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실천하는 5가지 생활수행법
진리를 실천하는 5가지 생활수행법
眞理를 실천에 옮긴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삶이 있는 그대로 眞理
이기 때문에 眞理를 실천한다는 것은 곧 삶을 산다는 말이다. 어떻게 진리, 삶을 사는 것일까? 自然스럽게
삶을 사는 것이다. 무위(無爲)의 行의 삶을 사는 것이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있는 그대로 사는 삶이다.
이렇게 삶을 사는 것은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억지스럽게 엄청난 공력을 들여 노력해야지만 얻어지는
것이 아닌 삶이다.
여기 眞理를 실천하는 삶의 자세 다섯 가지가 있다. 이런 마음자세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삶이라는 본
래부터 이미 완전무결하게 현시되어 드러난 진리, 즉 삶과 하나가 되어 自然스럽게 흐르게 되는 것이다.
첫째, ‘받아들임’이다.
삶, 즉 진리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용하는 삶이다. 삶은 그것 자체로 完全하다.
삶이 바로 진리이기 때문이다. 대승찬(大乘讚)에서 대도상재목전(大道常在目前)이라고 하여 무한하고,
무량하고 무변한 道(진리, 삶)은 영원불변, 상주불멸, 불생불멸로 언제나 目前(눈앞)에 본래부터 이미
완전무결하게 드러나 있다고 설하고 있다. 지금 여기 앞에 놓여 있는 삶 그 自體가 바로 道, 眞理다. 그
러니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단지 지금 여기 눈앞의 진리, 도, 삶을 ‘받아들이는 것’뿐 다른 일은 없다.
보신(報身) 부처님(佛)을 수용신(受用身)이라고 부른다. 즉 참된 부처님의 몸(法身, 眞理의 몸)은 지금
여기 눈앞에 현시되어 드러나 있는 一切의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누리고 만끽
하는 존재로써, 지금 여기 이대로의 삶이 全部일 뿐 또 다른 그 무엇을 갈구하거나 찾지 않는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리의 삶, 부처의 삶이다.
둘째, ‘놓아버림’이다.
만약 무엇을 붙잡고 그것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있다면, 대상을 실체화시키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
다. 이 세상 그 어떤 대상도 고정불변하는 실체는 없다. 즉, 무아(無我), 공(空)이다. 그러니 그냥 그저
오고 가는 것일 뿐인 실체가 없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붙잡아 執着하지 말고 그냥 오고 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것이 ‘놓아버림’이다.
'놓아버림' 이 말은 무엇을 놓아버리려고 애쓰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세상 그 무엇이든지 그것이 물질
적인 현상이던지 정신적 심리적인 현상이던지 간에 人爲的으로 애를 써가면서 붙잡지만 말라는 말이다.
왜 그럴까?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반드시 꼭 붙잡야만 될 실체적인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그냥 저절로 自然스럽게 因緣에 따라서 잠시 잠깐 왔다가 흘러가는 실체가 없는 꿈, 신기루, 물거
품, 幻影일 뿐이기 때문이다.
셋째, ‘알아차림’이다.
그렇게 그냥 저절로 자연스럽게 잠시 왓다가 가는 실체가 없는 꿈, 신기루, 물거품, 환영일 뿐인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수용하고 놓아버린 채로 다만 지금 여기 여기 있는 그대로의 삶, 진리, 도, 세상을 구경꾼이
되어 바라보기만 하라. 삶, 진리, 도, 이 세상을 내 사고방식대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지 말고 다만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세상, 삶, 도, 진리를 ‘알아차리라’.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다만 지구별을 여행하며
삶, 진리, 도, 이 세상을 눈부시게 바라보고 삶, 도, 진리, 이 세상을 알아차리는 것 뿐이다.
내가 이 세상, 삶, 진리, 도를 사는 것이 아니라, 삶 진리 도, 이 세상이 제 스스로의 삶 진리 도 이 세상을
그냥 그저 살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이 세상, 삶, 진리, 도를 다만 바라보고 알아차릴 뿐, ‘나’라는 것
이 있다고 여기는 환상, 생각, 망상을 만들어 놓고, 펼쳐지는 삶, 진리에 대해 그것이 나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시비하고 분별하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계산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다만 지켜볼 뿐!
넷째, ‘내맡김’이다.
앞으로 내 세상, 인생, 삶, 도, 진리가 어떻게 펼쳐지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지 말고 이 세상, 삶, 진리,
도 그 자체에 나를 전부 ‘내맡겨라'. 우주, 진리의 세계, 법계, 이 세상의 무한한 큰 질서(秩序)에 나를 완전히
내맡겨보라. 우주의 질서에 나를 완전히 내맡기고 아주 가뿐하고 가볍게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지금보다 더 잘 먹고 잘 살아 보려고 인위적으로 온갖 애를 쓰는 것은 아상(我相), 즉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여기는 환상 생각에 휩쓸린 허망하고 어리석은 삶일 뿐이다. 나는 없다(無我). 나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면서 그 나라는 존재가 무엇을 어떻게든지 해 보려고 애를 쓰는 마음이 나의 모든 괴로움을 만들어 낼
뿐이다. 그러니 나라고 여기는 그 존재에게 삶, 도, 진리, 이 세상을 내맡기지 말고, 그저 그냥 지금 여기 눈
앞에 현시되어 나타나 있는 이대로의 삶, 도, 진리, 이 세상 그 자체에 나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는 환상 생각
을 몽땅 내맡기고 마음 편안하게 살아가면 그 뿐인 것이다. 이것이 삶, 진리, 도, 이 세상과 하나가 되어 살
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섯, 사랑, 자비(慈悲)다.
진리의 세계인 이 세상의 인연에 따라서 지금 여기 내 앞에 와서 펼쳐지는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사랑을
자비를 베풀라’.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텅~비어 空한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해서 삶, 도, 진리, 이 세상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무기력해지라는 말은 더 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 어떤 이기심이
나 개인적인 욕심도 없이, 집착심도 없이,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도 없이, 그저 그냥 지금 여기 내 앞에
등장하는 이 세상 모든 것들, 진리, 도, 삶을 완전히 평등하게 수용하고 바라보기 때문에 지금 여기 있는
일체의 중생들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완전한 삶을 살게되는 것이다.
지금 여기 내 앞에 와서 펼쳐지는 이 세상 모든 것들, 진리, 도, 삶을 大平等하게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
랑하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진실, 不二思想을 잘 알기 때문에 네가 배고픈 것은
곧 내가 배고픈 것이다. 그래서 베풀어 주고도 베풀어 주었다는 생각이나 마음이 전혀 없다. 즉, 내가 나
에게 베푼 것이기 때문이다.
-법상 스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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