 2016. 11. 24. 15:06

지금 여기 이순간 이 자리에 존재하라


그러면 이제 정리를 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는데요, 이 세상을 창조하는 方便의 가르침과 나를 근원에 

내맡기는 本質의 가르침을 아우르는 아주 경이로운 수행방법 하나를 말씀드리면서 마칠까 합니다. 그

것은 바로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입니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감사합니다’, 숨을 내쉬면서 ‘사랑합니다’라고 반복하는 거예요. 어떤 상황, 어떤 

조건, 어떤 경계, 어떤 감정, 어떤 괴로움이 일어나더라도 그 괴로움을 대상으로, 그 미운 사람을 대상

으로, 내 안에서 일어나는 그 순간순간의 모든 느낌 감정, 생각 망상 번뇌,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분별하는 마음 의식 알음알이(識)들을 상대로 숨을 들이마시면서 감사합니다, 숨을 내쉬면서 사랑합

니다, 아니면 숨을 들이마시면서 ‘감사’, 숨을 내쉬면서 ‘사랑’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나에게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숨이 들어올 때 감사함으로써 대긍정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내 안의 에너지를 긍정으로, 

감사로, 풍요로움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그 어떤 것이 들어오더라도 그것은 감사할 재료

가 됩니다.


자식이 컴퓨터에 미쳐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할 일이예요.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부모님 입장에서 공부 못해도 좋으니까, 컴퓨터 앞에서 게임만 해도 살아만 있으면 좋

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에 감사함을 결정할 것인가요? 지금부터 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성적이 떨어지더라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적이 떨어졌다는 그 사실 때문에 충격

을 받아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도 있거든요.


우리가 알아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진실은, 分別하는 것은 좋은 쪽으로 분별할지라도 그런 분별은 차라

리 분별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부모님들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스님, 자식들한테 자꾸 좋은 얘기를 해 줘야지, 분별하지 않고 그냥 뭐든지 받아들여 주고 허허 웃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물론 안 될 수도 있지요.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똑바로 얘기해 주는 것을 뭐라고 하는 것

은 아닙니다. 제 말은 거기에 집착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거기

에 執着해 빠져 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옳은 것이 아니게 됩니다. 분별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분별에 집착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자식과의 관계 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분별

하는그 말을 하되 분별하는 그 말에 집착하지 않고 분별하는 말을 하면 자식이 나쁜 짓을 하게 되더라도 

괜찮아요. 내가 내 생각에서 나쁜 짓이고, 그 아이의 행동에 대한 나의 해석이 나쁜 것이지 아이의 행위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어떤 것이 되었든 내게 들어올 때는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또 나에게서 나갈 때는 모든 것이 

‘사랑’으로 나갈 수 있도록 내가 내뿜는 호흡도 사랑의 호흡을 내뿜을 수 있도록, 또 나에게서 나가는 

말 한 마디도 ‘사랑’으로 나갈 수 있고, 나에게서 나가는 행동 하나도 ‘사랑’이 가득한 행동으로 내보내고, 

모든 마음에너지를 내보낼 때는 사랑의 에너지를 보태서 내보내는 것입니다. 육근(六根) 즉, 눈, 귀, 코, 

혀, 몸, 뜻을 통해서 내게로 들어오는 모든 것이 감사로써 들어오고, 심지어 누가 나한테 욕을 하더라도 

감사하다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못할 이유가 없지요.


감사할 이유를 찾으면 모든 것에 감사거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주, 법계, 진리의 세계, 이 세상은

언제나 나를 돕고 있고, 나를 성숙케 하기 위한 자비로운 일만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괴로운 

일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나를 영적으로 성숙시키기 위한 더 큰 차원의 일환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내 생각 내 계산 방식으로 따지면 나쁜 일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우주, 법계의 계산으로 따지면 

사실 이 세상 모든 것이 근원적으로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이 事實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렇게 했을 때는 모든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육근(六根)을 통해서 내게 들어오는, 즉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지고, 귀로 들리는 

모든 소리가 감사하게 느껴지고, 코로 맡는 모든 냄새가 감사하게 느껴지고, 맛보는 모든 음식을 감사하게 

음미하게 되고, 감촉으로 느끼는 것, 생각하는 모든 것이 감사함으로써 들어오게 되고, 나에게서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내 폐를, 내 오장육부를, 내 내면을 한번 거치고 나갈 때는, 숨이 아름다움으로 감사와 사랑과 

자비심으로써 융화가 되어 뿜어져 나갈 때는 항상 사랑으로 나갑니다. 자비로움으로 나갑니다.


그랬을 때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바뀌는지, 얼마나 경이롭게 변화하는지, 조금씩 바뀌는 게 아니라 얼마나 

획기적으로 바뀌는지 스스로 증명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라는 존재를 가지고 내가 얼마만큼 바뀔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 증명해 내지 않으면 체험이 안 됩니다.


불교는 체험의 종교이지 껍데기 종교가 아닙니다. 스스로 체험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현실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경험하게 된다면 여러분 인생은 지금부터 경이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람이 변하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한 생각이 바뀌면서 삶이 바뀌는 겁니다. 

그 한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왜 부단한 노력과 아주 안 좋은 경험을 

통해 고난을 격고 나서야 비로소 한 생각을 바꿉니까?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당장에 한 생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 한 생각 바꾸는 아주 좋은 방법, 그래서 생각을 아름답게 바꾸는 방법, 방편적인 

진리의 실천, 그것이 바로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이고 그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은 호흡과 함께 하는 것이

기 때문에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로 나의 생각 마음 의식을 항상 데려오게 만듭니다. 그래서 본질적인 

본질법, 근본법과도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삶에서 우리를 풍요롭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깨달음으로 이끕니다.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에 대해서는 별도로 목탁소리 홈페이지나 

카페, 블로그 등에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나는 못났다’ ‘나는 무능력하다’라고 생각했던 모든 마음에너지들을 거둬들이고 이제

부터 새롭게, 정말 멋지게 스스로 부처가 되어서 자신의 삶을 바꿔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그런 엄

청난 경이롭고, 신비로운 삶을 스스로 살아내 보시고 직접 체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